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을 입고 산자락에 놓인 학교와 집을 왔다갔다 하면서 제멋대로 감동에 겨워하며

읽었던 책 이야기가 나와 반가운 마음에 오늘 아침 재독하면서 찰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27) 



세계 최고의 석학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일에 은근 자부심을 가진 당신은 언젠가 제게 그렇게 이야기했지요. 왜 항상 이상한 책만 읽어? 음, 그러니까 처음에는 농담이려니 생각을 하고 빙긋 웃기만 했는데 뇌과학에 미쳐 그쪽 관련서와 불경만 읽어대던 당신이 두 번째로 이상한 책 읽고 있어, 라고 할 때는 아 농담이 아니구나 알았습니다. 내가 혹여 뭘 잘못했던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당신의 연락을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당신은 논문을 쓰는 게 아니면 항상 야동을 보고 있잖아, 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음 이렇게도 저렇게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내가 친구들과 읽는 책이 왜 당신에게는 '이상한' 책이라고 여겨지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그때 정이 확 떨어지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정이 떨어진 건 이때가 처음은 아니지만) 다른 이들이 읽는 책을 두고 나도 '이상한' 책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던가 곰곰 생각에 잠겼습니다. 당신의 이성은 뛰어날지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당신의 뇌가 갖고 있는 힘이나 당신이 떠받드는 카르마의 법칙은 논리적일지 모르겠으나 당신의 마음은 그렇게 뛰어날 정도로 선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그때 명확히 알게 된 거 같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전 여자친구들에게 잠자리가 끝난 후에 아이참 어여쁘다, 라며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하는 게 일종의 버릇이라는 걸 저는 어떻게 해서 알게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가식적인 미소가 참 싫어서 나는 그냥 그때 나도 모르게 좀 비웃음을 흘렸던 것도 같습니다, 의도치 않게. 정확히는 다 같이 늙어가는 판국에 잠자리를 갖고난 후 아이참 어여쁘다, 라니, 너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으스스해서 내가 스무살도 아니고 서른살도 아닌데 같이 늙어가는 판국에 아이참 어여쁘다,라뇨. 아재, 그건 좀 아닌 거 같습니다, 라는 마음으로 비웃음을 흘렸던 것도 같습니다. 원조교제하는 열일곱짜리 소녀가 들어야 하는 말 아닌가, 아이참 어여쁘다, 라는 멘트는, 라는 생각에 소름이 오소소 돋으며 혹시 이 남자가 원조교제라도 했던 경험이 있을까봐. 내가 읽는 책들이 참으로 이상한 책이라면 당신과 당신의 동료들이 열에 들떠 읽는 그 복잡다단한 책들은 이상하지 않은 책인가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렇게까지 굳이 할 필요가 있나 싶어 가만히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의 입술을 바라보았습니다. 술을 하도 많이 마셔 이 인간이 술에 취하지 않은 평상시에도 커피를 마시며 주정을 하는 건가? 라는 마음으로. 일이 끝나고난 후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써도 되나? 물었더니 나인 것만 모르면 괜찮아, 라고 대답을 해서 속으로 다른 이들이 당신이 당신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모를까? 물론 오롯이 있는 그대로 모든 것들을 이야기할 생각은 없지만 나는 꽤 세세하게 당신 이야기를 하게 될 텐데 어느 선까지 당신의 이야기를 써야 하는 건가 가만히 연필을 굴리다가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가볍게 5키로를 달리고 봄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 잠시나마 살았던 옛동네를 멀리서 바라보며 사진을 한 장 찍고 캔맥주를 하나 따서 조금씩 입술 안으로 흘려넣으며 딸아이가 귀가하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저녁식사 준비를 천천히 합니다. 그 전에 잠깐 또 이상한 책을 조금 읽고 그래요, 저는 이상한 책을 읽는 여자입니다, 하지만 이 나이가 되어 야동을 보며 혼자 도파민에 젖는 인간은 아닙니다, 그러니 그냥 계속 이상한 책을 읽으며 살래요. 야호. 당신은 논문을 쓰다가 야동을 보도록 해요, 논문을 쓴다는 것도 참 중요한 일이려니, 후학을 기르는 일도 참 중요한 일이려니 싶지만 나는 다른 이들에게 너그럽고 자신에게 엄격한 인간이 좀 더 좋더군요. 당신은 너무 가끔 잔인하고 너무 가끔 차가워서 무섭기도 했어요, 당신은 내게 무서운 여자, 라고 했지만. 그러하다면 이것이 우리의 전생이 지어낸 업보가 아니던가요, 당신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카르마의 법칙에 따르면, 이라고 이상한 책을 읽다 말고 생각해봅니다. 아 궁금한 마음에 구남친에게도 물어봤죠. 너도 그 나이에 아직도 야동 보니? 라고. 구남친은 나와 동갑내기. 그랬더니 머뭇거리다가 응, 보지, 가끔, 이라고 해서 한참 웃었습니다. 인간이려니, 하고 좀 너그러운 마음이 되기도 하더군요, 나도 남자야, 아직! 이런 구남친의 멘트를 들으면서 아니 누가 뭐라고 그랬나?! 나도 여자야! 라고 대꾸하면서 웃음. 마음이 너그러워지니 자꾸 이런저런 소리를 웃으면서 할 수 있게 되니까 봄은 오고 잔인한 마음은 조금씩 누그러지는군요, 가끔 확 지랄을 떨고 싶어질 때도 있긴 하지만. 봄은 한반도에 겨우 한달 머무른다 하고 여름이 바로 시작된다고 아줌마들이 다이어트를 시작하더군요. 덩달아 저도 무거운 엉덩이를 이끌고 헛둘헛둘 자리에서 일어나 이상한 책을 읽다 말고 움직입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석학 레벨이잖아, 그러니까 아무데서 너는 이상한 책 읽는 사람, 나는 꽤 멋진 책만 읽는 인간, 이러고 다니지 마, 쪽팔려, 내가.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5-02-25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한‘ 책이라고 여기는 판단은 그 사람의 학식과는 오히려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모르는 세계는 다 이상한 세계지요. 내가 모르는 책은 명작이 아니구요 ㅋㅋㅋㅋ그러니깐 인간은 보통… 자신이 ’모르는‘ 세계에 대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다만 그 사람이 남자이고 특히 유럽인일 경우에는 그 ‘이상하다‘는 판단이 적확하다고 여겨지죠.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ㅋㅋㅋ
김훈의 말이 생각나네요. 대학원 졸업한 딸이 페미니즘 기질은 없냐는 질문에, 우리 딸? 그런 못된 사조에 물들지 않았다.

모르면 이상하고 제대로 모르면 못 됐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고 말하는 치들이란 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5-02-25 20:39   좋아요 1 | URL
연인이 읽는 책을 두고 ‘이상한‘ 이라는 형용사를 쓸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망치로 순간 맞은 듯한 느낌이란. 구남친이 하는 말이 환상이라는 프레임을 지니고 상대방을 마주했을 때 그 ‘환상‘의 프레임이 깨지고난 이후에도 사랑의 지속성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너무 뻔하잖아, 라고 할 때도 앗차차 하기는 했지만요. ‘이상한‘ 책을 읽는 인간은 ‘이상한‘ 인간이죠. 왜 나를 그렇게 바라볼까, 거기에 의구심이 있긴 했는데 관계의 속성이 달라질 적마다 너무 극과 극의 행동차를 보이니까 어느 순간 아 나는 ‘이상한‘ 연애를 하고 있구나 이걸 알아버리고 말았어요. 자신의 상아탑이 제일 고고할 거라고 으스대는 건 가까운 관계였던 동안에는 꽤 귀엽네 하고 봐줄 수 있었는데 그때도 속으로 웩_ 치밀어오르는 건 역시 어쩔 수 없었던. 이 ‘이상한‘ 연애를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기록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동안 그를 마주하고 사랑하는 동안 느낀 것들 몇 가지 정도는 솔직하게 (너무 솔직하게 쓰지 마, 라고 베프가 조언해줬습니다, 아까) 기록이 가능할듯 합니다. 김훈이 왜 거기까지 다다를 수밖에 없었는지 알 거 같습니다. 다음 연애 시작 전까지 바지런히 읽겠나이다.

단발머리 2025-02-25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플로 읽고 서재 들어왔는데 ㅋㅋ글씨 너무 작아요. 키워주시길 ㅋㅋㅋㅋ🤓

수이 2025-02-25 20:28   좋아요 1 | URL
키움 ㅋㅋㅋ

바람돌이 2025-02-25 2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가 말한 ‘이상한‘이라는 단어에는 수준 낮은, 말도 안되는 뭐 이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느낌인데요. 그건 좀....
내 취향이나 공부 방식과 다르다고 해서 그렇게 표현하는건 좀 안타깝네요. 그냥 우리 그럼 계속 이상한 책 읽는 여자로 살죠 뭐... ^^ 이상한 생각을 안타까워해주면서.... ㅎㅎ

수이 2025-02-26 07:58   좋아요 1 | URL
다정하고 선한 마음이 똑똑한 두뇌와 함께여야 가치가 상승된다는 걸 이번 연애를 통해서 깨달았어요. 표현 방식에 좀 문제가 많은 사람인지라 헤어지면서 예의를 갖춰 사람을 대해요,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나 멀리 있는 이들에게나, 자신의 차갑고 잔인한 면모를 드러내는 걸로 관계의 깊이를 결정지으려는 걸 저어하는 까닭에 좀. 이상한 책 읽는 여자들로 계속 ㅋㅋㅋ
 

커피가 겁나 맛없어서 놀라웠다. 사람들이 엄청 많아 커피 맛집으로 착각하고 들어왔는데. 커피빈에 갈 것을. 물론 돌봄노동이 수많은 여성들에게 있어 거의 필연적이라고 여겨지기도 하는데 얼마 전에 돌봄노동에 지극 정성인 남성 세 명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이 겹쳐지기도. 물론 전업으로 가사 업무와 육아만을 하는 게 아닌지라 일도 하고 (셋 다 전문직) 밖에서 자유롭게 (?!) 하고 싶은 일도 마음대로 하면서 말 그대로 즐기며 부르주아 삶에 만족스러워한다. 셋 모두에게 행복하니? 물어보니 당연하지! 라는 대답이 나오더라는. 세 남성의 아내분들도 그러한가? 물어보니 당연하지! 라고. 고등학생인 딸아이가 서울대에 입학하면 행복도가 더 올라갈 테고 이제 막 돌에 접어들 아들이 밤에 잠만 잘 자준다면 더 행복지수가 올라갈 테고 주식이 이대로 쭉쭉 올라가준다면 더할나위 없을 거라고. 운동도 고강도로 정기적으로 하고. 돌봄의 가장 큰 수혜자들이 돌봄의 가장 크나큰 제공자들이 되면서 사슬을 엮어나가는 과정. 물론 이게 성별이 달라지고 계급이 달라지면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일단 그 지점들도. 아직 시간이 좀 남아서, 겁나 맛없는 커피 마시면서 계속.

재생산을 바라보는 급진적 시각이란 노동자계급을 재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과 노력을 내부화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사람이 생존하고 품위 있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 구성원 중 일부는 다른 사람들에게 착취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거부해야 한다. 더 많은 돈, 더 여유로운 시간, 더 나은 재생산 서비스에 대한 요구는 사람들이 하는 모든 노동에 대해 부적절한 보상을 끝내고 재생산 노동의 비가시성과 평가절하에 기초한 임금 관계wage relations (단지 임금만이 아니라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모든 것을 말한다. 사회보장제도나 노동시장 규제 같은 간접적인 사항들도 포함된다. 옮긴이)를 끝내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공동 재생산 자원을 조직할 때 이런 요구가 임금 영역과 무임금 영역에서 다양한 노동관계로 제한된우리의 사회적 세계를 넓힐 수 있다. 오늘날 재생산 노동 구조가 사랑을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 여기지만, 사랑자체는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하는 재생산 노동의 일부 - P131

다. 재생산 노동자는 자본주의적 노동으로 손상된 삶을 보상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삶을 만들어주려고 한다. 우리는 이 하찮은 보상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욕구를 확장하고, 집단적 형태의 재생산을 창출하고, 자본가들이 치러야 할 재생산 비용을 늘려서 이를 수행해야 한다. 가사노동임금 운동의회원들이 말하듯, "이제까지 우리는 돈이 아니라 사랑을위해서 이 일을 했다. 하지만 사랑의 비용이 커지고다. " - P132

사람들이 기분 좋게 느끼려면 누군가는 좋은 느낌을 만들어야 한다. 다정한 느낌이야말로 부르주아 가족의 핵심 기능이다. 갈등을 피해야 하는 가족의 식사와 휴일에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많은 일이 따른다. 이렇게 갈등을 완화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며, 편하고 행복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아주 중요한 여성의 일이다. 여성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친구와 지인들 사이에서 이런 일을 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다정함은 여성이 가사 노동과 감정노동을 통해 만들도록 강요받는 부르주아 가족의 가치다. 이런 식으로감정의 젠더화는 균열된 주체성을 재생산해 여성이 관계성과 정서적 안정을 도모하는 책임을 떠맡는 반면, 남성은 독립적인 개인으로 행동할 권리를 갖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중요성과 가치를 확인시킨다. - P135

사회주의 정치학자 C. B. 맥퍼슨C. B. Macpherson이 만든 소유적 개인주의라는 말은 자본주의하에서 성립되는 패권적 주체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것의 소유적 성질은, 개인이 본질적으로 그 자신이나 역량의 소유주이며 이것들에 대해 사회에 아무 빚도 없다는 개념에서 발견된다. 개인은 도덕적 전체가 아니고 더 큰 사회적 전체의 부분도 아닌, 자기 자신의 소유주로 여겨졌다. ... 개인은 자신의 인격과 역량의 소유주인 한 자유롭다고 생각되었다.

이것이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 아래 주체에 대한 패권적 이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동등한 수준으로 소유적 개인주의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의 패권적 지위를 차지하는 주체가 다른 유형의 주체성에 의존하면서도 그 주체성을 가린다. - P149

신자유주의 정치는 개인주의를 찬양하면서도 전통적인 가족 가치에 의존한다. 쿠퍼는 신자유주의가 "자유시장 체제의 역학에서 저절로 생길 것으로 기대하는, 가족가치의 자발적 질서와 내재적인 덕의 윤리‘를 사실로 상정한다면서 ‘가족 이타주의의 본질은 어떤 의미에서 자유시장의 내부적 예외, 즉 계약의 세계가 기능하는 데 꼭 필요한 비계약적 의무와 양도할 수 없는 서비스의 내재적 질서를 나타낸다"고 덧붙인다. 그러므로 가족 가치의 전통적인 세계라고 하는 것은, 자유주의가 의존하는 자주적 주체성 형태의 생산, 그리고 계약적 의무 모델을 통한 자유의 장소로서 시장이라는 개념을 구성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 개인주의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사람들은 취약하고, 돌봄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주체성 형태를 패권적 형태와 그 패권이 지속되는 데 꼭 필요한 형태로 나눈다.
돌봄의 생산은 여성들만의 책임이 아니고, 여성화된 지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로 확장된다. - P1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리아 미첼 챕터를 읽다가 재독하면서 또 밑줄 그은 문장, 

눈을 감고서도 선명하게 망원경을 마주하고 검은 하늘을 마주하며 빛들을 찾아 

그 앞에 자리잡고 있는 캐럴라인 허셜이 보였다. 




캐럴라인 허셜은 열한 살에 티푸스를 앓아 목숨을 잃을 뻔한 탓에 왼쪽 눈이 상했고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지구에서 보낸 아흔여덟 해의 생애 대부분의 시간 동안 캐럴라인은 130센티미터 남짓한 몸집으로 6미터에 달하는 망원경의 기단부에 자리 잡고 앉아, 하나 남은 잘 보이는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살았다. 캐럴라인은 환경과 선택의 접점이 만드는 길을 따라 이 전례 없는 자리에 도달했다. - P70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5-02-23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저 책 꺼내야겠어요. 완독 못 했음을 고백합니다🙃

수이 2025-02-24 09:26   좋아요 1 | URL
자기 진리의 발견 마니아인 줄 알았는데요!!!
 
시골 생활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식과 위선을 벗어던질 때 인간이 어떤 풍경을 마주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할 때 어느 정도의 극치를 보여줄 수 있는지, 하여 인간은 인간 앞에서 벌거벗을 수 있는 거다. 허나 요지는 이 사회는 위선과 가식을 필수 요소로 여긴다는 점이고. 인간은 그룹을 지어 서로와 서로 사이에 경계를 짓는다. 그것이 마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듯 번역가 또한 이야기하고. 간만에 활자로 영혼 때 벗기는 작업. 온전한 것을 잃을까봐 노심초사했는데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건 그대로라는 걸 알았다. 사회 안에서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다시 깨닫게 해주는 시간. 많은 것들을 바라는 게 아니라 소소한 걸 원하는 거라는 건 어느 인간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이 법의 경계 안에서 이루어지건 그 바깥 테두리에서 이루어지건. 속 편하게 와인을 마시고 속 편하게 다른 인간에게 고통을 주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것이 또 인간이라는 건 무얼 뜻하나. 화형대에서 어떤 살인사건이 일어나건 군중들은 시선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게 마땅히 옳은 일이라 여겼고 그것이 옳지 않다는 건 화형대 위에 있는 이들이나 화형대와 군중들 사이에 있는 경계선에 있는 이들 모두 아는 일이었다.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어떤 정해진 법칙이라는 건 언제나 그 너머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때 그 사건들이 지금에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그 누가 확신할 수 있는지 시인은 묻는다. 그 시선들의 마주침과 어긋남 속에서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는 과정들. 봄이 얼마나 기다려지던지, 이 시집 안에 봄 이야기는 곳곳에 만발했고 더불어 영하를 넘나드는 서울 하늘 아래에서 얼마나 봄이 기다려지던지, 봄인가, 하면 어느덧 초여름이 올 것을 알기에 더더욱 기다려지는 거고. 하여 그 말들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을지도. 시간 여유를 두고 천천히 다른 구절들도 찾아보기로. 오늘 내 산소호흡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