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 - 소노 아야코의 경우록(敬友錄)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 리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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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노 아야코의 글을 계속 읽는다. 읽다보니 뭔가 낌새가 살짝 느껴져 알아보니 이 할머니 대단한 극우다. 대단한 극우의 글을 읽고 동조를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네 깜짝 놀랐다. 일단 아닌 건 아닌거라고 읽던 책장을 탁 덮고 창고에 처박아두기엔 좀 아까운 마음이 들어 계속 읽는다. 잠깐 글읽기를 멈추고 어떤 극우 짓거리를 했나 좀 찾아보고 분노하고 그리고 다시 생각. 달라진 건 없다. 그렇다면 내가 달라졌다는 거네, 좀 놀랐다. 


흠 없는 인간 없고 때 안 탄 인간 없다는 엄마의 말. 세상에는 수많은 세계관이 있다. 다른 사람들을 대하고 세계를 대하는 방식, 내게 어떤 세계관이 있는지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극우의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어마무시한 극우라는 사실을 앎에도 좀 놀랐다, 하고 다시 소노 아야코를 펼쳐드니 약간 비겁해졌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니라고 인정하고 싶지만 아니라고 인정하기에는 이미 저지른 실수들, 내가 내 치마를 들추고 내 치부는 여기다 라고 사람들 앞에서 떠들고 다니는 것 역시 상상할 수 없다. 그렇다면 도망쳐라. 도망치는 것 역시 하나의 태도 아닐까 살아가기 위해서 도망치는 것 역시 필요하다. 비겁하다고 욕설을 들을지언정 도망을 쳐서 회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다시 살 궁리를 하면 된다. 여기에 노마드적 세계관이라고 하면 어불성설이지만 인간에게는 정착과 헤매기 그 사이에서 더 강한 이끌림 있다. 잣대를 들이대어 이 사람을 평하고 저 사람을 평하는 일 역시 나도 즐겨하지만 장사하는 동안 얇은 귀로 이리 펄럭 저리 펄럭거리다보니 인간들 다 싫어지고 스스로까지 싫어지는 걸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나 도저히 더 이상 못하겠다 손을 턴 것도 사실이다. 정도 지긋지긋해지고 미워하는 것도 지긋지긋해지고 사탕발림하는 것도 지긋지긋해지고 그 사이 겹쳐지는 타인과 내 욕망 역시 지옥을 지키는 개처럼 지긋지긋해졌다. 지옥을 지키는 개는 중얼거렸다. 뭔놈의 인간들이 이렇게 끝없이 들어온다냐. 그때 내 심정이 그러했다. 지옥을 지키는 개처럼 두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고 그 욕망들 중에 뭐 하나 아름다운 티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린 딸아이를 품에 안고 매일 울어댔다. 그럼 좀 정화가 될까 싶어서. 그리고 슬슬 정말 내가 지옥의 개가 되어가는구나 자각했고 세상 이렇게 사는 거 아니다, 탁탁. 장사를 접으면서 선풍기 아줌마를 계속 떠올렸다. 선풍기 아줌마는 대단히 아름다운 여성이었는데 자신이 지닌 아름다움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예뻐져야지 더 예뻐질 수 있어, 이보다 더, 훨씬 더. 극치의 아름다움을 찾다가 스스로를 망치고 말았다. 내면에는 지옥개와 선풍기 아줌마가 나란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어린 시절부터 북카페를 근사하게 할 거다_라는 꿈을 지니고 있었다. 마흔 가까이 되어 꿈을 이루고보니 그 꿈에서 설계도를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앗차 설계도를 빼먹었어, 어떻게든 되겠지 너털웃음을 웃었다가 3년 지나고 세상 초탈한 사람처럼 울고 있다. 설계도가 빠진 꿈을 이루었으니 허망하지만 꿈은 이루어졌고 그 꿈에서 보다 더 길게 넓게 포용성 있게 드넓히는 일은 차마 하지 못했다. 도와주려는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자신의 꿈은 그 설계도는 자신 말고 어느 누구도 제작할수 없다. 여기에 무엇이 들어가야 하고 저기에 어떤 걸 놓아야 하는지 그 설계도는 자신만이 그릴 수 있다. 이렇게도 도와주겠다 저렇게도 도와주겠다 하는 착한 사람들은 넘쳤지만 그 도움은 철저하게 목적이 있는 선에서만 가능했다. 서로에게 필요가 없으니 연락도 저절로 마음 따라 끊기고. 지옥개와 선풍기 아줌마를 두 어깨 위에 나란히 하나씩 올려놓고 곰곰. 장사를 하는 다른 친구와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가 우리의 그릇이 간장종지만한데 국사발에 담을 것들을 간장종지 안에 담겠노라고 그리 애를 쓰고 용을 썼다가 망하나보다 웃기도 많이 웃었다. 촌동네로 이사를 와 북클럽을 꾸리면서 뭐가 그렇게 힘들었어요? 어떤 분이 질문을 하셨다. 곰곰, 사람이 힘들어요. 사람 때문에 힘들고 사람 덕분에 또 하루 견디고 사람 때문에 또 죽을 거 같고 전 그랬어요, 그러지 않아도 됐는데 그랬더라구요. 대답을 하다가 또 웃었다. 


장사를 접고나니 흰머리가 수십가닥 늘었고 주름이 더 늘었고 비웃음이 더 늘었고 불평이 더 늘었고 욱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휴, 한숨을 내쉬며 요가 동작을 따라하면서 나 장사 1년만 더 했으면 아마 정신병원 들어갔을거야, 오랜만에 만난 옛친구에게 말했다. 극도의 심플주의자가 되어 세상 사는 데 필요한 게 그닥 많지 않더라, 사람들도 한둘 있으면 된다, 백 명이 필요하고 천 명이 필요하고 만 명이 필요한 이들은 따로 있더라. 극도의 환멸감에 흠씬 젖어있다가 이제야 슬슬 회복세. 극우의 글 한쪽 모서리 귀접으면서 열대야도 아닌데 열대야 같은 저 지글거리는 불지옥 한가운데 위치한 별다방 가기 위해서 모자를 뒤집어쓴다. 예전의 나라면 이런 제목에 절대 이끌려 책을 사지 않았을 텐데 나도 모르게 덥석 쥐어들고 계산대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면서 이게 제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책이에요, 묻지도 않은 말에 홀로 대답을 하면서 눈을 희번득거리며 카드를 내밀었다. 


 변화시키려 들면 안 된다 

 변화시키려 들면 안 된다. 단지 지켜보며, 내가 방패가 되어 그 사람이 결정적으로 붕괴되는 것만 막아주면 된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다. 그것은 출구 없는 고통처럼 마음을 죄어 누르는 듯한 느낌도 들고, 배려로써 마음을 떠받쳐주는 듯한 느낌도 든다.    쓸쓸함의 극치의 땅.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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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0 09: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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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0 16: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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