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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천도 - 도쿄의 서울 이전 계획과 조선인 축출공작
도요카와 젠요 지음, 김현경 옮김, 전경일 감수 / 다빈치북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1934년 일본인 저자가 펴낸 이 책은 현재와 단지 80년 가까운 시차만 존재할 뿐인다. 하지만 내용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입이 벌어지게 했다. 그만큼 지난 80년간 우리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해박한 지식인으로 보이는 저자는 온간 이론, 철학, 사상을 동원하여 일본의 제국주의 사상을 실천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논을 펼친다.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동양평화의 보전'을 위해서다.
저자가 일본인의 시점에서 아시아권을 바라보는 시선을 볼 때마다, 한나 아렌트의 말이 생각났다. ‘한 고양이한테 다른 고양이는 항상 같은 고양이인데, 한 인간에게 다른 인간은 같은 인간이 아니다’(임지현·사카이 나오키, 『오만과 편견』, p38)
서양인이 동양인을 열등하다고 생각하며 귀화할 수 없는 유색인종으로 차별대우한다. 세계의 앞날에 있어 가장 큰 화근은 바로 이 인종적, 문화적 차별관에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도 마르크스의 변증법도 이 문제만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p23
서양열강에게 일본인이 우스꽝스러운 원숭이 취급을 당한 아픈 기억을 이렇게 서술한 것일 테다. 그런데 그 다음 문장이 가관이다.
결국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임무는 일본에게 있다 하겠다. 왜냐하면 일본은 한편으로는 동양문화의 대표자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서양문화의 대표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동서양의 중간에 서서 이지적 또는 감정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위치에 있다. 이 역시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pp.23-24
청나라, 러시아, 당시 강대국들과의 전쟁에서 승승장구하였던 일본이 얼마나 어깨에 힘이 들어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 다음에는 ‘알렉산더 대왕이나 쇼토쿠 태자의 위업을 완성해야만 한다’는 말이 나온다. 도쿄에서 경성으로 수도를 이전하는 일에 과거 역사적인 인물의 이름까지 대며 이것을 달성하는 것이 ‘위업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동서문화의 융합을 위해서 경성천도를 해야 하다는 것이다.
서양인이 동양인을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분개하면서, 일본인은 조선인, 중국인 등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권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열등하고 구제해주어야 하는 존재로 보고 있다. 내버려 두면 동양평화가 보존되기 힘들다고 논한다. 이 점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보는 독특한 시각에도 잘 나타난다.
청일전쟁은 중국이 일본을 너무 우습게 본 나머지 일어난 전쟁으로 일본의 진의가 아니었다. 러일전쟁은 일본이 중국의 무력함을 동정하여 중국을 위해 러시아를 치고 마지막에는 러시아의 침략지를 빼앗아 중국에게 돌려준 전쟁이다. p106
러일전쟁은 만주에 침입한 러시아군을 막기 위해 일본이 중국 대신 일으킨 의로운 전쟁 p34
이러한 저자의 시각은 비단 한사람만의 관점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저자가 당시 교육자였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경성천도는 단기간 고민한 생각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낸 이후로 줄곧 치밀하게 연구하고 숙고하여 저술한 것이 이 책이다. 중국 고전은 물론 성경구절까지 인용한 것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저자는 마치 나쓰메소세키의 소설 '산시로'에 나오는 '사사키 요지로'를 연상시켰다.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학문을 연구하고 논문을 쓰지만 세상사람들에게는 곱게 보이지 않았던,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던 인생이 닮아 보였다.
이 책으로 당시 일본 정세를 비롯해 우리나라와 주변국들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었고, 일본인의 제국주의적 사상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었다. 꼭 읽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