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미친듯 요가 동작 하다가 그만 없던 잠도 다 사라져버려서 공부를 할까 하다가 그냥 넷플릭스 온, [그리고 베를린에서]를 보았다. 원제는 저러하다. 데보라 펠드먼의 실화를 바탕으로 미니시리즈는 만들어졌다. 4부작으로도 이렇게 강렬하게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구나. 혹은 단편의 매력은 짧고 굵게_가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에스더 모습과 베를린의 강에서 가발을 벗는 에스더의 극명한 대비. 공주가 될 줄 알았으나 현실은 처절했다. 공주라기보다는 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열아홉 나이에 결혼을 하는 에스더. 유대인들의 생활을 거의 접해본 적 없어서 그들의 생활상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기대 이상이었다. 에스더가 남편감을 처음 만난 날, 결혼식이 끝나고 잠시 둘이 마주할 때 한 말은 "나는 다르다"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 사실을 알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여겼으나 정략 결혼이 시작되자마자 그는 처절한 현실의 민낯에 전율한다. 웨딩드레스는 아름답지만 그것은 종이 인형의 옷과 다를 바 없다. 얼마든지 찢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다. 원하는 헤어스타일과 원하는 의상으로 갈아입고 다중인격자처럼 이런 저런 놀이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린 시절의 나는 종이 인형을 좋아했다. 현실에서 마주할 수 없으나 누군가에게는 현실인 일상. 동화 속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베를린이 답인 것입니다. 하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막 우기는 거지. 사촌 동생은 자그마한 대학도시에서 지내다가 결혼과 더불어 베를린으로 이사했다. 그 복잡미묘함에 질려서 1년을 채 살지 못하고 다시 유학을 시작한 대학도시로 이사했노라는 이야기도 떠올랐다. 뉴욕 출신이라고 하지만 묘한 억양. 운 좋게도 운명의 이끌림에 음악원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면서 그의 다른 인생은 시작된다. 누군가를 꽃으로 만들어 바라보며 즐기는 심정은 어떠한가. 에스더의 항변.

"I'm not a baby machine."

꽃과 베이비 머신 사이에 놓인 그들의 이야기가 세세하게 그려진다. 이건 그들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우리의 이야기일까. 예전에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기도 한참 전에 핏빛 웨딩드레스를 입은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습작을 하던 기억도 살포시. 설정을 잡아놓을 때 핏빛 웨딩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성, 드레스에 묻은 피는 누구의 것인가. 자신의 몸에서 나온 것인가 혹은 누군가의 피인가.

결국 에스더는 자신이 가진 무기가 무엇인지 알고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간다. 제대로 받은 교육도 없고 규율 천지였던 자그마한 세상에서 종이로 만든 피아노 건반을 두들기던 자그마한 소녀 에스더는 당당하게 다른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베를린에서 하고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며 사랑하는 이들과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물론 사랑하는 이들과 마냥 행복만 주고받지는 못하겠지만 원래 사람 사는 것처럼은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아름다운 에스더의 베이비도 에스더처럼 에스더의 엄마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리라. 누군가의 꽃이나 누군가의 베이비 머신이 아니라. 여자는 탈무드를 읽어서는 안돼! 라고 에스더의 남편은 소리친다. 탈무드에도 쓰여 있다잖아, 자신의 아내를 기쁘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근데 왜 너는 내게 기쁨을 주지 않고 고통만 주느냐고 따질 때 남편이 한 말이다. 여자는 탈무드를 읽어서는 안돼! 여자는 노래를 불러도 안돼! 여자는 결혼과 동시에 머리카락을 박박 밀고 가발을 써야해! 팬티를 벗고 침대에 누워 남편의 강간을 받아들이는 에스더의 얼굴과 표정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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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4-23 1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게 이런 내용이었어요? 저도 넷플에서 보려고 찜해두고 있긴한데 이런 내용인줄은 전혀 몰랐어요. 꼭 봐야겠어요, 저도.

수연 2020-04-23 15:03   좋아요 0 | URL
저는 딴 거 보려다가 그만 다 봤어요. 책이랑은 좀 다른 현실 내용이라고 하던데 책도 궁금해졌어요, 다락방님!

로제트50 2020-04-23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에 감동적으로 봤어요 ~^^

수연 2020-04-23 15:03   좋아요 1 | URL
저릿저릿했어요 저두 ^^

라로 2020-04-25 0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괴로울까봐 안 봤는데,,,볼까요?? (여전히 머뭇머뭇)

수연 2020-04-25 08:43   좋아요 0 | URL
보세요 언니!!!!!! 뉴욕이란 거대한 공간 안에서 딱 제한되어있는 그 테두리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을 에스더를 생각하면 막 가슴이 아프더라구요. 다행스럽게도 그 테두리를 벗어나서 막 물개박수 쳤어요.

비연 2020-04-28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넷플에 이거.. 얼른 봐야겠네요. 그나저나 수연님, ‘여성성의 신화‘ 진도 잘 나가세요? 흑흑.

수연 2020-04-28 10:57   좋아요 0 | URL
뜨끔 ㅋㅋㅋ 오늘 내일 달리려구요 비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