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장아장 꼬까신을 신고 병아리 머리핀을 빠마한 머리카락 위에 한데 꽂고 엄마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엄마가 다니던 절에 처음 놀러갔다. 엄마가 부처님을 향해 절을 하고 보살님 손을 잡고 엉엉 눈물을 보이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얼굴도 둥그렇고 배도 둥그스름한 스님이 나를 번쩍 안고 목마 태워 절 한 켠에 그려져있던 그림들을 동화책 읽어주듯 하나하나 보여주며 설명해주셨다. 그때 처음으로 지옥도를 보았다. 사람들 팔다리는 다 잘렸는데 죽지도 않아 두 눈을 부릅뜨고 엉엉 눈물을 흘리던 그들의 표정과 사람들 팔다리를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으면서 두 눈을 부릅뜬 사자의 눈동자 안 핏발들이 세세하게 다 보여서 그만 나는 눈도 채 감지 못하고 딸꾹질을 하며 스님의 설명을 들었다. 한 길로 나아가지 않고 바른 길로 나아가지 않으면 인간은 이렇게 순식간에 지옥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한번 지옥길로 들어서게 되면 영원히 거기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기에 하여 구원이 되지 않아 죽어도 다시 살아나 죽을만큼 아픈 고통을 겪게 되는 거라고 스님은 설명하셨다. 그렇구나 한 길로 나아가지 않으면 바른 길로 가지 않고 비스듬히 나아가게 되면 지옥으로 가게 되는 거로구나 하고 나는 딸꾹질을 계속 하면서 이해를 아주 조금 했던 것도 같다.


 최은미의 [창 너머 겨울]을 읽었다.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지옥일까. 사타구니에 난 곰팡이균으로 고생하는 한 바른 사내가 있다. 사타구니에 난 곰팡이균만 아니면 완벽한 사내다. 밝고 바른 여인과 연애하고 결혼해 다른 사람들 살아가듯 아들 하나 딸 하나 낳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꿈인 사내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고백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려고 한다. 그저 까닭은 하나다. 사타구니에 난 곰팡이균이 제일 극성일 여름 말고 비교적 잠잠할 겨울을 평창에서 나기 위해서. 농약을 먹고 죽어가는 아버지를 며칠 동안 보살피면서 사내의 영혼은 말 그대로 분열된다. 영혼이 갈라지면서 사내의 사타구니도 갈라진다 끝없이 내내. 가렵고 가려워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별의별 수를 다 써보지만 방법은 없다. 잘 씻고 잘 말리는 일뿐. 인간은 스스로를 누군가와 비교하게 되면서부터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나보다 잘난 거 하나 없는 사촌형이 마알갛고 어여쁘고 밝은 여자를 데려오면서부터 사내는 지옥여행을 다시 떠나게 된다. 이건 얼핏 보면 형수를 향한 짝사랑 같기도 하지만 중심은 사촌과의 비교대조, 사촌이 건넨 스테로이드제 연고로 압축된다. 자살하려고 한 아버지는 결국 며칠 후 숨을 거두고 가족들은 상처받았다. 아버지의 알몸과 아버지의 중심과 아버지의 죽음을 홀로 맞이하면서 사내는 상처입는다.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그 즈음부터 사내는 결국 지옥을 보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짝사랑하는 사내 여인에게 고백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어떻게 비밀을 공유할 수가 없어서 사내는 그만 여인을 절벽 아래로 밀려하고_ 순간 제정신을 차리면서 이 모든 건 사타구니에 난 곰팡이 때문이다, 내가 죽어도 좋으니 이 곰팡이를 영원히 없애버릴 테다 결심을 하고 욕조 안에 락스를 끝없이 쏟아붓는다. 락스를 다 붓고 뜨거운 물을 콸콸 틀 때부터 또 딸꾹질이 시작된다. 여기 스스로 자신의 지옥을 만들어가는 사내가 있어 그 사내가 만들어가는 지옥도를 말없이 보면서부터 딸꾹딸꾹. 제발 더 이상은 발을 들여놓지마, 욕조에 들어가기 전에 얼른 정신을 차리고 화장실 밖으로 나가! 딸꾹질을 끝없이 하면서 소리질렀다. 사내는 스스로를 구출할 수 있을까. 최은미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미끄러져가는 화장실 손잡이를 열고 탈출을 할 수도 혹은 끝없이 미끄러져가는 화장실 손잡이를 어느 순간 놓치고 바닥에 쓰러질지도 모른다. 문득 스님에게 묻고 싶어졌다. 여기 이렇게 한 길만 오롯이 바르게 살아가는 한 사내가 있는데 왜 그는 스스로 지옥도를 그려가고 있는 건가요? 스님. 이 사람에게는 아무 죄도 없는데 그저 사타구니에 곰팡이가 피어 끝없이 간지럽고 간지러워 피딱지가 얹힐 정도로 긁어댄 죄 같지도 않은 죄가 있어 짝사랑하는 여인을 절벽 아래로 밀어뜨리려 하는데 그게 죄인가요? 하고 묻고 싶어진다. 아버지를 사랑했던 사내는 왜 밝고 커다랗던 아버지가 자살을 하려고 했는지 알 수 없으며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그에게 남긴 강한 공감은 사타구니의 간지러움이었다. 아버지의 사타구니 간지러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없는 사내는 아버지의 가장 찬란했던 추억 속으로 아버지를 놓으면 그 잔인한 간지러움이 없어지리라 소멸되리라 짐작하고 능선 바위 위에 아버지의 알몸을 올려놓는다. 죽어가는 아버지의 알몸을. 아버지의 비밀은 한 조각도 가지지 못한 채 사내는 아버지의 사타구니의 끔찍한 간지러움만 전이받는다. 지옥이 시작된다. 


 무섭고 괴롭고 무서워 얼른 책장을 덮었다. 인간이 얼마나 고통에 쉬이 데일 수 있는 존재인지, 곰팡이 하나로 영원한 지옥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 아버지의 죽어가는 몸, 한때 찬란했던 아버지의 몸, 아버지의 아름다운 추억, 아버지의 비밀을 우연히 엿보게 되면서 사내는 끝없는 간지러움과 곰팡이와 지옥을 뒤섞어 스스로를 해체한다. 유일한 약점이자 유일한 비밀을 공유한 한 살 많은 사촌형이 어떻게 사내를 업신여기고 짓밟는지도 페이지 안에는 잘 묘사되어있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지옥이 될 수 있고 어떤 천국이 될 수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짝사랑하는 여자를 품어주지 않고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려고 하는 건 사타구니의 간지러움 때문이다. '겨우' 그것 하나로 인간은 사랑하는 인간을 품지 못하고 내밀 수 있다. 아래로 떨어뜨리려 한 순간 내가 짝사랑하는 사람을 '겨우' 이까짓 곰팡이균 때문에 밀려고 했다니! 깨닫고 증오심을 품는다. '겨우' 자신의 몸 한곳에 자리잡은 곰팡이균 하나로. 인간이 얼마나 강할 수 있으면서도 얼마나 연약한 생물인지. 오늘밤에는 지옥도를 마주하지 않기를, 꿈속에서 사내가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기를. 최은미의 짧은 단편 안 서사를 읽는 동안 어느 정도의 이미지를 인간은 허용할 수 있는걸까 궁금하다. 찰나의 이미지에 사랑에 빠지게 되고 순간의 이미지에 영원한 고통을 떠안는다. 그렇게 한없이 수동적이기만 한 사내가 가여워서 자꾸 등을 쓰다듬어주고만 싶어진다. 인간은 왜 이렇게 약하기만 한지, 인간은 왜 이렇게 사랑하는 이들에게 한없이 나약하기만 한건지 까닭을 알지도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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