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의 나의 프랑스식 서재를 다시 읽는다. 이사를 앞두고 책을 펼치는 일이 황당하지만 조금 버리고 다시 쑤셔넣고 책을 펼치는 일은 어색하지 않다. 이사는 즐거운 모험을 떠나는 것과 같아서 좋아. 이건 나의 속마음인 동시에 딸아이 마음. 언젠가 정착을 하게 되겠지만 더 이상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는 그런 집을 갖게 되겠지만 아직은 지치는 것보다는 신난다. 그래도 이번에 이사를 가게 되는 곳에서 계약 기간 만료가 되면 그 후에는 정착할 집을 구할까 하는 생각도 들고. 새로 가구를 들이는 건 하지 않기로 했다. 딸아이의 책상을 새로 구입하는 걸 제외하고는. 책장을 하나 더 구입할 수도 있겠다. 큰 책장 말고 자그마한 책장. 부엌에 여분의 공간이 생기면 그곳에 작은 책장을 하나 놓으려고 한다. 살랑거리는 빛이 잘 들어오는 곳이 부엌이니까 그곳에서 자주 시간을 보낼듯 하다. 나의 책상은 그러니 2년은 더 지나야 가질 수 있겠다. 그래도 내 공간이 있어 그곳에서 책을 읽을 수 있고 외국어 단어를 암기할 수 있는 건 소중하니까. 몇년 전인데 그때 읽은 나의 프랑스식 서재와는 확연히 다른 것들을 느낀다. 나이듦을 느낀다는 게 이런 식으로도 다가오는구나 낯설면서도 신기하다. 낯설지 않은 죽음의 시간이 한국을 너머 전세계에서 도래하는 때, 어떻게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을까, 공동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초코 아이스크림을 한입 입에 문다. 아 차갑고 시려, 달콤하다. 유럽에 사는 친구와 새로 교류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온라인으로 나누다가 비슷한 또래라는 걸 알게 되었다. 또래라는 말이 조금 어색하게 들리지만. 이런 말을 해서 창피했지만 난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보냈다. 와 여자 작곡가는 처음 봐요. 신기해요. 상대방은 크크크 웃으며 네 자주 들어요. 중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갓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마음에 드는 친구를 발견해서 자꾸 말을 거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었다. 독일에 오면 꼭 이야기해요, 같이 만나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와인도 마셔요. 저는 당분간 한국에 들어갈 일이 없을듯 싶어요. 아마도 계속 여기에서 살게 될 거 같아요. 말만 들어도 좋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코로나가 모든 것들을 좌지우지하는 시대. 언제 유럽으로 날아가게 될까 기약할 수 없다. 그러니 일단 온라인으로 자주 만나도록 하자 그렇게 일단락. 이사를 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은 신난다. 더구나 세계 곳곳에 있는 친구들이라면. 앗 어쩌다가 이야기가 딴 곳으로 새어버렸네. 이사 가기 전까지는 계속 손에 붙들고 있을듯. 하고싶은 일이 많다. 그렇게 또 하고싶은 일이 엄청나게 많아져버렸어 이제 더 이상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싶은 그런 나이가 되어버렸어 의도치 않게 순식간에 마치 화살이 날아가는 것처럼_ 에밀 아자르도 모리스 블량쇼도 그립다. 

















문학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믿었고, 다른 무엇보다도 문학서를 편식했으며, 국문학과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고, 서양 문학서를 번역해왔으며, 문학이 인간정신의 진화에 기여한다고 굳게 믿고 있긴 하지만, 공부하고 번역하고 믿는 방식에 어떤 정돈된 계통이나 치밀한 근거가 없다. 최근 몇 년 간 두 번의 큰이사를 하면서 많은 책들을 정리했다. 30년 된 하얀 라일락이 작은 마당 한가운데 자리잡아 봄이면 골목 입구부터 은은한 향을 선사하던 신길동 그 집에서 이사올 때에는 책 정리에 여러 날이 걸렸다. 거실 한켠을 가득 채운 책장에서뿐 아니라, 아래층, 위층, 지하실과 다락에서까지 책들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P72

식구 수대로 두세 차례 점검을 거쳐 가져갈 책을 추려낸 다음, 마당에 못 쓰는 매트리스를 깔고 2층 베란다에서 정리할 책들을 던졌다. 어느 오후, 그렇게 몇날 며칠 책을 정리하던 식구들은 각각의 감회에 젖어 계단에서, 다락 구석에서, 뜰 한켠에서 책을 깔고 앉아 책을 읽었다. 정리해야 할 산더미 같은 책들을 앞뒤로 두고, 각자 자신의 오늘이 있게 한 책들에게 바치는 경의! 나는 우리집 강아지 뭉치가 읽다가 먹어버린 모리스 블랑쇼를 들고 등나무 아래에 한참을 서 있었다.- P72

도서관으로, 아름다운 가게로, 헌책방으로, 고물상으로 가버린 그 책들의 주종은 ‘문학‘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집 거실을 차지하고 있는 책장에 꽂힌 대부분의 책들 역시 문학이다. 하면, 나의 이성과 겸손이 좀더 진화되어 있어야한다고 반성한다.-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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