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의 책읽기 - 내 삶을 리모델링하는 성찰의 기록
유인창 지음 / 바다출판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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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직 마흔이 되려면 수년이 남았다. 그런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인생 선배들의 조언이 내 앞날에 여러 시행착오를 덜어줄 것 같은 기대에서였다. 물론 '책읽기'에 서툴기에 그 부분에 있어서도 도움을 받고 싶었다. 왠지 책을 펼치기 전에 제목에서 풍겨오는 이미지는 '마흔 살의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책읽는 것을 권한다. 또는 이런 책을 읽기를 권한다' 였다.

 

책을 주욱 읽어보니, 역시 예상과 빗나갔다. 제목은 추측하기에 아마 마흔살 남성분들에게 공감이 많이 갈 것 같은 글이 곳곳에 있어서 그렇게 지은 듯 하다. 하지만 '마흔'살이라는 나이를 콕 꼬집어서 제목을 붙여서 십대, 이십대, 삼십대에게는 혹 외면당할까 염려가 된다. 내용으로 봐서는 사실 내가 제목을 붙일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인생에서 책읽기', '책읽기로 인생되돌아보기'등 나이와 제한 없이 '인생'에 대한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도서라고 말하고 싶다.

 

곳곳에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이 행복한 삶, 만족하는 삶을 영위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저자가 읽은 책의 인용구와 저자의 해설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여자수영선수인 나탈리 뒤 투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인생의 비극이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달성할 목표가 없는 것이 진정한 인생의 비극이다. 목표달성에 실패하는 것은 치욕이 아니다. 그러나 달성할 목표가 없는 것은 치욕이다.
페이지 : 109

 

그녀는 수영선수로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매진하는 가운데 갑자기 교통사고로 왼쪽다리를 잃게 된다. 절망스럽기도 하고 좌절도 되었겠지. 하지만 사고 후 7년 뒤인 2008 장애인 올림픽이 아닌, 베이징 올림픽에서 여자수영 마라톤 10km에 도전하였다고 한다.

 

자녀교육에 대해서도 하나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다.

자녀 교육의 궁긍적인 목적은 부모의 도움으로 잘 사는게 아니라 부모의 도움 없이 잘 사는 것
페이지 : 119

아직 부모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내 생활을 돌아보면 참 부끄럽다. 부모로서 이런 철학이 없으면 모질게 대하기도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우리 부모님은 아직 이 철학을 모르셨으면 좋겠다. 알아도 눈감아 주셨으면 좋겠다. 못난 딸의 고백이다.

 

어릴 땐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 중에 하나가, 지금 내가 이룬 찬란한 이 성과가 내 공이 아니라, 주위에서 나를 도와주고 응원해신 분들의 덕분이라는 것이다.

내 앞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알 수 없기에 인생은 신비롭다. 무엇을 열망할 때마다 그리고 위기의 고비마다 의인들이 줄지어 나타나 지쳐 쓰러진 나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길을 걷게 했다.
페이지 : 139

 

정말 이 말 그대로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의인들은 가족이 될 수 도 있고, 친구, 지인, 심지어 생판 모르는 남이 될 수도 있다. 신기하게도 그런 의인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생각지 않게. 헤어진 연인도 눈물의 근원에 머무르게 할 게 아니라, 생각을 바꾸면 그 때 내 인생에 나타난 의인이었다고 볼 수 도 있겠다. 오- 큰 위안이 된다. 이런 걸 생각하면, 혼자 이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쓰는 사람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 때, 실천으로까지는 못옮기게 하는 것 같다. 내 인생에 나타나준 의인들에게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이다.

 

그 외에도 많은 명구절들과 저자의 탁월한 관점의 해설이 어우러져 인생을 반추하게 한다. 꼭 사십이 되어야 읽는 책? 그때는 늦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 당장 볼 수 있다면, 바로 권하고 싶다. 특히 내 삶을 되돌아보고 싶다고 한다면, 강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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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사랑 이야기
마르탱 파주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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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아마도'가 붙어 있는 것이 포인트이다.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사랑'에 관한 사색이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어느 쪽이냐 하면 '아마도' 사랑 이야기에 속하지 않겠는가 하는 애매한 제목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이 책. 솔직히 내게는 참 재미있었다.

 

남들이 말하는 '정상적인 인생'을 살지 않는 주인공, 비르질은 마치 나를 보고 있는 듯 했다. 꼭 나 뿐이겠는가. 작가를 수식하는 말에 '프랑스 젊은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라는 문구가 있다. 현대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다분히 많이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표지에서 파리의 에펠탑을 붙잡고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는 이 책의 주인공, 비르질을 묘사하는 것 같다. 제목 오른쪽 위에 뜬 환한 달빛 안에 하트 모양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읽기 전에는 어떤 사랑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내용은 주인공 비르질의 2주간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다루고 있다.

 

 

파리의 어느 창녀들이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사는 주인공의 생활은 남들이 보기에 '정상'이 아니다. 지금껏 사귄 여자들의 공통점, 그리고 그의 생각에 '장점'은 그녀들을 볼 수 없게 되도 참을 만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녀들을 선택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잃는다고 해도 그 아픔이 너무 오래가지 않을 여자들, 그런 여자들을 골랐던 것이다.p158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들과 다시 연락을 시도해 본 적은 없었다. 그녀들과의 이별이 너무 슬퍼서 그런 게 아니다. 충분히 슬프지 않았기 때문이다.p157

 

사람들과 특히 이성과 깊은 교감을 하는 관계까지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주인공. 친한 친구는 이렇게 얘기한다.

 

"넌 어차피 너를 차버릴 여자들만 고르는 것 같아. 너의 그 병적인 고독을 확신하고 싶은 거지."p149

 

나중에 상처를 받는 것이 두려워 철저하게 거리를 두고 차단시키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내가 보였다.

 

그가 생각하는 '결별'이란?

 

결별만큼 고통스러운 경험이 또 있을까. 헤어진다는 것은 꼼꼼히 준비한 테러와도 같다. 가슴 속에 폭탄을 설치해놓기 때문이다. 따라서 폭발의 충격을 피할 수 없다.p8

 

'결별'을 두려워하기에 '여행'처럼 언젠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사랑'을 해온 비르질. 그러면서도 사람의 온기에 갈증을 느끼며 산다.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흔적이 간절하기만 한 그였다.p23

 

비르질은 메시지를 받는 것이 좋았다. 친구든 부엌가구 판매원이든, 메시지를 받으면 자신도 사회 속의 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p7

 

스팸 문자메시지조차 반갑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창문이 없는 작은 고시원 방에서 아침 일찍 진동으로 어느 슈퍼의 광고 문자 메시지가 날라왔다. 바나나가 얼마고 돼지고기가 얼마다. 그런 내용이었다. 그렇게 아침을 열었다. 그 슈퍼가 참 고맙게 느껴졌다. 대중에게 보내는 메시지였지만 그 슈퍼가 그 순간 유일하게 내 존재를 기억해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생일을 축하해주는 홈쇼핑, 서점 등에서 보내주는 짧은 이메일에 감동하기도 했다. 백수인 나에게 한번씩 보험을 들라는 전화가 걸려오면 어느 날은 핸드폰 너머 젊은 남자 상담원 목소리가 그윽하고 멋있어서, 보험에는 관심도 없는데 흠칫 놀란 적도 있었다.

 

자동 응답기 버튼을 누른다.

"비르질."

여자 목소리다.

그는 매혹적인 멜로디를 한껏 느껴보려 응답기 스피커로 바짝 다가갔다. 하느님은 여자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을 거다. pp.7-8

 

응답기 스피커로 바짝 다가가는 비르질의 모습에서 귀를 쫑긋하며 남자 상담원의 목소리에 집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성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비르질이 애정을 가진 대상은 '파리'였다.

 

그는 파리라는 도시가 사랑의 대상이 될 것임을 다짐했다. 어딘가에는 사랑을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파리는 결코 비르질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찾을 때면 언제든지 파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 p204

 

어떠한 지역이 될 수도 있고, 동물이 될 수도 있고, 책 또는 음악, 돌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소통하고 싶으나 '사람'에게 '이성'에게 다가가기를 주저하는 우리는 이처럼 사람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애정을 쏟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편','아내','자녀'가 없는 솔로인 경우는 더욱 그러할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의 고독은 여전히 존재한다. 알면서도 그럴 수 밖에 없다.

 

회사에서 우수한 실적으로 승진을 통보받는 자리에서 비르질은 '승진을 꼭 해야 한다면 사표를 쓰겠'다고 단호하게 말을 한다. 왜?

 

비르질은 조용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원했다. 아주 작은 변화 때문에 안그래도 깨지기 쉬운 그의 존재가 허물어져 버린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노조에 연락을 할 생각이었다. 왜 승진을 해야 하는가? 야심 때문에 타락하도록 자신을 방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르질이 일을 하는 이유는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지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p111

 

결국 노조 사무실에도 찾아가지만 승진과 연봉인상을 철회하기를 원하는 비르질의 요청은 웃음만 살 뿐이었다.

 

하지만 후반부에 가서는 아무 혐의도 없는 비르질이 경찰들이 보는 관점에서는 '매춘 알선'혐의를 뒤집어 쓰고 어두컴컴한 경찰서 지하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이 대목은 정말 너무나도 우스워서 배꼽을 잡았다) 이런저런 말도 안되는 일들을 2주동안 갑작스럽게 체험하는 비르질은 책의 말미에서는 초반부와 확연히 다르게 관점이 변화한다.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날 줄도 알아야 한다(p246)'는 메세지를 날린다.

 

이 책에서 비르질의 생각으로는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생활이, 주위 사람들 그리고 비르질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더더구나 '비정상'적이고 '특이'한 사람으로 비춰지는 과정이 참 인상깊었다. TV 프로그램 중 독특한 사람들을 이웃 사람이 제보해서 그들의 일상과 왜 그런 특이한 생활을 하는지 보여주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비르질은 그 프로에 나오는 주인공이고 독자들은 시청자와 같다고 하면 근접한 비유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알고보면 비르질이 그런 인생을 사는데도 이유가 있었고,(안정을 추구하였던 것은 서커스단이었던 부모님이 늘 옮겨다니는 불안정한 생활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러 경험을 통해 비르질은 자신의 틀을 깨고 나오려고 한다.

 

그 외에도 저자의 예리한 관찰력과 감각적이고 풍부한 묘사를 느낄 수 있는 여러 구절들이 있었다. '시장바구니'를 '프라이버시'로 비유한 대목. '걷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기에 '좋은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대목, 비르질이 일을 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장면에서 '일을 하면 무중력 상태에 있는 기분'이라고 표현한 대목, 아이들의 돌발적이고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 길을 건너는 자살행위'등과 같이 '자살행위'로 비유한 대목 등이 있다.

 

저자가 일본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용 중에 일본과 관련되는 단어들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약간 놀랐다. 브리질은 짧은 시인 '하이쿠'를 짓는다든지, 근세시대 유명한 화가인 '호쿠사이 작품집을 훑기도' 했다. 한류 붐과 함께 일본을 겨냥해서 한국드라마에 일식집이나 오뎅가게에서 주인공들이 식사를 하는 장면을 자주 넣었던 것처럼, 이 작품이 일본에 번역되어서, 베스트셀러가 될 것을 겨냥한 것인지, 프랑스 사람들에게 일본적인 것들이 일상생활과 친밀한 것인지, 아니면 저자가 특이하게 일본에 관심이 많은 것인지 한번 시간을 두고 알아보고 싶어졌다.

 

조용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원하는 사람들 또는 그런 생활에 질린 사람들에게 특별히 추천하고 싶다.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고, 잠시나마 유쾌한 시간을 즐길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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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토익 만점 수기 - 제3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심재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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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컴에서 중앙장편문학상 발표가 났을 때 처음 알게 된 이 소설. 책으로 출간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제목과 대충의 줄거리만 보고도 무척 기대가 되었다. 다행히 내 기대는 적중했고 뒷표지에서 심사위원들이 쓴 말, 이 시대가 문학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의 결정체라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책을 읽어 나가는 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연신 웃음이 나왔고 계속해서 다음 내용이 궁금해졌다. 토익 만점을 받아본 적도 없거니와 그걸 바란 적도 없던 나에게는 왠지 이 책을 읽고 나니, 주인공 '나'와 같은 의지와 집념으로 토익 만점에 한번 시도해볼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만점을 받기 위해 호주로 홀연히 떠나 인질이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요즘 토익 만점은 '나 눈 두 개 달렸소' 하는 것과 같아.

나는 후배에게 그렇게 말하려 했다.

그렇게 말하면 멋있어 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눈이 하나이기 때문이다.p268

 

호주에서 눈을 하나 잃게 되지만 그래도 토익 만점이라는 목표만은 놓칠 수가 없는 '나'. 영어를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기 힘든 나라, 한국은 호주에 사는 외국인의 시각에서는 괴상한 나라이다. 한국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되느냐는 요코의 질문이 마음아프게 들려왔다.

 

2년간 요코와 스티브 부부는 서로 말이 없었지만 '한국어'라는 낯선 언어, 매개물이 들어오자 둘은 마음을 열게 된다. 모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도 외국어로는 스스럼없이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나'가 그랬던 것 처럼 외국어로 입을 열려고 할 때, 유창한 모어로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말을 만들고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된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재치가 넘치고 냉철하면서도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회를 꼬집은 이 작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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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아니라도 좋다 - 안성기의 길, 안성기의 영화
무라야마 도시오 지음, 권남희 옮김 / 사월의책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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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부모님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놀랄 때가 있다. 국가에서 정한 통금시간이라는 게 있어서 몇시 이후로는 밖에 나다닐 수도 없었다고 하고, 다니다가는 경찰서에 잡혀들어갔다는 것이다.  지금은 아무 제약이 없는 자유로운 시대이지만, 사람들의 생활에 여러가지 제약이 많았던 시대. 그 시대 영화인으로서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에 직면했을까? 이 책을 통해 상세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안성기씨에 반한 일본인 저자

 

책을 읽기 전에는 일본인 저자라는 점이 좀 생소했다. 언어가 같은 한국인이 안성기씨를 더 잘 이해하고 잘 표현해 낼 수 있는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읽고 보니, 내 생각은 기우였다. 저자는 정말 그야말로 '안성기통'. 요새 애들말로 하면 '안성기덕후'였던 것이다. 안성기씨가 살았던 한국의 과거 시대배경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물론, 안성기씨가 출연한 영화에 대한 간략한 설명들과 그 안에서 안성기씨가 얼마나 멋졌고 돋보였는가에 대한 저자의 느낌 등을 상세하게 적어놓았다.

 

수십년간 급변한 한국의 정세를 생각했을 때, 50대 이상이 체험한 젊은 시절의 한국은 나를 비롯한 그 후속세대에게는 외국같이 낯설고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일본인의 눈으로 본 한국의 과거 시대상은 오히려 내가 배우는 입장이 되는 기분이었고 이해하기가 쉬웠다. 저자의 치밀한 자료 조사와 이해하기 쉽게 잘 서술한 점 등에 대해서 존경스러워졌다.

 

 

인간 안성기

 

TV, 영화에서만 보던 안성기씨는 그냥 현재의 멋있는 모습 그대로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 것 같았다. 그런데 볼살이 통통한 어린 시절도 있었고, 아역 배우 생활을 하느라 기초 공부가 부족해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경험도 있었다. 대학 입학 시에는 졸업 후 베트남에 있는 대기업 홍보부에 취직해서 활약해보리라는 큰 꿈을 안고 베트남학과에 진학하나, 기대와 달리 미국이 지는 바람에 그 꿈은 물거품이 된 과거도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큰 자양분이 되었던 백수생활도 있었다. 국민배우, 스타 안성기씨가 아니라 인간 안성기씨를 만나는 기분이 묘하고 유쾌했다.

 

 

지난간 한국영화는 예전에 TV에서 보여주면 어쩌다 보고 했을 뿐인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책에 나온 영화들을 다 찾아서 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에서 배경지식을 얻은 것을 바탕으로 영화를 보면 새롭게 다가올 것 같은 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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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카페 산책
코사카 아키코 지음, 김순하 옮김 / 아이비라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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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카. 우선 후쿠오카가 낯선 분들을 위해 어떤 지역인지 잠깐 살펴보고 싶다.

 

 

후쿠오카는 일본의 큰 네 개 섬 중 가장 아래 규슈의 북부에 있다.

행정상 후쿠오카현과 후쿠오카시는 다른 개념이다. 후쿠오카현(현은 우리나라로 치면 '도'의 개념)안에 후쿠오카시(후쿠오카 현청소재지)가 있다. 후쿠오카시는 규슈지방의 경제, 행정, 교통, 문화의 중심지이다.

 

이 책에 나온 커피숍은 총 40곳으로, 그 중 후쿠오카시 33곳, 그 외 7곳(목차에서 '교외의 카페'라고 나온다)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비행기로 가는 것보다, 부산에서 후쿠오카 가는 게 시간이 더 짧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부산과 물리적으로 가까운 지역이 후쿠오카이다.

인구는 148만여 명 정도로, 한국의 대전이 150만을 넘는다고 하니 그 정도로 예상할 수 있겠다. 

 

 

커피숍과 카페

 

우리나라말로 '커피숍'과 '카페' 2개를 어떻게 구분해서 쓰면 좋을까? 그외에도 비슷한 단어가 더 있다. 커피전문점, 다방 등. 알쏠달쏭하다.

 

일본어로도 '카페(カフェー)'와 '깃사텐(喫茶店)'이라는 두 단어가 있다. 물론 카페라는 말이 깃사텐보다 사용된 역사가 짧긴 한 것 같지만 어떻게 구분해서 사용하는지 참 애매하다. 그런데 이 책에서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어서 참 유쾌했다.

 저자가 의미하는 '깃사텐'은 혼자 조용히 자신과 대화할 만한 여백이 있는 자유로운 공간(p3)이라고 한다.

 

무언가를 발산하지도, 동료가 생기지도, 만남을 요구하지도 안고 담담하게 자신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 그런 시간이 허락되는 장소가 내가 생각하는 깃사텐이다. (pp.3-4)

 

후쿠오카의 한 커피숍 주인은 이렇게 말을 한다.

 

"깃사텐은 점차 사라져 갑니다. 폐쇄적이지만 따뜻한 분위기가 감돌고 그 안에 개성적인 고객이 있어 일본의 독특한 향기가 만들어지는 곳입니다. 그런 곳은 사람들의 공허함 같은 것을 메워줍니다."p49

 

그렇다. 공허함을 메워주는 곳. 한국에서 커피가 유난히 붐이라는 언론의 소리를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왜 유독 한국에서 커피가 지금 붐일까? 물론 커피를 소재로 한 드라마의 유행, 노래 등의 영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따뜻한 분위기가 감도는 곳, 공허함을 메우는 곳, 사람과 소통하고 만나는 장소를 찾고 있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 많아서가 아닐까 싶었다.

 

이 책에 나온 '깃사텐'의 주인들은 그런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섬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고 배려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떤 곳은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 자신에게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10년 동안이나 커피숍 주인에게 자택 열쇠를 맡겨둔다(p14)고 한다. 여성고객을 배려해서 커피숍 내부 배경을 회색으로 한 곳도 있다.

 

"배경을 회색으로 하면 여성의 의상이 돋보이게 됩니다."라는 주인의 말대로 실내장식은 지극히 단순하다. 그럼에도 이 카페에서는 어딘지 모를 품격이 느껴진다.p91

 

의상의 색이란 배경에 따라 달라보이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같아도 내 의상을 돋보이게 하는 그 커피숍을 즐겨 찾을 것 같다.

고객보다 좋은 것을 입거나 반지를 끼는 것도 삼가는 커피숍도 있다. 멋을 내고 싶으면 앞치마로 치장을 한다고 한다.(p139) 사소한 것이지만 고객을 배려하고 편안한 시간을 만끽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문을 닫는 커피숍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고 하나 여전히 건재한 그들에게 분명한 이유가 있었구나 싶기도 했다. 

 

 

커피와 관련된 사색

 

'커피바보', '커피의 신'이라고 불리는 모리미쓰씨는 바흐의 음악을 듣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단품인 커피콩은 멜로디이지만 브랜드는 여러 멜로디가 조화를 이루는 화음의 세계이겠지요. 바흐의 음악이 왜 기분이 좋은지 생각해 보면 그의 음악의 음표 배열에는 뚜렷한 과학적인 뒷받침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커피도 그렇게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바흐가 악보에 음표를 써내려갔듯이, 저는 한 방울 한 방울 커피를 내리면서 제 나름대로 그와 같은 커피 인생을 보냈으면 합니다.  pp.30-31

 

커피에 얼마나 몰입되어 있는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또 다른 커피숍 주인은?

 

"언젠가 온도계에 의지하지 않고 커피콩 소리를 듣게 된다면 커피장인이라고 하겠지요." p159

 

어쩜 이런 생각까지 할 수가 있을까? 이렇게 커피를 좋아하고 몰입되어 있는 그 모습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후쿠오카 카페 산책을 직접 하는 듯한 기분

 

이 책은 한권으로 후쿠오카시내와 시외의 40곳의 커피숍을 둘러볼 수 있고 그 주인들의 철학,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어떻게 40곳이나 되는 커피숍을 각각 다른 시각과 관점으로 한결같이 따스하게 바라보고 서술할 수 있는지 저자의 그러한 풍부한 표현력에 감탄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진이 많아서 직접 가서 보는 듯한 생생한 느낌이 전해져서 좋다. 다양한 실내디자인, 자연친화적인 실외디자인, 세련된 컵, 커피와 관련된 도구 등 가능한 사진을 많이 담고 있어서, 직접 인터뷰에 동참하여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할 정도이다.

 

 

후쿠오카에 갈 일이 생기면 꼭 이책을 한켠에 넣어 가지고 가서, 몇군데 순회를 하고 싶다.

 

책을 읽고 저녁에 동네 주변을 산책하고 오는 길에 동네 커피숍이 눈에 들어왔다.

저 커피숍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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