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는 체코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워했다. 독일어로 작품을 썼을 뿐만 아니라, 권력이라는 기계에 갇혀 절망하는 개인들을 묘사하는 그의 능력은 나치와 공산당 모두의 심기를 건드렸다. 오랜 세월 동안 그의 작품들은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출간되지 않았다. 그러나 체코인들은 관료주의의 몰상식으로 인해 부조리한 상황에 빠지는 것을 라는 용어로 지칭하며 사용해 왔다. 는 카프카의 계승자로 평가받는 체코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단편소설 제목이 되기도 했다.
카프카가 체코 문학계에서 자리를 되찾는 과정은 그 자체로 카프카식의 이야기였다. 1957년이 되어서야 [소송]의 첫 번째 체코어 번역본이 출간되었고, 이어 다른 작품들도 번역되었다. 1960년대 들어 자유로운 분위기가 무르익으며,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도 커져 갔다. 카프카에게서 영감을 받은 예술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그의 작품은 지하 출판의 형태로 암암리에 더 널리 퍼졌고, 이는 기존의 학자들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받게 하였다. 1963년 카프카를 주제로 리블리체성에서 열렸던 유명한 학술 회의에서 학자들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그의 작품이 어떻게 읽고 해석될 수 있을지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했다. 그들은 카프카가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 회의는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정치적, 사회적 해빙기를 이끌어 낸 사건으로 남았다.
1968년 8월, 바르샤바 협정으로 구성된 군대가 체코를 점령한 후, 민주화를 위한 모든 노력들은 탄압받았다. 카프카의 작품은 다시 판금되었고, 공공 도서관에서도 사라졌다. 체코는 마치 카프카의 소설 속에서 나올 듯한 회색 안개와 이질적 공포의 장막에 덮여 버렸다.


작은 민족의 기억이라고 해서 큰 민족의 기억보다 작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작은 민족의 기억은 그들의 소재를 훨씬 더 철저하게 소화할 수 있다.
- 1911년 12월 25일, 카프카의 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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