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무엇입니까? 본래 교육, 즉 '에듀케이트(educate)'라는 말은 '밖으로(e-) 끌어낸다(duc-)'는 뜻입니다. 독일어의 '교육하다(erziehen)'도 의미가 똑같습니다. 고유한 재능은 사람 앞에 이미 다 들어 있고, 그걸 끌어내는 게 교육이지 '지식을 처넣는' 것이 교육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가 한국에서 배운 교육은 사실 반교육(anti-education)에 가깝습니다. 저는 '경쟁은 야만'이라는 아도르노의 말을 인용하면서 한국도 독일처럼 학교에서 경쟁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얼마 전엔 어느 신문 칼럼을 통해 대학 입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상당히 많은 비난성 댓글을 받기도 했습니다. 세상물정을 모르는 먹물, 현실성 없는 꿈만 꾸는 이상주의자라는 식의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120-121)


 독일 사회는 그 구성원에서 최대한 많은 기회를 제공하려고 하는 반면, 한국 사회는 그 구성원에게 최소한의 기회마저 박탈하려고 합니다. 독일 만하임응용대학의 빈프리트 베버(Winfried Weber) 교수는 한국 교육을 살펴보고 나서 "독일은 텐샷(10 shot)사회인데 반해, 한국은 원샷(1 shot)사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독일인에게는 열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한국인에게는 한 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지금 독일이 이렇게 부유하고 성숙한 사회가 된 것은 바로 그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최대한 자신의 재능을 실현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반면 한국은 너무도 많은 재능들이 발현되지 못한 채 사장되는 사회이지요.

 한국은 기회를 박탈하는 사회일 뿐만 아니라,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을 차별하는 사회이기도 하지요. 사람들은 이러한 '이중의 박탈'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은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도 엄청난 차별과 격차가 존재하지요. 이러한 현실이 우리가 지극히 기형적인 사회에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125) 



 






동일한 프레임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인생을 대하고 타인들과 마주해야 한다고 배우면서 살아왔던 건 아닐까?

그 프레임으로 내 인생을 재단하면서 혹시 나는 나를 불행하게 만들어왔던 건 아닐까?

여기까지는 행복, 여기를 넘어서면 바로 불행이 닥친다고 그 너머를 꿈꾸는 걸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어쩌면 시한폭탄처럼 언제 터질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예를 들어 나는 항상 너머를 보는 게 어릴 적부터 습관이 된 사람인데 그 너머를 꿈꾸는 시선을 누군가에게 들키면 흠칫 놀라

얼른 다시 고개를 내리고 여기까지는 행복, 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을 마흔 살이 넘어서까지 되풀이해온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 이곳은 나에게 몇 번째 기회일까?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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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9-16 10: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회를 박탈하고 그 기회를 박탈한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라는 구절이 확 와닿네요. 아마도 지금의 여러 사태들이ㅜ모두 이 말과 관련아 있지싶어요. 점점 읽고싶다는 생각이 커집니다. ㅎㅎ

수연 2020-09-16 14:12   좋아요 1 | URL
불행의 연쇄고리가 이어지는 걸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각자의 탓_ 으로 되돌리려고 하는 해석이 강한데 이게 과연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걸까, 그 사슬의 첫 연쇄고리, 읽다보니까 저는 자꾸 그게 궁금해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