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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임 머신 - 수치심이 탄생시킨 혐오 시대, 그 이면의 거대 산업 생태계
캐시 오닐 지음, 김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4월
평점 :
“수치심이 탄생시킨 혐오 시대, 그 이면의 거대 산업 생태계”라고 책 표지에 쓰여 있는데 이 문구가 바로 이 책의 주제를 요약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얼핏 생각하기로는 수치심이란 인간이 느끼는 부끄러워하는 개인적인 감정인데 이 수치심으로 사회와 산업이 연결되는 지점이 무엇일까 하고 책을 읽기 전까진 잘 와닿지 않았다.
쉽게 생각해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은 보고 지나칠 법한 미용관련 산업이 떠오르기도 한다. 유행하는 미의 기준에 미치지 못 하는 대다수의 여성들에게 그 상태를 부끄러워하도록 유도해서 화장품이나 성형수술, 다이어트 등을 파는 광고문구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의 초반은 저자가 직접 겪은 과체중 여성으로 살면서 느낀 수치심의 사례들이 나온다. 어느 날 저자가 쿠키 재료를 사러 식료품점에 갔다가 계산대에서 가게 주인이 “왜 이런 재료를 사는 거예요? 본인이 뚱뚱하다는 거 몰라요?” 라고 말해서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수치심에 빠져들었단다. 이 일화는 읽고 있는 나도 경악하게 했는데 직접 겪은 저자는 어떠했겠는가. 사람들이 왜 이렇게 무례한가!
아무튼 이런 식으로 일상적으로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마음은 내가 잘 못 살고 있다는 깊은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자학하게 한다. 이때 이들에게 다이어트 산업은 마수를 뻗어온다. 유사과학과 과대광고로 무장한 다이어트 산업은 수치심에 빠진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돈을 쓰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다이어트 산업에 돈을 쓴 사람들은 계속해서 다이어트에 실패하게 되어 있고 실패를 거듭할수록 더욱더 수치심을 느끼고 자기혐오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개인은 실패하는데 다이어트 산업은 점점 커진다. 누군가의 수치심은 이토록 돈이 된다.
빈곤과 약물중독 같은 사회 문제도 수치심 머신이 작동되면 국가가 나서서 고민하고 해결해야하는 부분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틈이 생긴다고 이 책은 지적하기도 한다.
빈곤과 약물 중독에 빠지게 된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들여다보기 보다는 그런 사람들은 개인이 게을러서, 노력을 안 해서, 의지가 약해서 저렇게 되는 거니까 세금을 써서 도울 필요 없는 사람들이라는 비난으로 인해 정작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은 수치심에 더욱 움츠리게 되고 자신의 처지에서 빠져나올 의지를 상실한다는 거다. 그러니 그들을 모욕해서 수치심이 들게 하기 보다는 조건 없는 현금 지급 같은 복지 정책으로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등 현 시대의 인터넷 소통 방식은 건수만 생기면 누군가를 조롱과 혐오를 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대표 수치심 머신이라는 점도 여러 사례를 들어 지적한다.
나도 어디선가 미국 월마트에서 찍힌 비만이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 모음 같은 사진들을 보면서 웃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들도 실존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인터넷으로 퍼진 조롱의 피해자라는 사실에 아차 싶었다. 다시는 이런 사진들을 유머로 소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한 순간의 실수를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유포해 수치심을 주고 조롱하는 이런 행위, 누군가를 혐오하는 발언 등은 페이스 북과 구글 같은 거대 기업이 부채질 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용자들을 붙잡는 수단으로 조롱과 혐오만큼 손쉬운 것도 없다. 그것들은 조회수가 높고 트래픽을 올리며 수익을 높이는 좋은 수단이므로 알고리즘은 혐오와 조롱으로 사람들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조롱과 혐오가 돈이 되는 시대다.
수치심을 불러 일으켜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경우도 이 책은 소개하고 있다. 수치심 머신이 올바르게 작동된 예랄까? 수치심 머신이 권력과 돈이 없는 약자에게 작동되는 지점은 경계해야 하지만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정치 지도자 같은 권력자에게 작동된다면 좋은 결과를 도출해 낼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이지리아의 독재자를 향한 시위대들은 그의 수치심을 자극해서 국민들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었다. 최근의 미투 운동도 수치심 머신이 긍정적으로 작동한 덕이라고 예시를 들고 있다. 코로나 팬더믹 시기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사람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지적도 안정적인 사회를 위해 필요한 행동이었다고 긍정하고 있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정의를 위한 긍정적인 수치심 유발이라는 저자의 주장 속에 그 기준이 살짝 모호하다는 점에서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인종차별을 해서 SNS로 엄청난 비난에 휩싸여서 결국 회사까지 잘린 백인 여성에 대해서는 그녀를 그렇게까지 몰고 간 점은 너무했다고 했던 저자가 J.K. 롤링에게는 가차없다. 트랜스젠더는 여성으로 인정할 수 없다 라고 한 SNS에서의 발언이 논란에 휩싸였는데 이 발언으로 그녀는 살해협박까지 받는 지독한 사이버 불링에 시달렸다고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J.K. 롤링은 돈 많고 발언 기회가 많은 문학계 거물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입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저자의 이중성은 고개가 갸웃해지는 지점이었다. 사실 이 부분은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정의감에 불타올라 몰려가서 유명인에게 악플을 다는 행위를 유명인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 해서 좀 꺼림칙했다. J.K. 롤링은 대중들이 나서서 따끔하게 수치심이 들게 혼을 내도 되는 존재란 말인가?
일반인과 유명인에게 작동하는 수치심 머신의 기준을 다르게 두는 건 과연 괜찮은 걸까?
자, 그래서 이 책의 결론은 뭘까?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무심코든 의도했든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그러니 서로의 자존감을 지켜주고 지키기 위해 수치심 머신이 작동하려고 할 때 경계하고 서로가 인간임을 잊지 말자라는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누구나 악플러가 될 수 있고 그것으로 인해 사회가 점점 병들어 갈 수 있으니 서로를 존중하자는 원론적인 말로 결론을 짓고 있다. 특히나 인셀 커뮤니티에 빠진 아들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결책은 그들을 보듬어 주고 늘 돌아올 가족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주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별다른 해결책이 없구나 싶어서 약간 맥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지금 현 시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로 모두가 소통하는 시대에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건전한 의견 제시가 아닌 공격성 가득한 혐오와 조롱이 스멀스멀 돋아나려고 할 때를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도록 자극하기도 했다. 아울러 사람들이 혐오와 조롱으로 열 올릴 때 뒤에서 씨익 웃으며 돈을 버는 거대기업이 있다는 지점에서도 생각할 거리가 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