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과 남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9
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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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빅토리아 시대 작가 엘리자베스 개스켈이 찰스 디킨스가 발행하는 문예지에 연재했던 소설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각 챕터마다 일정한 분량으로 이야기가 제법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나는 몇 주 전에 이 책을 시작해 놓고 이런저런 일들로 계속 손 놓고 있었는데, 집중해서 읽어보자 마음먹은 후에는 무려 이틀 만에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그만큼 재미도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속도였다.

 

 

열여덟 마거릿 헤일은 교육을 위해서 머물렀던 런던 귀족인 이모의 집에서 아버지가 국교회 목사로 있는 남부 헬스톤의 집으로 돌아온다. 가족과 함께 아름답고 평온한 전원의 삶을 살아가게 되어 기뻤던 마거릿은 아버지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국교회에 회의를 품고 목사직을 사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사제관에서 살 수 없는 가족은 북부의 매연 가득한 산업도시 밀턴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이다.

푸른 숲과 들판, 좋은 공기가 있는 남부 농촌이 고향인 마거릿에게 뿌연 하늘과 매연을 뱉어내는 공장굴뚝이 있는 북부의 도시는 생소한 곳이었다. 그러나 북부로 이사 와서 더욱더 병세가 심해진 어머니와 마음 약한 아버지를 대신해 거의 가장 노릇을 해야하는 마거릿은 씩씩하게 북부의 생활에 적응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던 중 마거릿은 거리에서 만난 소녀 베시와 우정을 나누게 된다. 베시는 어릴 때부터 면화 공장에서 일하다가 공장에서 날리는 솜털이 폐에 들어가서 폐질환에 걸려 죽음만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다.

마거릿은 어떤 신분이라도 차별 없이 대하고 인간적인 연민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진정한 기독교 정신을 실행하는 여성으로 묘사되는데, 이런 마거릿이 북부 밀턴에서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다 죽어가는 여공 베시와 그녀의 아버지인 노동조합 위원장인 니콜라스 히긴스다.

밀턴에서의 생계는 마거릿의 아버지가 개인 교사를 하는 것으로 유지하고 있었고 그 학생들 중 면화공장 소유주인 존 손턴이란 사람도 있었다. 밀턴에서 성공한 공장 사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손턴은 마거릿과 만난 자리에서 노동자들은 게으르고 사업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면서 불평만 해댄다며 철저히 고용자 입장의 의견을 낸다. 마거릿은 노동자계급인 베시 가족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손턴이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처우하고 있다고 맞선다. 이 만남으로 손턴은 마거릿을 거만한 여자라고 생각하지만 마거릿의 당찬 모습에 반하기도 한다. 마거릿도 점점 손턴을 알아갈수록 그에겐 거칠고 냉정한 사업가의 모습만 있는게 아니라 14살 때부터 포목점 점원으로 일하며 열심히 빚을 갚고 사업을 일군 자수성가한 인물로서 인간적인 모습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가게 된다.

 

이 소설은 남과 북의 도시의 대조적인 분위기와 그곳을 대표하고 있는 마거릿과 손턴이라는 인물의 대비 그리고 노동자와 고용자의 입장의 대비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동력으로 작용하는데, 이 모든 대비는 인간적이고 용감하고 자존심이 센 마거릿 헤일이라는 여성 인물의 시선을 거쳐 전달된다.

마거릿은 처음 밀턴으로 이사 갔을 때 북부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사업가들을 장사꾼이라 낮춰보고 산업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 생각만 하며 인간적인 가치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점점 그 생각을 거두게 된다. 그것은 노동자인 히긴스 가족과 사업가인 손턴과 친분을 쌓으면서 생겨나게 되는 감정으로 마거릿은 그 두 계층의 중간지점에서 이들의 화해에 힘쓰는 인물로 자리잡는다.

급기야 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났을 때 마거릿은 손턴에게는 노동자들과 대화하라고 파업의 한가운데로 나가게 등을 떠밀고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하려 하자 손턴을 구해내면서 손턴과 노동자들 두 계층을 다 돕는 결과를 내며 절정을 맞는다.

마거릿은 좀 더 가까이에서 지켜보니 누구 한 계층의 편을 들 수 가 없는 사정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손턴이라는 인물은 그저 돈만 생각하는 악덕 사업가가 아니고 자신도 고생을 해 본 이상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양심적인 인물이었기에 마거릿이 손턴에게 영향을 미칠수록 손턴은 노동자들과 대화하는 진보적인 인물로 성장하기 까지 한다.

 

 

한편 이 소설의 중요한 중심축인 마거릿과 손턴의 로맨스는 계층 간의 갈등, 파업, 여러 인물들의 죽음이 펼쳐지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면서 페이지를 넘기는 힘으로 작용한다.

단단한 사랑으로 괴로워하는 손턴과 내가 손턴을 사랑할 리가 없는데 어쩌면 사랑하는 것도 같다며 갈등하는 마거릿의 내면 묘사는 로맨스 소설을 읽는 재미를 선사하기도 하는 것이다. 서로를 알아갈수록 나의 세계가 확장되고 인간적인 성장을 이루어 사랑의 결실을 맛본다는 아주 이상적인 결말로 이 이야기는 나아가고 있고 그것을 읽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소설이라면, 어쩌면 나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무도회 장면이 항상 나오고 조건 맞는 짝을 찾다가 결국 사랑을 택한다는 결말이 예상되곤 하는데 이 소설은 로맨스가 가미되어 있지만 사회적인 주제가 전면에 나와 있다는 점이 예상밖의 인상적인 점이었다.

작가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배어나오는 소설이기도 해서 이토록 사실적인 문제에 닿아있을 수 있는 것도 같다. 실제로 개스켈은 유니테리언 목사 남편과 함께 영국의 북부 산업도시 맨체스터에서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예쁜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에 가는 여성이 아니라 산업혁명의 한 가운데 뿌연 매연의 회색 도시에서 노동자 파업의 현장을 누비고 비참하게 죽은 노동자의 시체에 손수건을 덮어주는 용감한 여성 캐릭터 마거릿 헤일을 만나서 아주 즐거웠던 독서였다.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다른 소설들을 더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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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2-02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명작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문학과지성사 책으로 상당한 울림을 갖고 읽었습니다. 이이의 다른 작품들은 이 책 만한 울림을 가지지 않은 것으로.... ㅎㅎㅎ 그렇더라고요.

망고 2024-02-02 20:40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정말 명작이었어요! 당시의 사회상을 날카롭게 잘 포착하는데 쉽게 읽히고 로맨스도 좋고요ㅎㅎㅎ다른 작품들도 읽어보셨군요 저도 얼른 만나보고 싶어요 근데 이 책 만한 명작은 없었나 보네요 저는 폴스타프님의 평을 신뢰하니까 기대는 좀 접고 읽어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