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사계절, 지숙경 지음
지숙경 작가의 "숲속의 사계절"을 읽었다.
EBS의 "건축탐구 집"이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자주 보는데 거기서 지숙경 작가의 집을 본 적이 있다. 숲속 넓은 정원에 유럽 어디 시골에서나 볼 것 같은 예쁜 벽돌집 위로 푸른 담쟁이가 포근하게 덮여 있던 모습. 외관도 예뻤지만 하얀 회벽의 실내 공간도 참 예뻤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그 집을 직접 짓고 20년 넘게 살고 있는 집주인의 사계절을 담아낸 에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원을 가꾸고 사는 사람의 사계절은 모두 닮은 구석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작은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고 있어서 작가가 정원을 가꾸기 위해서 사계절 하는 일들에 공감하면서 읽었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기 위해선 그만큼 일도 많지만 또 그렇게 겁먹고 못 해낼 정도로 많지는 않다. 20년 이상 오래 정원 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 포기할 것들과 계속해야 할 것들을 터득하게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연에 적응하는 식물들을 알게 되고, 내 정원에서 잘 자라지 못하는 식물들에게는 가차 없이 미련을 버리게 된다. 처음엔 가늘고 작았던 묘목들이 어느새 집 높이를 넘어서서 하늘 높이 가지를 뻗어내 알아서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들을 보게 될 정도로 시간이 흐르면 매년 규칙적인 계절에 피고 지는 꽃들, 나무 열매들을 기다리게 된다. 다시 만나면 반갑고 기특하고 작별을 하는 순간에도 다음 해 이맘때 또 만날 기대에 마음속에 작은 희망을 품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 행복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는 시간이 온다. 내가 정원 생활을 하면서 느낀 이런 감정들을 이 책에서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정원 생활자들은 아마 다들 그렇지 않을까?
이 책의 작가는 도예가로 집 옆 작업실에서 도예 작업을 하면서 매년 비슷한 시기에 장작 가마를 땐다. 사계절 정원을 돌보며 일도 하는 생활.
아름다운 사진들과 담담한 문장들로 작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봄에는 조팝나무와 작약과 수국이 피고 여름에는 커다란 감나무 그늘에서 쉴 수 있는 곳, 가을에는 장작 가마 소성으로 뜨겁고, 겨울에는 하얀 눈을 그저 예쁘다 보고 있기보다는 나가서 치워야 하는 삶이 있는 곳.
매일매일 몸을 써서 할 일이 있는 숲속의 삶이지만 그 삶이 평온하고 충만해 보였다. 내 몸 움직여 자연 속에서 일하는 삶이 오롯이 나의 생존과 나의 기쁨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리라. 부제대로 그야말로 자발적인 은둔자의 명랑한 도예 생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