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깊은 밤. 책을 다 읽었다. 문뜩 엄마가 보고 싶어 잠든 엄마의 얼굴을 한참 동안 보고섰다. 자신의 인생을 떼내어 아낌없이 자식에게 주기만 했으니... 작게 쪼그라든 엄마가 숨을 쉬는지 가슴을 쓸면서 코끝에 손가락을 대보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큰수술을 마친 엄마를 보며 더 살아달라고 마음 속 또 다른 나는 기도할 수 없었다. 더 사는 것이 어쩌면 병과 싸우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일 수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 엄마 냄새가 사라져 버린다는 것...'그래도 내곁에 오래있으면 안돼? 난 아직도 엄마가 필요하다구.' 마취약에 취해 정신이 혼미한 엄마손을 잡고서 난 철없게도 이기적인 투정을 부렸다.

 

부모가 자식을 낳고 키우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치부해버리면 엄마의 고된 지난 날은 미치도록 서럽고 가슴이 시리다. 하지만 엄마라는 존재가 한없이 안쓰럽다가도 문뜩 문뜩 무겁게 내 마음을 누른다. 그 묵직함을 견디어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또 벗어나고 싶기도 하다. 엄마도 나를 키우면서 그랬을까?

 

책을 읽으면서 위트있는 글솜씨에 유쾌했고, 작가의 진심이 마음에 세겨져 작은 돌덩이들을 만들어 놓았다. 마사야의 이야기가 더 선명하게 머리에 가슴에 고스란히 담겨지는 것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머지않은 어느날 내가 마주해야할 슬픔이기 때문일 것이다. 참회록처럼 들렸던 마사야의 고백들은 내 고백이기도 했다.

 

#159. 아부지의 인생은 큼직하게 보이지만, 엄니의 인생은 열 여덟 살의 내가 보아도 어쩔 수 없이 아주 작게 보였다. 그건 자신의 인생을 뚝 잘라 나에게 나눠주었기 때문인 것이다.

 

#302. '장난삼아 어머니를 업어보고 너무나 가벼워서 눈물을 흘리느라 세 걸음을 못갔네.' 이사카와 다쿠보쿠가 눈물을 흘리며 발을 멈추었듯이, 누구나 예전에는 크게만 보이던 어머니의 존재를 조그맣게 느끼는 순간이 다가온다. 크고 부드럽고 따스했던 것이 작고 꺼칠꺼칠하고 차갑게 느껴지는 때가 온다. 어머니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도 아니고 자식이 그만큼 커버렸기 때문도 아니다. 분명 그것은 자식을 위해 애정을 토해내고 또 토해낸 끝에 풍선처럼 쪼그라든 여인의 모습일 것이다.

 

#302. 5월에 어느 사람은 말했다. 아무리 부모에게 효도를 했어도 언젠가는 분명 후회할 것이다.아,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줄 것을, 하고,

 

#349. 엄니는 쌔액쌔액 아기가 자듯이 조용했다. '엄니, 이제 갈거야?' '나, 아직 엄니한테 아무 것도 못해줬는데?'

 

#409-410. 그러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가족이 있고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것이 있고 마음속에 광대한 우주를 가졌고, 또한 어머니가 있다. 언젠가 혹은 이미, 이 모든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슬픔을 경험할 것이다...(중략) 모두들, 참 대단하다, 참 애들 쓰고 있구나... 인간이 어머니로부터 태어나는 한, 이 슬픔을 면할 수는 없다. 인간의 목숨에 끝이 있는 한, 이 공포를 마주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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