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에 대한 편견이 까닭없이 심해진 이유는 찾지 않았다. 계속 영풍문고에서 광고를 하는 책을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찾다가 결국 포기하고 계산대 앞에 갔을 때 찾고 있던 책을 손에 들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어디에 있느냐고 차마 묻지 못했다. 질문은 서점 직원에게도 할 수 있었겠으나 그 질문 자체가 번거로워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건데 차마 낯선 남자에게 그 책이 어디에 있었던가요 질문하기란 더더욱. 서점 안에 그렇게나 많은 이들이 모두 고개를 박고 책을 읽고 있는 게 신기해서 나도 빈 자리를 찾아 읽어볼까나 했으나 삼십여분 지나는 동안 단 한 자리도 비지 않아 나왔다. 그냥 나오기가 어색해 신간 코너에 가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글 잘 쓴다는 작가의 소설을 살까 하다가 이내 그 소녀 같은 어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고개를 외로 꼬다가 발견한 책, 모든 것을 제자리에. 



방학인 딸아이를 데리고 냉방비를 아껴보겠노라고 나와서 근처 음식점에서 간단한 한끼를 해결하고 별다방으로 가서 함께 공부를 했다. 스페인어 인강을 같이 보자고 그 다음에 네가 보고싶은 걸 보여주겠노라고 장난을 치고 같이 인강을 들었는데 집중해서 다 듣는 모습이 기특해서 알아듣기 어려운데 지루하지 않냐 물어보니 신기하다,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묘하게 재밌다, 만화영화만큼이나. 이런 맛에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것이냐 영어보다 재미있다, 대꾸했다. 스페인어 가을부터 같이 공부해볼까 하니 됐다, 지금 히라가나도 다 외우지 못했는데 무슨 스페인어냐, 일본어 얼추 기초 끝내고 생각해보겠다, 라고 대꾸. 넌 가끔 나보다 훨씬 어른 같다, 이럴 때, 대꾸하니 나도 안다, 엄마야, 라고 대꾸. 



 공부를 다 마치고 버스를 타고 근처 영화관으로 갔다. 버스 타고 10분 거리에 영화관이 있으니 세상 참 편하다, 촌동네로 이사오기 잘했다는 생각. 쇼핑몰 안에는 온통 인간들. 영화관에 도착해서 보니 딱 7분 후에 보고싶은 영화가 상영, 딸아이가 보고싶어한 영화를 함께 봤다. 그 집착과 열정과 무모함에 기가 질려하면서도 다 보았다. 영화를 다 보고난 후 간단한 식료품을 구입하고 쇼핑몰에서 모자 두 개를 샀다. 딸아이 하나, 나 하나. 서로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면서 거울 속에 비친 너와 나를 보았다. 각자 만족하며 택시를 타기 위해 쇼핑몰을 나섰다. 바람이 너무 강해서 새로 산 모자를 강풍에 빼앗길뻔 하고 구겨지지 않게 조심조심 종이백 안에 넣었다. 묘하게 모자 욕심이 생긴다. 선크림은 바르기 싫고 상대방 눈을 마주하기 싫을 때 꽤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고 쇼핑몰에 가면 모자만 보게 된다. 불안을 숨긴다고 해서 불안이 담긴 눈빛까지 감출 수는 없다. 흔들거리는 눈동자와 금방 눈물이 쏟아질 거 같이 내내 젖어있는 눈을 감추고싶은 건 당연지사. 다른 사람들 역시 이런 불안을 지니고 계속 살아간다, 이런 문장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늘은 사람들이 많은 곳을 가도 이질감이 들지 않아서 편했다. 대인기피증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그저 사람이라면 막 피하고 싶어서 오들오들 떨 정도는 아니지만 가능하면 마주하고싶지 않다, 이걸 최정화는 가벼운 대인기피증이라고 표현했다. 나네 나, 막 이러면서 끄덕끄덕. 최정화는 처음. 촌철살인. 좀 놀랐다. 출판사에서 홍보용으로 쓰는 소설이나 에세이 안 문장들은 대개 오글거린다. 그게 인생의 질서를 얼추 담아놓았다 해도 손발이 오글거려서 작가가 누구이건 간에 아 뭐 이렇게나 오글거리게 포인트 크게 맞춰서 홍보해야하는가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더구나 순한 캐릭터로 세상사 비밀 모두 다 알려줄듯 따뜻한 말들이 적혀있는 걸 보면 소름이 다 돋는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으나 온통 거짓으로 그득한 우물 안 물을 떠마시며 계속 목이 탄다, 목말라, 그런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 거짓된 물을 마셨으니 목은 계속 마른다. 자 이번에는 다른 우물. 우물 안 물이 썩은 물이었다고 치자, 두 눈이 멀어서 썩은 물을 마셔도 썩은내 나지 않아 다 마시고난 후 아 이제야 살 거 같다, 시원하다 외친다. 합리적이고 인간적이고 실용적이고 정의롭다고 여긴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다 잊게 된다. 그 썩은 물 안에는 불안이 한가득이었으니. 최정화 소설 안 촌철살인 문장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아니 뭐 이런 아니 어쩌다가 이런 아 정말 이거야말로, 이렇게 감탄을 하면서 읽는다. 버석거리는 이 불행들이 온전하게 다 벗겨져 새로운 살이 돋아나면서 인생 정말 살만해 외치지는 못하리라. 바삭바삭 바게트 껍질을 갉아먹다보면 뜨끈한 속살이 나오는데 그 감촉이 혀에 닿는 순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바게트 하나와 에스프레소 하나에 버무려지는 불행들. 어느 순간 제자리를 찾게 될지도. 희망 없이도 담담하게. 커다란 모자 안에 불안으로 축축해진 두 눈을 노을진 하늘에 고정시키고 수영하고싶다 웅얼거리다가 뜻하지 않은 위안 최정화 읽다가 메모. 불합리한 것들은 불합리한 그 순서에 맞게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그러니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십시오. 목숨이 끊어질 거 같은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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