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토끼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7
존 업다이크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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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농구선수로서 화려한 이력을 자랑했던 주인공 래빗 엥스트롬, 현재는 싸구려 잡화점에서 주방용품을 선전하는 일을 한다. 화려했던 이력과 달리 초라한 현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이 변해버린 아내 재니스, 아들 넬슨, 그리고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가족들. 어느 날, 숨막히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 래빗은 자신이 덫에 걸렸다고 확신한다.

 

래빗은 현실과 욕망 사이에서 방황한다.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책임감과 이를 회피하고자 하는 욕망은 종교적 양심을 사이에 두고 갈등한다. 그 갈등 안에서 래빗의 선택은 어리석고 답답하기만 하고, 방향성이 없는 욕망은 래빗을 점점 현실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순간 순간 래빗은 자신이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되묻지만(종교적 양심이 그에게 묻는다), 이러한 물음은 래빗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을 힘이 없다.

 

래빗의 첫번째 욕망은 시시하게 끝나는 듯 했다. 래빗은 재니스와 한바탕 말다툼을 하고 난 뒤, 집을 나와 부모님 집에 있는 아들을 데리러 간다. 그 길에서 현실을 회피하고자하는 욕망은 그를 목적없이 달리게 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믿지만, 곧 자신의 길이 아님을 알고 돌어선다.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은 일탈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래빗의 욕망은 방향을 바꾼다. 재니스와 아들이 있는 가족의 품으로가 아닌, 과거 자신을 가르쳤던 농구감독 토세로를 찾아간다. 조언을 얻기 위해서 그를 찾아가지만, 그와의 만남에서 또 다른 욕망이 시작된다. 두번째 욕망은 몸을 파는 루스와의 만남을 통해서 외도라는 무게를 더한다. 그리고 래빗은 가족을 버린다. 이것은 그가 감당할 수 없는 또 다른 현실이 된다. 여기서 양심은 그를 되돌려 놓으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교회 종소리가 크게 울린다.... 래빗은 그 사람들이 집을 나와 이곳으로 와서 기도를 하겠다는 대담한 생각을 한것에 기분이 좋고 왠지 마음이 놓인다. 실제로 가슴이 뭉클하여 그 자신도 눈을 감고 루스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약간만 고개를 숙인다. 도와주소서. 그리스도여. 저를 용서하소서. 길을 인도해주소서(130-131)

 

인생에게 자유의지란 무엇일까?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때론 그 선택의 결과가 혹독하다. 어쩌면 래빗의 자유의지는 어린 아이가 속에 든 것이 무엇인지 모른채 색깔있는 은종이에 홀려서 맛없는 사탕을 고르는 것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색깔있는 은종이를 벗기고 입 속에 사탕을 넣었을 때, 비로소 그 맛을 알 수 있다. 그것을 묵묵히 다 먹어버릴지, 뱉어버릴지의 자유의지는 사탕을 고를 때의 자유의지보다 더 고통스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누가 래빗를 비난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은 운좋게 맛있는 사탕을 골랐을 수 도 있지 않을까? 스미스 부인과의 대화는 인간의 자유의지의 결과를 잘 설명하는 것 같다.
그녀는 사탕 그릇을 들고 넬슨에게 가 있다. "하나 먹어봐라. 오래되기는 했지만 좋은 거야. 이 세상의 오래된 것들이 대개 그렇듯이." 그녀는 투명한 붉은 유리로 만든, 손잡이가 달리 반구 모양의 투껑을 열더니 그릇을 흔든다. 넬슨이 건더다보자 래빗은 먹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넬슨은 색깔 있는 은종이에 싸인 것을 하나 고른다. "그건 별로일걸." 래빗이 넬슨에게 말한다. "안에 체리가 있는 거야." "쉬잇"스미스 부인이 말한다. "아이가 원하는 걸 고르게 해줘요." 그래서 가엾은 아이는 은박지에 홀려 그래도 그것을 잡는다(318)

 

래빗이 선택한 결과는 냉정했다. 재니스의 출산으로 래빗은 루스를 버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갈 희망을 잡으려하지만 재니스와 엇갈리고 만다. 동시에 루스와도 엇갈린다. 래빗은 자신의 아이를 가진 루스를 버린 것이었다. 처음 재니스를 버릴 때처럼... 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지만 이미 늦었다. 그리고 재니스가 낳은 아이가 죽었다. 처음 일탈의 결과와 다르게 두번째는 모두에게 상처를 주었다. 래빗 자신에게도... 
래빗은 진실을 느낀다. 그의 삶을 떠난 것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 아무리 찾아 헤매도 되찾아올 수 없다는 것. 아무리 날아가도 거기에는 이를 수 없는 것. 그것은 여기에 있었다. 동시에 우리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이다(322)

 

젊음의 귀는 어둡고, 젊음은 경솔하다. 래빗이 그랬다.
"해리. 네 끔찍한 소식을 들었어. 내가 경고했잖아."... "언제요?"... "그 첫날 밤에. 내가 돌아라고 했잖아. 간청을 했잖아."(396-397) 옳으냐 그르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게 아니야. 우리 우리가 만드는 거야. 불행를 막기 위해. 변함없이, 해리,변함없이. "불행은 그것을 따르지 않는 데서 나와. 우리 자신의 불행은 아니지. 처음에는 우리 자신의 불행이 아닌 경우가 많아. 그런데 이제 너도 너 자신의 인생에서 그런 예를 하나 본 거야."(397) "나는 경고를 했어." 그가 말한다. "너한테 경고를 했어, 해리. 하지만 젊음은 귀머거리지. 젊음은 경솔해."(398)

 

아이의 죽음 이후에 래빗의 현실은 더 처절하다. 돌아갈 길이 없어졌다. 늦었지만 최선의 답을 선택할 기회마저 눈앞에서 놓치고 만다. 레빗은 정말 구제불능이다. 아이의 장례식에서 무슨 짓을 한거야!!! 
" 날 보지마." 그가 말한다. '내가 그 애를 죽인 게 아냐."... 그들은 오해하고 있다. 그는 그저 한 가지를 분명히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가 머리들을 향해 설명한다. "여러분은 모두 계속 내가 그런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근처에 있지도 않았어요. 이사람이 그런 겁니다." 그는 그녀를 돌아본다. 따귀를 맞은 듯 풀려버린 그녀의 얼굴은 절망적일 정도로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야, 괜찮아." 그가 그녀에게 말한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잖아." 그는 그녀의 손을 잡으려 하지만 그녀는 덫을 피하듯 얼른 손을 빼며 그녀의 부모 쪽을 본다. 부모가 그녀에게 다가간다."(418-419)

 

그 길로 도망치듯 장례식장을 나온 래빗은 또 다른 길이 있다고 믿는다. 그 답을 루스에게서 찾으려 하지만, 루스의 반응은 냉정하다. 결국 래빗은 모든 것을 잃었다. 
모르겠어... 그는 모른다. 뭐 해야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가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무한히 작게, 잡는 것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 작음이 광대함처럼 그를 채운다. 상대편이 그가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비 두 명을 붙이는 바람에 어느 족으로 돌든 둘 중 한 명과는 부딪치게 되어 있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패스하는 것 밖에 없던 때와 비슷하다. 그래서 그는 패스를 했고 공은 다른 사람들에게 갔고 그의 손은 텅 비었고 그를 막던 사람들은 멍청해 보였다. 결과적으로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436)

 

그는 달린다. 아, 달린다. 달린다.
래빗은 어디로 달려가는 것일까? '그는 달린다. 아, 달린다. 달린다'로 끝나는 이 책에는 결론이 없다. 다만 여전히 방황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우주에서 내려다 봤을때 우리는 작가의 말처럼 유리 위의 얼룩과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더럽고 작은 것을 우주가 왜 그냥 지워버리지 않는지 궁금하다(408)" '더럽고 작은... 불안하고 방황하는...' 이러한 존재인 래빗에게 작가 역시도 어찌할 수 없는 연민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계속되어야 해. 우리에게 남은 것을 가지고 계속 나아가야해"(389)라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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