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박영희-


사람의 깊이를 모르겠다
어제의 얼굴이 다르고
오늘 얼굴이 다르다

저렇게 넓은 집에서 어떻게 시가 나올까
저렇게 윤기나는 밥상에서 어떻게 소말리아가 보일까
저렇게 멋진 자가용을 타고 다니면서 어떻게 실직자들이 보일까

노을의 실체를 알고부터였다
오랫동안 헤어져 지낸 친구를 만나
차를 마시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러도
마음이 열리지가 않는다. 저 삶이 정말 정당한 것인지

오죽했으면 사람의 깊이를
패랭이꽃에게 물었으랴
오죽했으면 사람의 깊이를
날아가는 새에게 물었으랴

오늘도 나는 잔가지만 잔뜩 보고 돌아와
꽃병 가득 꽂혀 있는 장미를 들어낸 뒤
꽃병 안만 들여다본다

눈물로 꽃을 키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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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이외수-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개똥같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나서지
바람이 차다고
고단한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거라네
아차 하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십상이지
화투판 끗발처럼 어쩌다 좋은 날도 있긴 하겠지만
그거야 그때 뿐이지
어느 날 큰 비가 올지
그 비에 뭐가 무너지고
뭐가 떠내려갈지 누가 알겠나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지
개똥같은 희망이라도 하나 품고 사는 건 행복한 거야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불쌍한가

자, 한잔 들게나
되는 게 없다고 이놈의 세상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술에 코 박고 우는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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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노래/백창우-


네가 내게로 와
네 가진 사랑의 말들을 나눠 주었듯
나도 네게로 가
내 가진 노래들을 들려주고 싶구나.
때로는 살아간다는 것이
몹시 외롭기도 하지만
네가 있기에
네가 있기에 아직은
견딜 만하지.

네가 내게로 와
내 가진 절망들을 만져 주었듯
나도 네게로 가
네 가진 슬픔들을 보듬어 주고 싶구나.
때로는 살아간다는 것이
몹시 막막하기도 하지만
네가 있기에
네가 있기에 아직은
견딜 만하지.

네가 내게로 와
어둠 차 있는 내 마음에 등을 켜 주었듯
나도 네게로 가
너를 비추는 별이 되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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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는 나의 나태함으로

초라해진다.

가끔 나는 나의 오만함으로

초라해진다.

가끔 나는 나의 무능함으로

초라해진다.

가끔 나는 나와 타협하는 내자신의 비열함으로

초라해진다.

나태하지 않기.

오만하지 않기.

비열하지 얺기.

그래서 유능한 내가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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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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