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도서였던 [보이지 않는 가슴]을 다 읽지 못했다. 집중도 안 되고 뭐 이렇게 어려워 싶어서 아 못 읽겠다 하고 대신 펼쳐든 책.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읽고 이해되지 않는 구절들도 없어서 끄덕끄덕거리며. 보이지 않는 가슴은 올해 말이나 다시 도전할듯 싶다. 몰입이 안 되고 집중력이 흩어지면 책읽기가 되지 않는다. 흥미의 여부와 무관하게 요즘은 몰입이 잘 되지 않아서 책읽기가 힘들다. 읽다가 결코 그 입장이 되지 않고서 남자들이 돌봄에 관련된 책을 쓸 일이 과연 있을까 싶은 마음. 조금 더 읽고싶은 책들이 늘어나고 있고 어느 지점까지 읽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읽겠다 싶다. 할 일이 많고 조바심이 이는데 이 조바심을 어떻게 없애야할지 알 수 없다. 돌봄이라는 단어만 놓고 보자면 아빠가 말기암에 걸려 있는 동안 몇 달(하지만 나 혼자가 아니라 여동생들과 엄마가 함께 했으니 돌봄의 시간을 분배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이 돌보고 숨이 막힌다 싶을 때 애인과 데이트를 나갔고 다른 사람이 돌봤고 엄마가 일이 많아 계속 함께 할 수 없을 때 아빠의 불만은 급속도로 팽창되어갔다, 나는 중간 결혼을 해서 지방으로 이사를 갔고 그 결과 잠깐씩 아빠 보러 서울에 온 게 전부니 돌보았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은 결국 얼마 되지 않는다), 딸아이가 태어나고 6개월 동안 엄마집에서 지낼 때 역시 여동생들과 엄마가 돌보는 시간을 함께 했기에 그 6개월 동안 살림도 하지 않았고 갓난아기를 계속 안고있을 필요도 없었다, 6개월이 지난 후 따로 집을 구해서 사는 동안 그때가 정말 지옥이었다. 남편이 인턴 생활을 하는 동안 며칠에 한 번 잠깐씩 보는 게 전부였으니까 6개월 동안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는지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끔찍할 정도. 징징거리면 엄마와 여동생이 금방 달려오기는 했지만. 모성애와는 별개로 독박육아는 정말 지옥이었다. 심리적으로 더 고립되어있었으니까 그랬던 건가 싶기도. 안정을 좀 더 빨리 찾았다면 여러모로 더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_ 육아를 하면서 얼마나 독립적이지 못한지 새삼 역량을 깨달았다. 지금도 깨닫고 있지만_ 아직 딸아이가 어리니 아이를 돌보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이 아이를 돌보면서 겪게 되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그 무엇과도 대체하기란 힘든 일이다. 닻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돌봐야 할 이들과 나를 돌봐줄 이들, 그 관계를 대강 그려본다. 이걸 가족간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엔 역시 무리다. 조금 더 읽고 조금 더 앞으로. 생판 남인 할아버지 한 분이 혼자 살고 계신다. 사촌 형부는 정이 많고 평소에도 봉사를 즐겨하는데 그 할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오면 금방 달려간다고_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인데 어떻게 저렇게 잘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사촌 언니는 입을 뾰루퉁 내밀었다. 그게 가능할 수 있고 가능한 일로 만드는 형부가 엄청 커보였는데 읽는 내내 형부 떠올랐다. 저자의 말에 따르자면 이 거인 같은 일들을 거인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점. 그걸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딸이라는 이름으로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아내라는 이름으로 행하지 말고 그 어떤 혈맹 호칭도 지니지 않고 책임감을 지니고 행할 수 있다는 사실. 정책적으로도 변혁되어야 할 것들은 많고_  옥희살롱 궁금해서 찾아보기.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가게 될까. 돈으로만 안 되는 일들이 많다는 것도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게 되는 거고 자꾸 몸을 챙기게 되는 게 더 이상 우스워보이지 않는 걸 보면 나이가 들긴 들어가는구나 싶다. 몸보신 한다고 좋고 비싼 거 먹으러 다니는 선배들 보면서 비웃은 게 불과 십오년 전인데. 아무리 건강을 챙기고 에너자이저인척 살아간다 해도 이렇게 골골거리는 상태로 돌보는 이에게 뼈마디를 주물러달라고 난리를 칠 게 대략 30년 전후 아닐까. 운이 좋다면 40년 후. 엄마가 백살까지 민이 옆에 있어줄게_ 하니 여동생이 벽에 똥칠하면서 100세까지 산다면 민이가 좋아하겠니, 빨리 뒈져야지 할 때 버럭했는데 아빠 얼굴 떠올랐다. 기저귀 갈아줄 때 고개 돌리고 미친듯 울던 아빠 얼굴이. 이래저래 아직도 갈팡질팡이다. 나도 모르게 완벽한 코리언이었구나 자각한 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그대로 나 역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조금 더 다르게 조금 더 앞으로 보살핌과 돌봄이라는 영역에서 넓혀야 할 것들이 많다. 이대로 그대로 있어서는 달라지는 것들이 아무 것도 없으니까. 









질병이나 장애로 인해 용변 처리를 남에게 맡겨야 해도, 다른 이를 돌보느라 머리가 산발이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시민일 수 있다. 우리의 시민임은 선험적으로 가정되는 것이기보다는 구체적 돌봄관계 안에서 구현되고 생산되는 것이다. 시민적 돌봄이 사회정책의 첫 번 째 전제가 될 때 우리는 방치될까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시민적 돌봄이 구체적인 돌봄관계 안에서 ‘적당함‘의 감각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버팀목이 될 때 우리는 한계까지 몰려 절망하지 않을 수 있다. 시민으로서 돌보고 돌봄 받는 사회에서, 아프고 돌보는 동안의 삶은 지금보다 더 좋은 삶이 될 수 있다. 돌보는 사람에게도, 돌봄 받는 사람에게도 말이다.



늙고 아프면 누가 나를 돌봐줄 것인가? 이 글의 맨 처음에 썼던 문장을 이렇게 고쳐본다. ‘나는 누구를 돌볼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돌볼 것인가?‘ 고쳐 쓴 질문 앞에서, 내가 ‘기꺼이‘ 돌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차마‘ 돌보지 않을 수 없었던 관계들을 돌아본다. 기꺼이 뛰어들었지만 파국으로 이어졌던 돌봄의 경험도 곱씹어본다. 어머니를 돌보는 동안의 몇몇 장면들은 죽을 때까지 잊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이 모든 돌봄의 시간, 돌봄을 주고받았던 관계는 ‘나‘의 일부다. 각자, 혼자 알아서 하는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짐이고, 또한 힘이다. (79-80)

아침이다. 누군가는 식사를 준비해야 하고, 그 ‘누군가‘가 바로 나다. 일단 몸을 움직인다("오늘 아침에는 죽을 했어요"), 환자의 ‘필요‘를 알아차리는 것부터가 돌봄의 시작이다("한동안 누워 있어서 그런지, 요즘 소화력이 떨어진 것 같아서요"). 질병의 종류와 양상에 따라 ‘필요‘는 세분화되고 ("다음주부터 4차 항암 시작인데 면역력 수치가 너무 낮아서, 이번 주말만이라도 입맛 있을 때 열심히 먹어서 면역 수치를 높여놔야 하거든요"), 정보는 너무 많거나 너무 적고("아는 사람이 오랫동안 간병을 했는데, 암 환자한테 고기가 안 좋다면서 절대 안 된다고 해서... TV에 나오는 의사들은 고기를 꼭 먹어야 한다고 하던데, 사실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보호자는 끊임없이 선택과 결정을 거쳐야 한다("왠지 꺼림칙해서, 죽 재료는 일단 유기농 채소만 넣었죠"). 게다가 변수는 항상 발생한다("하필 믹서기가 고장 나서 쌀을 직접 빻았더니 팔이 좀 아프더라구요"). 아침 식사 한 끼 얘기다.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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