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에 자기만의 방_을 놓고 왔다. 읽다가 계속 포기했는데 한창 읽을 맛이 나는데 그만 깜박 소파 위에 놓고 왔다. 어머님께 책을 잘 챙겨달라는 부탁을 하고 왜 이렇게 자기만의 방 완독하기가 힘든가, 이건 무의식을 가장한 실수인가 홀로 자문. 


 도리스 레싱의 인생을 살펴본다. 한계와 테두리를 명확하게 그렸다는 점, 그 이상을 항상 추구해왔다는 점, 그 결과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혜석 언니는 이혼을 했고 사랑하는 자식들을 다시는 보지 못했고 행려병자가 되어 죽었지만 그 인생을 실패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주체적으로 살았고 자립했지만 철저하게 고립되었고 길 위에서 죽음을 맞았다. 안타까운 점은 항상 여기 이 지점, 내적으로 자신만의 공간이 광활했던 그에게 자그마한 한뼘의 자립적인 공간도 없었다는 것. 눈물을 쏟게 되는 지점은 항상 이곳이다. 도리스 레싱 언니는 운이 좋았다고 해야할까. 집 앞 공간에서 털퍼덕 주저앉아 세계의 눈길을 당당하게 맞이한 그의 모습이 얼마나 쾌활하던지 저절로 웃음 한 조각. 


 예전에 읽었던 글쓰는 여자의 공간을 다시 펼쳤다. 





 

 많은 여성 작가들은 카페나 도서관 같은 공공장소에서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쓸 장소가 집에 없었거나 난방 시설이 열악했거나, 이래저래 여건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영국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여성 중 한 사람인 조앤 K. 롤링도, 그 유명한 시몬 드 보부아르도 그랬다. 반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토니 모리슨은 식기와 빵조각이 어질러진 부엌 식탁에서 글을 썼다. 중국 장가 장지예는 화장실 변기 위에 널판때기를 올려놓고 앉아 6백 쪽에 달하는 장편소설을 썼다.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도 필요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 이는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게 여자들의 의무였던 시절에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20세기 중반을 살았던 실비아 플라스도 이 문제에 부딪혔다. 카렌 블릭센, 셀마 라게를뢰프, 이사벨 아옌데 등은 훨씬 사정이 좋았다. 그들은 여비서까지 두고 있었으니까. (19) 






 

 모든 일을 다 잘하는 슈퍼우먼이 될 수 없어, 그 한계를 깨닫고 변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설명했다. 한 페이지의 책을 읽는 것보다는 손수 쿠키를 구워 아이에게 주는 시간이 더 행복하지 않냐는 의견에는 고개를 저었다. 손수 쿠키를 구워 아이에게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군가가 구운 쿠키를 앞에 놓고 딸아이와 함께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 시간이 내게는 솔직히 더 강한 행복감을 주노라고. 물론 한 페이지의 소설을 읽느라 어린 딸아이를 외롭게 만들었던 적도 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딸아이는 나를 이해해주리라. 이건 착각일까. 나는 내 어머니의 인생을 마주하며 여성으로서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_는 생각을 어린 시절부터 했다. 거기에 투영된 모습 중에 왜곡된 면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 모습을 마주하면서 나는 여성으로서 이렇게 살고싶다 했고 딸아이는 또 나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만의 인생,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부단히 생각하고 계획을 세울 것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엄마로서 부족한 면이 한참 많지만 이해하고 오해하고 그러면서 조금 더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오늘은 요가를 하고난 후 서울로 가 친정식구들과 외식을 하고 맥주를 마시며 정겨운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딸아이는 조카들과 놀고. 아이가 열감기에 걸려 밤새도록 앓아 계획은 모두 허사로 돌아갔고 졸린 눈을 비비며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를 계속 읽을 예정이다. 오늘 태풍이 찾아온다고 했던가. 미음도 못 넘기고 열이 계속 펄펄 끓으면 딸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달음박질을 쳐야하고. 새벽에 해열제를 먹으며 엄마, 나 때문에 요가 못가 미안해, 딸아이의 한마디에 뜨끔, 괜찮아, 오늘 집에서 하면 돼, 같이 동화책도 읽어주고 그럴게, 아 그렇지, 이젠 다 컸다고 동화책도 읽어주지 않았지, 하고 또 뜨금. 뜨끔뜨끔거리며 계속 생각, 나는 아직 나만의 방을 갖고 있지 못하다. 부엌의 식탁과 동네 카페의 한 테이블이 내 공간이다. 오십이 되기 전에 나만의 방을 갖고 싶다는 이야기를 남편에게 한 적 있다. 독립적으로 나도 안방 말고 부엌 말고 나만의 서재를 갖고싶다. 신혼 초부터 부단히 이야기한 이야기. 이사를 하면서 부엌의 식탁으로 사용할 테이블을 큰 걸로 골랐다. 이렇게 클 필요 있나, 남편은 중얼거렸지만 여기에서 난 밥만 차리지 않을거야, 밥순이는 내 부분 역할이야, 이곳에서 난 책도 읽고 스페인어 공부도 해야하고 블로그에 글도 써야 하고 독후감도 써야 하고 민이랑 영어도 공부해야 하니까 이렇게 큰 게 내게는 필요해. 내 존재의 팔할은 읽고 쓰는데 있으니까 이렇게 드넓은 식탁 겸 책상이 내게는 필요해, 구구절절. 딸아이 책상을 아직 사주지 못했다. 딸아이 책상 옆에 내 책상도 놓고 싶지만 공간이 되지 않는다. 대신 욕망을 투영해 딸아이 책상을 아주 큰 걸로 사줘야겠다고 다짐한다, 나의 딸아, 너는 너만의 책상, 너만의 공간을 계속 내내 가지렴, 부디. 그 방 안에서 너는 온전하게 홀로 꿈꾸고 절망하고 읽고 쓰고 공부하고 다시 꿈꾸며 웃고 울고 다시 웃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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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8-10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제 방에 있는 책상과 의자는 초등학생 시절에 구입한 거예요. 쓰기 불편해서 거의 방치한 상태인데, 의자가 들어가는 책상 밑 공간에는 책을 쌓아 두었어요. 저도 앉기 편한 의자와 넓은 책상을 가지고 싶은데, 방이 좁아요. ^^;;

수연 2018-08-11 10:42   좋아요 0 | URL
응, 나는 초등학교 6학년때 책상 샀던 기억 난다, 그때 무진장 설레였는데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쓰고 아무런 미련 없이 동생에게 물려준 기억도. 민이도 이제 사주면 고등학교 다닐때까지 쓰게 하려고 하는데 그때 가면 취향이 달라졌다느니 어쨌다느니 할까봐 아직 못 사주고 있어. 신기하지 않아? 너랑 마주앉아 맥주 마실때 누나 품에 있었던 아가가 이제 책상을 쓸 정도로 컸다는 게. 독립하거나 결혼해야 네 마음에 드는 책상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