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를 계속 읽다가 새끼 손톱만한 표창들이 끝없이 날아드는 고통을 느낀다. 이 놀라움은 뭘까. 차별을 거의 받지 않으며 살아왔다고 여겼는데 수십만 개의 날카로운 표창들이 시간의 제약을 두지 않고 허공을 가르고 날아온다. 이러한 방식이 자멸이 아니라 자기 구원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 또한 놀랍다. 계속해서 읽어봐야겠지만 내 머릿속 몇 개 없는 나이테들이 찰나를 등지고 꿈틀꿈틀거린다. 허리 통증이 잊혀질 정도로 빠져든다. 불사조는 재 속에서 새까맣게 불타 사라지고 그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고. [팍스] 영향도 더불어 있지만 읽는 내내 그 표창들이 마치 불사조처럼 느껴지기도. 더불어 늪과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 (인종)차별을 당했을, 당하고 있을, 당할 그들이 불사조처럼 느껴지기도. 찰나를 등지고 살갗의 경계를 넘어 분노 덩어리를 꿀꺽꿀꺽 삼키면서 캐시 박 홍은 이야기한다. 왜 그들이 그토록 이 책에 열광을 하는지 알 것도 같은. 완독한 어느 리뷰어의 글에서 발견한 문장, 백인을 남성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한 서사라고.



 


인종에 관한 글쓰기는 이제까지 우리를 지워버린 백인 자본주의 인프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점에서 격렬한 비판을 담지만, 우리의 내면이 모순들로 뒤엉켜 있다는 점에서 서정시이기도 하다. 나는 손쉬운 극복의 서사에는 저항하지만 우리가 인종 불평등을 극복할 거라는 신념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민자가 고생하는 감상적인 이야기들은 짜증스럽지만 한국인은 내가 아는 한 가장 심하게 트라우마를 겪은 민족에 속한다. 내 안에 깃든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고정 관념을 넘어서려고 시도하다 보면 내가 어떻게(how) 인식되는지가 내가 누구인지(who)에 내재한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인종에 관해 진실한 글을 쓰기 위해, 나는 거의 서사를 거슬러 글을 써야 한다. 인종화된 마음은 프란츠 파농이 말한 대로 "지옥 같은 악순환"(infernal circle)이기 때문이다. - P95

영어를 배울 때도 내 몸은 똑같이 부글부글 끓었다. 입학하기 전에 영어를 배우지 못해서 영어라면 무조건 어려운 것과 결부 지었다. 칠판에 다이어그램으로 도식화해놓은 문장 구조도, 입안에서 단단하고 미끄러운 구슬처럼 느껴지는 음절도 전부 어렵기만 했다. 영어는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살짝만 잘못 디뎌도 내 존재가 노출되는 투명한 인계철선을 쳐두고 나를 괴롭히려고 작정한 언어였다.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열심히 경청하는 학급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나를 보고 미소 지으며 그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뭔가를 말했고, 나는 그것을 "나가"라는 말로 알아들었다. 그래서 일어나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랬더니 갑자기 선생님이 밖으로 따라 나와서 벌게진 얼굴로 나를 야단치고 다시 안으로 데리고 들었다. - P111

수치심은 나 자신을 1인칭과 3인칭으로 분리하는 능력을 부여한다. 사르트르가 쓴 대로 "타자가 나를 보는 대로" 나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다 자란 지금에야 나는 어렸던 내가 의도치 않게 저지른 불복종에서 유머를 발견한다. 양반다리를 하고 둥그렇게 모여 앉아 이야기에 열중하는 여섯 살짜리들에게 교사가 책을 읽어주는데 얌전하고 어린 아시아 소녀가 난데없이 이야기 중간에 태연하게 일어나 교실 밖으로 나간다. 이듬해, 그 얌전하고 어린 아시아 소녀는 포르노 티셔츠를 입고 등교한다. - P111

가족이 과테말라에서 왔건, 아프가니스탄에서 왔건, 한국에서 왔건, 1965년 이후의 이민자들이 공유하는 역사는 미국을 넘어서 각자의 출신국으로 확장된다. 그곳에서 우리의 동족들은 서구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미국에 세우거나 지원한 독재 정권에 의한 대량 살상을 겪었다. 미국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애쓰느라고 우리는 인생에서 제2의 기회를 선사받은양 황송해한다. 그러나 이민자들이 공유하는 뿌리는 이 나라가 우리에게 부여한 기회가 아니라, 백인 우월주의의 자본주의적 확장이 우리의 조국의 피를 빨아 부를 챙긴 방식이다. 우리가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P126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백인 순수의 유아론을 뒤집어, 우리의 국민 의식이 그 이란계 미국인 소년 같은 아이들의 정신과 더 비슷한 모습이 되도록 일조할 작정이다. 그 아이의 정신은 글도 깨치기 전에 벌써 이 나라가 어떤 폭력을 가할 수 있는지를 인지하는 무방비 상태의 의식이며, 역사에 시달리는 아이의 의식이 언젠가 다수를 차지할 때 새하얀 이미지들을 퇴색시킬 것이 틀림없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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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9-21 0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꼭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리뷰입니다.

vita 2021-09-21 11:33   좋아요 0 | URL
아 아직 읽고 있는 중이라 리뷰는 아닙니다, 그래도 읽고 싶다 하시니 좋아요. 다 읽고 리뷰쓰고 싶은 책은 오랜만에 만났는데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