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견뎌내. 왜냐하면 아무도 당신을 대신할 수 없고, 자살은 영영 미안하다고 말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뜻이니까. 아니, 그러면 안 돼. 사랑은 고집스럽게 삶에 매달린다는 뜻이야. 사랑은 그걸 받아들인다는 뜻이야. (...) 살아. 계속 살아. 난 당신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간호사라고 말하겠어. 그리고 이 따뜻한 수프 한 그릇을 주면서 마시라고 하겠어. (299-300쪽)
이 소설의 작가 루이스 어드리크가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이 문장이 아니었을까? “살아. 계속 살아.”
이 소설은 작가의 실제 결혼 생활에 대한 자전적인 성격이 짙은 소설이다. 루이스 어드리크는 마이클 도리스라는 유명 작가와 16년의 결혼 생활 후 이혼을 했다. 둘 다 미국 원주민 혈통이었고 작가이기도 해서 이상적인 커플이라고 부러움을 샀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은 결국 파경을 맞았고 이혼 직후 마이클 도리스는 모텔 방에서 수면제와 술을 마시고 자살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당신은 나를 소유하려고 해. 그리고 내 실수는 이거야. 당신을 사랑한 나머지 당신이 진짜로 나를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 (34쪽)
소설 내내 이 부부에게 일어나는 일은 바로 이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남편 길은 부인 아이린에 대한 집착과 질투, 폭력, 광기를 드러내며 부인을 소유하려고 하고 아이린은 그것에 진절머리가 나서 길과 이혼을 결심하지만 막상 또 길 앞에 서면 결심은 무너져 내리고 길이 자신을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답답한 상황이 소설 전반에 쫘악 깔려 있어서 굉장히 우울한데 이것이 작가의 현실 결혼 생활의 반영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참 뭐라 말하기가 쉽지가 않다.
작가 루이스 어드리크의 인생도 쉽지 않았구나 싶은 생각만 든다. 작품과 작가의 사생활은 따로 떼어 놓는 게 맞겠지만 이 소설 너무나 자전적인 소설인데 어디 그게 가능한가?
길은 다른 남자의 욕망 속에서 나를 원했어. 그는 그걸 알지도 못했지만, 사실이었어. 그래서 나를 더욱 관능적으로 그린 거야. 나의 형상으로 관객을 약 올린 거지. 길은 경쟁하고 있었어. 다른 남자들이 바라는 것을 소유하고 싶었던 거야. 물론 그건 남자가 품는 지극히 일반적인 소망이지만. 그 욕망의 방정식에서 나는 완전히 배제되어버렸어. (233쪽)
이렇게 잘 알면서 떠나지 못 하고 계속 받아주는 아이린. 아... 왜 그러는거야 대체ㅜㅜ
그나저나 이 소설 역시 문장이 참 좋다.
답답한 캐릭터들이 내내 답답한 짓을 하는데도 작가가 글을 너무 잘 써서 계속 읽고 싶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루이스 어드리크. 다른 작품들도 계속 읽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