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진실이 인간 속에 없다고 한다면 대체 우리는 그것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16)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죽은 뒤 홍수가 오건 말건" 따위를 예사로 말하는가 하면, 샤를마뉴 대제는 임종의 자리에 누워서도 공격해 오는 노르만 족의 배를 보며 울었다. 자신의 구두에 구멍이 나서 물이 샌다고 화를 내는 여인이 있다. 내가 만일 그녀에게 "그게 뭐가 대단해서 그러세요? 중국의 오지에서는 몇 백만의 인간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라고 말한다면 그녀는 분노하여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들은 중국에 있어요. 그리고 구멍이 난 건 내 구두예요." 그런데 여기 또 다른 여인이 중국의 기근에 무서움을 느끼며 울고 있다. 그래서 내가 그녀에게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당신은 배고프지 않으니까"라고 말하면 그녀는 나를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자신의 안락이 무슨 소용이죠?" 그렇다면 나의 것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라고 묻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의 척도는 무엇일까? 인간은 어떤 목적을 세울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인간에게는 어떤 희망이 허용되는 것일까? (16-17) 



 "저 아이는 나의 형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내가 그를 위해서 운다면, 벌써 그는 나에게 있어서 이방인이 아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나의 눈물이다. 무엇 하나도 나 이전에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라고 제자들이 그리스도에게 물었을 때 그리스도는 하나하나 이름을 들어서 대답한 것이 아니라, 착한 사마리아인의 우화를 이야기했다. 길가에 버려진 사나이에게 자신의 외투를 입혀서 도와준 사마리아인이 바로 그 버려진 사람의 이웃이었던 것이다. 요컨대 사람은 누구의 이웃도 아니다. 어떤 하나의 행위를 통해서 자신이 타인의 이웃이 됨으로써 타인을 자신의 이웃으로 만든다. (25-26) 



 나는 자신의 미래를 바라본다. 모든 향락은 내 기획을 앞으로 투사하는 기투이다. 그것은 미래를 향해서 과거를 추월하는데, 과거란 미래의 이미지가 응결된 세계에 다름 아니다. 게피가 든 따뜻한 초콜릿을 마시는 것은 스페인을 마시는 것이라고 지드는 [사건]에서 말하고 있다. 우리를 매혹하는 모든 향기, 모든 풍경이 그 자체의 저쪽,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의 바깥쪽으로 우리를 내던진다. 오로지 자기 자신에만 머물러 있으면 그것은 타성태의 소원한 존재가 될 뿐이다. 이 존재가 또다시 제 몸 위로 무너져 내리면 향락은 권태가 된다. 내가 나 자신에서 빠져나갈 때, 그리하여 향락의 대상을 통해 내 존재를 세계에 참여시킬 때 비로소 거기에 향락이 존재한다. (34) 



 만일 피뤼스가 "가만히 있는 존재"라면, 그는 출발할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떠날 꿈을 꾸고 있다. 그가 꿈꾸기 시작하자마자 그는 벌써 출발한 것이다. "인간은 먼 곳의 존재"라고 하이데거는 말했다. 인간은 언제나 다른 곳에 있다. "이것이 바로 나다"라고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특권적인 지점은 없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과는 다른 것을 향하도록 되어 있다. 그는 자기와는 다른 것과의 관계에 의해서만 자신일 수 있다. "인간은 순간의 상태로 환원된 존재보다 언제나 무한히 더 우월한 존재이다"라고 하이데거는 말한다. 모든 생각, 모든 눈초리, 모든 경향이 전부 초월성이다. 이것은 앞에서 우리가 쾌락을 고찰할 때 본 것과 같다. 쾌락은 과거와 미래, 그리고 전 세계를 포함했었다. (36-37) 


 



 























 구멍이 난 내 구두_만을 향한 시선이 느껴질 때는 나 스스로도 끔찍해서 몸서리를 치게 된다. 인간의 안과 밖을 나누는 기준은 그러하지 않을까. 동사해서 죽은 낯선 이국의 여인을 떠올린다. 그가 살았다는 기숙사 내부 풍경을 사진을 통해서 보았다. 댓글을 읽다가 굳이 남의 나라 사람 일까지.... 라는 문장에 황망했다. 그러한가. 그러한 건가. 옛날에 많이 사랑했던 남자가 야학을 했는데 그때만 해도 아주 순진하기 짝이 없던 내가 그에게 한 말은 황망스럽게도 그런 대꾸였다. 아니 요즘 시대에 굶는 아이들이 어디 있어. 다른 나라면 모를까. 안경 너머로 아무 말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을 아직까지 기억한다. 구멍이 난 내 구두_만을 바라보던 나를 바라보던 그 침묵의 눈빛. 미치도록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던 그 순간들. 인간의 진실, 인간 속에 없는 순간들. 무지하건 순진하건 이기적이건 그 서슬 퍼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인간은 굴을 판다. 굴을 파야 하지 않겠는가, 최소한 인간 탈을 썼다면. 보봐르를 읽는다는 것이 내게 한없는 부끄러움을 안겨준다면. 



+ 읽을 책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티나무 2021-01-14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글 좋네 좋으다 하고 보니 보부아르 였어요. 그러고 보니 나 엊그제 보부아르 책 하나 샀잖아?!!! 하고선 제목이 기억 안나 찾아보고 왔어요. ㅠㅠ
<죽음의 춤>, 사전 정보 없이 중고 고르다가 그냥 막. ㅎㅎㅎ

수연 2021-01-14 13:54   좋아요 0 | URL
소설보다 에세이, 자서전 글이 전 더 와닿아요. 근데 책 제목이 넘 별로야 언니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