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무거웠지만 그래도 이동하면서 좀 읽었다. 이 책이 미국에서 나온 게 1963년. 우리 엄마가 열넷때 나왔네. 만일에 엄마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내게 홈드레스 이야기를 했을까 궁금해졌다. 엄마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것도 궁금해지고. 내가 스무살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까 그것도 궁금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곰곰. 참지 않고 당당하게 내 할 말들 모두 다 하고 내 마음 그대로 보이고 그렇게 살아가지 않았을까.

아직까지는 초반이라서 쉬엄쉬엄 읽고 있는데 모유수유 구절 읽을 때는 좀 많이 열받아서 막 미친듯 웃음이 흘러나왔다. 잠 못 자고 꾸벅꾸벅 졸면서 젖가슴이 끊어질 것처럼 무겁고 어깨는 아파죽겠고 허리도 나가서 죽을 것만 같은데 미칠 것만 같은데 미치지도 않고 왜 다른 여자들은 젖 먹이면서 행복해하고 그런다는데 왜 나는 이 행복이 딱 5분인 건지 내가 미친년인건지 아니면 젖 멕이면서 행복해한다는 여자들이 이상한 건지 이도저도 아니면 젖 먹이면서 행복해하는 게 바로 여자의 행복이고 어미의 행복이라고 주입식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왔다갔다 하는지 궁금했다. 그때 그 경험들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미칠 것만 같다고 이야기했더니 친구가 다른 여자들 다 하는 건데 왜 너 혼자 유별나게 구냐고 네가 이상한 거라고 조금만 참고 지나면 다 지나가는 거라고 아가들은 다 자라게 마련이니까 라고 심드렁하게 이야기하던 게 떠올랐다. 그래서 난 내가 모성애가 진짜 심각할 정도로 부족한가보다 하고 정신과 가야 하나 했다.

어려운 문장들은 이제까지 없었다. 심플하게 여성사 정확히는 미국의 여성사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고 있다. 지금이야 그때보다 좀 나아지긴 했어도 그때나 지금이나 대학 교육 받고 시를 논하고 문학을 이야기하던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에 머무르게 되면 해야만 하는 일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바 없으니. 오늘 읽은 문장들_ 173쪽 문장들이 제일 와닿았다. 딸아이랑 조카딸에게 오렌지 까주면서 이야기했다. 너희들 때는 분명 달라질 거야, 달라지긴 할 텐데 그래도 스스로 변화하려고 해야해. 마음과 의지가 같이 움직여줘야 꼭 뜻을 이룰 수 있을거야 막 힘을 줘서 말하니까 이해를 했는지 하지못한 건지 그건 모르겠으나 덩달아 입술에 힘을 주고 응응!! 엄마! 응응!! 이모! 대답은 한다. 여성에게도 마음이 있고 의지가 있고 욕망이 있으니 세상 안과 밖, 그 어디에서나 자신이 있고싶은 곳에 가닿을 수 있다. 가정이란 곳은 소중하지만 가정의 따스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이들은 더 과감하고 용감하다. 세상의 모든 짐을 따스한 가정 안에서 내려놓고싶은 것은 비단 남성만의 욕망은 아니다. 능동적으로 가사일을 돌보아도 끝이 없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집은 금세 개판이 된다. 먼지가 좀 쌓이고 정리가 되지 않아도 그걸 과감하게 무시하고 내가 하고싶은 일에 몰두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있어야 한다. 끝없이 나는 내 딸아이에게 이야기한다. 네가 세상의 중심이고 네가 혼자서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고자 할 때 그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용기, 마음, 체력 그런 게 미리 준비된다면 좋겠다. 세상은 위험하고 무서운 이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함께 하고싶은 좋은 이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세상의 어느 곳을 가도 그곳에서 네가 마음이 편하다면 그곳이 네 고향이고 네 집이다. 그렇게 노마드주의를 계속 심어준다. 왜? 내가 그렇게 살아가고 싶으니까. 비록 나는 지금 이렇게 집순이로 살아가고 있지만. 

 어쩌다 언니를 새로 알게 됐는데 언니가 어제 오늘 해준 말이 정말 위안이 되었다. 위대한 이들이 보기에는 같잖아 보일 수도 있지만 종종거리면서 애를 쓰잖아, 계속 질문하고 계속 답하려고 하고 그게 누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말자. 길을 찾게 될 거야. 언니의 말들이 밤길 걸어오는 동안 환하게 빛을 밝혀주었다. 길을 찾게 될 거야.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고 봄을 즐기면서 타박타박 밤길을 마음 편하게 걸어다닐 수 있다면 좋겠다. 모든 여성들이. 암흑을 두려워하지 않고 편안하게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귀가하는 길에 평화만이 오롯이. 












여성도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여성도 성장하고자 하는 인간적 욕구가 있었다. 그러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작업은 더 이상 가정에서 행해지지 않는다. 또 여성은 세상사를 움직이거나 이해하는 훈련을 받지 못했다. 아이들 속에서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수동적이며, 자신이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는 채로 가정에 갇혀서, 남성을 즐겁게 하는 존재로서만 살아갈 수 있었다. 여성은 그것이 만들어질 때 자신의 몫을 할당받지 못한 남성의 세계에서 남성의 보호에만 전적으로 의존해왔다. 여성은 성장하면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던질 수 있는 간단한 물음, 즉 "나는 누구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결코 제기할 수 없었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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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0-04-13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칠 것만 같은 데 미치지도 않고....
아.. 그 날들이 또렷해요. ㅠ ㅠ
그런데 요즘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습니다.

Vita 2020-04-13 11:34   좋아요 0 | URL
아가랑 의사소통 안되는 게 완전 쥐약이었어요 언니;;; 제가 아가들이랑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아가들 보면 아직도 좀 무섭기도 하고 그래요. 요즘에도 -_- 맞아요 언니 아 언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moonnight 2020-04-13 0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성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고 밤길을 걸을 수 있는 그 날이 꼭 오길 바랍니다 속히 왔으면ㅠㅠ; 현실은 집에 있어도 옆집 때문에 두렵고 무섭-_-

Vita 2020-04-13 11:35   좋아요 0 | URL
달밤님 진짜 무서웠을듯 해요. 저희 이웃집도 가끔 그렇게나 소리 지르고 그러는데 이 집은 여성분이 그렇게나 소리를;;; 모두 개인사가 있겠지만 그래도 달밤님 이웃남성은 정말 이야기만 들어도 공포스러웠어요. 말 그대로 개망나니;;;

다락방 2020-04-13 0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앗, 173쪽 이라니. 많이 읽으셨네요, 수연님!
저도 오늘 시작하려고 가방에 넣어왔는데 어휴, 너무 무거워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는 서문을 읽으면서 출근했습니다.

Vita 2020-04-13 11:36   좋아요 0 | URL
근데 다락방님 무거운데 하나도 무겁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신기했어요 ㅋㅋ 내가 책 안에 담겨져있다 그런 느낌이 들어서 좀 가볍게 느껴진듯도 해요 그런 착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