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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천사 같은가 ㅣ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마거릿 밀러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26년 1월
평점 :
1962년에 출간된, 캘리포니아가 배경인 추리 소설이다. 작가 마거릿 밀러는 그 시절 다작하는 추리소설 작가로 꽤나 유명했던 것 같은데, 나는 이 작가의 책을 한 권도 읽은 적이 없다. 사실 추리소설을 딱히 즐기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시대의 추리 소설로는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의 대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 정도만 재미있게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번역된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들을 다 읽긴 했는데 기억이 잘 안나... 내가 이래서 추리 소설을 잘 안 읽는 거다. 읽을 당시에는 도파민이 터져서 재미있게 읽는데, 조금 지나면 기억에 남는 게 없어서.....
아무튼 그래도 신간을 구경하다가 재밌는 소설을 읽고 싶어서 오랜만에 추리소설을 한 권 샀다. “얼마나 천사 같은가”. 영어 제목은 “How like an angel". 세익스피어 ”햄릿“ 2막 2장에 나온 독백에서 따온 제목이다. 어떻게 알았냐고? 책 앞 페이지에 햄릿 구절이 쓰여 있기 때문에 알았지. 말 나온 김에 내가 가지고 있는 ”햄릿“ 책도 찾아봤다. 어떤 맥락에서 이 구절이 나왔는지 알고 싶어서. 그런데 내가 딱 이 구절에 밑줄을 좍좍 그어 놓았더라. 역시 왜 그랬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유명한 구절인가 보다 라고 추측만 할 뿐이다.
아무튼 햄릿은 말한다. ”인간이란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가...행동은 얼마나 천사 같은가 이해력은 얼마나 신과 같은가...그러나 내게는 이 먼지의 정수란 무엇이란 말인가...“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구절이 딱 이 소설 속 인물들을 닮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겉보기에는 인간이 참 천사 같고, 행동도 계획적이고 대단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음침한 범죄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는...
탐정인 조 퀸은 리노에서 도박으로 돈을 다 탕진하고, 도박장에서 만난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캘리포니아로 온다. 차를 태워준 사람은 퀸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지 않고 중간에 내려주면서, 저 위 산에 올라가면 종교단체가 있으니 거기에 가서 재워 달라고 부탁해 보라고 한다. 돈 한 푼 없이 낯선 곳에 내려진 퀸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산꼭대기에 탑을 짓고 그 안에서 자급자족하면서 교주의 명령을 따르는 사이비 종교단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그런데 이 곳 분위기가 의외로 공포스럽지 않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교주는 그렇게 강압적이지 않다. 나는 퀸이 이 종교단체에 들어가서 뭔가 무시무시한 사건에 휘말릴 줄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 단체의 묘사가 평화로워서 소설이 내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겠구나 하는 느낌을 초반에 받았다.
다음날 퀸이 떠나려고 할 때, 신도 중 한명인 ‘축복자매’라는 사람이 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산을 내려가 치코테라는 작은 도시에 가서 패트릭 오고먼이라는 사람의 행방을 조사해 달라는 것이었다. 원래는 개인적으로 돈을 소유하면 안 되는 종교단체의 규칙에도 불구하고, 축복자매는 매년 아들이 부쳐주는 돈을 모아 가지고 있었는데, 퀸에게 그 돈을 은밀히 주며 부탁을 했다.
지인에게 빌려준 돈을 받아내서 다시 리노에 가 도박이나 해볼까 하던 퀸은, 축복자매에게 거금도 받았겠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아서 치코테에 가기로 한다.
그곳에서 퀸은 패트릭 오고먼이 5년 전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두가 서로를 알고 있는 조그만 마을에서 5년 전 실종 사건을 캐묻고 다니는 퀸의 존재는 단연 눈에 띄고, 누군가에게는 그의 이런 행동이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는 것처럼 보인다. 퀸은 오고먼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며 정보를 듣고, 축복자매에게 소식을 알려주기 위해 다시 산속에 갔다가, 오고먼 실종 사건의 정확한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다시 치코테로 가는데...
왔다갔다 하는 퀸을 따라가다 보면 이 탐정이 그렇게 유능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추리소설에서 기대하는, 척 보면 견적이 나오는 천재 같은 셜록 홈즈 스타일의 탐정은 이 소설에서 만나볼 수 없다. 퀸은 이사람 저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관찰자이고, 독자에게 사건의 흐름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 크게 번뜩이는 추리를 해나가는 인물은 아니다.
그러니까 탐정이 알고 있는 진실을 독자가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탐정이 풀어주는 방식을 보면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유가 아니라, 소설 속 탐정도 모르고 독자도 모르고 같이 가는 느낌으로 이 소설은 구성되어 있다.
보통의 지능을 가진 탐정 조 퀸은 천재적인 매력을 뽐내지는 않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 아마도 그 역시 도박으로 추락해 본 사람이라는 경험에서 그런 매력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겠지. 사이비 종교단체에 모여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어딘가 따스함이 있었다. 세상에서 밀려나 안식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 같은 거.
이 소설은 설명조의 세세한 서술로 조 퀸의 이런 인간적인 마음을 보여주기 보다는, 단순하고 짧은 대화로 심리를 보여주는데 그 방식이 꽤나 매력적이었다. 차갑지만 따뜻한 대화랄까? 겉바속촉 뭐 이런 느낌...
캘리포니아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의 탐정소설이었다. 크게 머리를 쓰고 분주한 느낌이라기보다는 뜨겁고 한산한 배경 안에서 은은하게 의문을 품고 전개되는 느낌이랄까? 마지막 반전은 조금 예상 가능하기는 하지만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