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캬하~!)

 

 

 

 

 


~ TRACKS

(Side A)

1. 무인도

2. 아침

3. 너와 내가

4. 못난이

5. 꿈나라

6. 무인도 (Instrumental)

(Side B)

7. 하늘을 바라보소

8. 그리고

9. 아까시아 길

10. 헤어져 살면

11. 님은 먼곳에 (Instrumental) - 신중현

12. Summertime (Instrumental) - George Gershwin

 

LP 개수 : 1

러닝 타임 : 31:26 Mins

레이블 : 킹 레코드, 유니버셜 레코드 (1974) / 서라벌 레코드 (1980)

 

 

 

 

 

 

울트라 미라큘러스 하이퍼리얼리즘 현아 섹시 코만도

사이키델릭 소울 다이너마이트 여인

.....

 

 

 

 


가수 조용필이 <SBS 스페셜 : 대한민국 가수, 조용필> 에 등장해 인터뷰를 할 때, 나이 60을 훌쩍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오빠라고 불리는 기분이 어떻느냐는 식의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때 조용필의 대답이 재미있어서 지금도 기억을 하는데, 그는 '오빠' 라는 단어를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오빠라는 말은, 조용필을 대신하는 그런 말이죠. 강력한 힘이랄까요.. 그러니까, (팬들이) 믿는 구석이 있는 거죠."

 

 


실제로도 조용필은 빼어난 아티스트지만, 유독 부모 세대가 그를 언급할 때 흥분까지 하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는 것은 결국 그런 의미인 듯하다. 우리 시대에도 너희들처럼 아이돌이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과거를 이야기하다 보면 사람이 잠시나마 젊어져 해당 시기로 돌아가는 법이다. '오빠' 라는 말은 해당 가수를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사람을 바라보는 팬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어떤 찬란한 한 때와 함께 해 온 사람이 지금도 왕성히 활동할 때, 우린 그로부터 스스로의 젊음을 투영한다.

 

 


오빠 했으니 이제 '누님' 한 번 가 줘야지? 언제 한 번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김추자 누님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을 봤다. 김추자의 복귀 소식이 TV 좆선에서 나오는 바람에 신빙성의 문제를 은연 중에 갖고 있던 차에 그 사람은 댓글로 '요새 훨씬 젊은 애들이 춤 잘 추고 노래 잘 하고 엉덩이도 잘 흔드는데 다 늙어서 나오면 어쩌라고' 라는 투로 써 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본 어느 누군가가 '김추자 선생님이 이미 몇십년 전에 엉덩이 흔들고 춤 추는 걸로 쇼부 보신 분입니다' 라고 답을 했다. 쇼부는 외국어지만, 가끔 이런 식으로 자신의 말에 임팩트를 추기 위해 외국어를 무분별하게 활용하는 건 찬성이다. 쇼부. 끝은 없는 거야..

 

 

그렇다. '태초에' 라고 하면 오버 리액션이겠지만 거의 반 세기 이전의 한국 가요사에도 돌부처도 돌아 앉게 만든다는 육감적 매력을 뽐낸 가수가 있었다. 그녀가 바로 김추자이다. 사실 지금처럼 포화상태가 아니라서 그렇지, 어느 시대에든 가창력 만큼이나 춤도 인상적으로 추는 여가수들이 분명 있었다. 김완선, 인순이, 나미, 인순이가 멤버 중 한 명이었던 희자매, 이은하, 들고양이들 등등.. 그런데 디스코의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건 진짜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때까지도 활달히 명맥을 유지했던 기생들도 기본적으로 가무에 능했는데, 어째 해방 이후 일정 기간동안의 시대는 정말 상상이 가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이봉조 작곡가와 함께한 앨범인 <무인도 / 하늘을 바라보소>의 1번 트랙, '무인도'를 듣는다. 아! 김추자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공백이라 할 수 있는 그 시대에 우뚝 서 있는 사람이다. 당사자 말에 따르면 어디서 딱히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김추자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춘천 향토제'에 나가 '수심가'를 불러 배뱅이굿으로 유명한 이은관 명창의 호평을 받았으며 3위에 입상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탈춤도 잘 췄으며 기계 체조 선수로도 활동, 문화방송 합창단에서도 활동하기도 했다. 정확히 가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능력들은 어지간히 다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김추자는 1969년에 신중현의 스튜디오에 오디션을 보러 와서 발탁된다. 김추자와 신중현의 작업물들은 유명하다. 하지만 이 앨범은 이봉조와 함께한 것이기 때문에 뭐, 여기서 언급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싶다.

 

 

이봉조는 많은 사람들에게 KBS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알려져 있지만, 현미의 남편이기도 했고 그녀에게 그 유명한 '떠날 때는 말 없이', '밤안개' 등을, 정훈희에게는 '안개'를 작곡해 준 명 작곡가이다. 사생활이 다소 난잡한 면이 있었지만 그걸 잊어버리게 될 정도로 능력 있는 예술가임에는 분명하다.





* 이 중 '안개'는 이명세 감독의 2006년작인 <M>에서 본편에 핵심적인 사운드트랙 삽입곡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아마 그 작품을 본 관객들이라면 '아, 이 노래!' 할 텐데, 작품 속에서는 엔딩 타이틀에 보아가 부른 리메이크 버전이 나오기도 한다. 위의 영상에서는 보아의 버전이 먼저 나오고, 원곡 가수인 정훈희가 1967년에 부른 버전이 뒤에 나온다. (정훈희가 부른 1967년 원곡은 당시 공개됐던 김수용 감독의 <안개> 의 사운드트랙으로 이용된 바 있다. 윤정희가 정훈희의 목보컬을 립싱크하여 작품 속에서 부르거든.) * 

 

 

이봉조가 작곡한 음악들을 듣고 있으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단순히 트로트 장르의 곡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진정 어덜트 컨템포러리 장르의 음악들을 만들어서다. 그 중에서도 '안개'는 참 드문 형식이었다. 당장 프랑스 센 강을 배경으로 곡을 삽입해도 위화감이 없을만큼, 샹송의 정서가 느껴지는 멋진 곡이기 때문이다. 현미의 '밤안개'는 또 어떤가? 처음 부른 버전을 들어보면 그녀의 풍부한 성량에 맞춘 듯 빅 밴드 풍의 스윙 음악을 듣는 것 같다.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봉조는 어떻게 보면 한국의 1세대 재즈 / 블루스 아티스트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런 것들이 김추자와 만나면 어떤 작용을 일으키게 될까?

 

 

아니. 난 사실 김추자가 신중현과 작업을 했을 때에도 흔히 우리가 상상하는 육감적인 안무의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었을까 싶다. 끽해야 '거짓말이야', '늦기 전에' 라든가, 펄 시스터즈에게 준 곡을 그녀가 다시 부른 '커피 한 잔' 정도인 것 같다. 소울과 발라드 장르의 문법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록을 음악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신중현에게서 어떤 춤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쾌감 같은 것을 찾기는 힘들어 보여서였다. 그나마 영상으로 본 것 중에서 김추자가 신명나게 몸을 흔드는 모습을 보여준 건 전부 다른 작곡가가 만들어준 곡에서이기도 했고.

 

 

분명 당시 김추자의 무대를 찍은 영상이 존재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카이브 만들기에 취약한 한국이기 때문에 다 없어졌겠지만. 그녀가 신중현의 곡을 부르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은 것 중 현재의 우리가 볼 수 있는 곡은 '석양' 이나 '저무는 바닷가' 정도다. (당시 한국에서 TV 프로그램 녹화를 한 번 하고 나면, 그것을 담은 필름이나 테이프를 재활용하거나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아카이브를 형성할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런 것들의 값이 비쌌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는 음악계에서도 그랬는데, 하나의 마스터 테이프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보관할 생각을 하지 않고 다른 가수의 녹음을 위해 덮어 씌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버려지는 경우도 많았고. 아니면 검열에 걸려 소각되거나.)

 

 

대신 여기서 한 가지 확인할 수 있었던 게 있었는데, 김추자는 곡 템포의 빠르기와 정서에 맞춰 자신의 육감적인 모습을 뽐낼 줄 안다는 것이었다. 비음이 섞인 독특한 보컬, 뇌쇄적인 시선 처리와 감상자를 애닳게 하는 손동작 등.. 느린 곡에서도 할 건 다 하는 사람이었다. 김추자의 스펙트럼은 극단을 능숙하게 오가도록 구축되어 있었다. 아. 물론 신중현의 곡은 좋다. 김추자가 좋은 가수가 될 수 있었던 건 기본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좋은 곡들을 불렀던 이유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 강대철 감독의 1971년작, <내일의 팔도강산>에서 김추자의 등장분이 있다. 박정희 정권의 개발정책을 홍보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이 프로파간다 연작은 한 편마다 초호화 배우 캐스팅에 다른 유명예술인들의 카메오 출연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서 카메오인 김추자는 김희갑이 지은 '빗 속을 거닐며' (작품의 주연인 김희갑과는 동명이인.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작곡한 사람이기도 하다.) 를 신명나게 부른다.

 

화면 중앙에서 무려 윤정희와 신성일이 춤을 추는데, 정작 그들의 춤사위는 김추자의 기운에 가려져 회사 부장님과 사원의 느낌만 줄 뿐이다. * 

 

 

대신 하지만 그럴수록 궁금증이 생긴다. 이 여인이 빠른 템포에 신명나는 브라스 섹션의 지원을 받으면 어떤 시너지를 보여줄까? 이건 내가 빅 밴드 풍의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인지, 여하튼 아주 개인적인 취향으로 인해 생긴 궁금증이었다. 여기에 해답을 주는 곡이 이봉조와 만나서 작업한 이 앨범의 1번 트랙 '무인도', 2번 트랙 '아침' 이다. 확실히 김추자가 목에서 고음을 쭈욱 뻗을 때, 록 기타의 선율보다는 브라스가 어울려 보인다. 그릭 이런 창가를 부를 때 들을 수 있는 쭉 뻗는 김추자의 시원한 보컬은 '아침'에서 빛을 발한다. '무인도'가 하일라이트를 보여주기 위해 예열해야 했다면 이 곡은 그런 거 없다. 그냥 쭉 가는 거다. 햐아.. 정말 시원한데다 펑키하기까지 하다. 경박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무인도'는 대신 '아침' 에는 없는 거대한 스케일의 박력이 있다. 디스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심지어는 펑키한 기운도 느껴진다.

 

 

위에서 김추자의 비음 등 보컬에 관해서 잠시 말을 했지만, 당대의 평론가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보고 '미끈하게 빠지는 스타일이며, 비음이 섞여 경우에 따라서 매우 선정적으로 들린다' 고 언급한 바 있다. '무인도' , 김추자나 정훈희처럼 실력과 더불어 어떤 가수의 이미지를 규정짓는 강력한 어떤 정서가 없었으면 어땠을까? 이 곡은 결국 트로트가 되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나마 주현미, 이미자 등 전통 강호들이 소화하기엔 어째 좀 동떨어지는, 기괴하기만한 곡이 되었을 것 같다는 얘기다. 그건 사실 '무인도'가 트로트로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박력 넘치는 진행을 보여준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장르를 떠올리기 이전에 정말 이봉조가 김추자의 장악력을 믿고 거대한 규모의 곡을 지어줬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물론 신중현은 김추자에게 두성과 비음 등 전통 창법이 금기시하는 테크닉을 적극 구사하길 주문했고, 그 결과 그녀는 가장 반(反) 트로트적인 가수였다고 평가한 바 있다. 트로트를 꼭 '한국적인 음악' 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그 전에 국악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악은 웬만하면 두성을 쓰지 않는다. 신중현은 단순히 국악을 관습적으로 답습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미인'을 한국 전통 음악의 5음계를 이용해 만들었으므로, 한국적 음악 작법을 가미한 자신만의 음악성, 즉 '소울-사이키델릭' 의 소울을 김추자에게 심어줬기 때문이다.

 

 


A면의 1, 2번 트랙은 사실 '이봉조 앨범에서의 김추자'가 보여줄 수 있는 최정점이기에 이 앨범에 있어서는 핵심이자 곧 단점이 된다. 그래서 사실 <무인도 / 하늘을 바라보소>가 명반이라 불린다면, 그것은 그 앨범 자체의 완성도가 뛰어나다기 보다는, 어떤 가수와 더불어 시대를 대표하는 '명곡' 이 수록된 것이 이유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인지, 이 앨범에서 '무인도'와 '아침' 에서 느낀 전율을 다른 곡들에서 느끼지 못했던 건 결국 그 두 곡이 신중현에게 음악적인 무언가를 받았던 '당시의 김추자' 의 강점을 어떻게 보니 잘 맞고, 또 잘 드러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심하게 말하면 '어떻게 하다 보니 잘 맞은' 거랄까?

 

 

 

위에서 언급한대로, 이후에는 이상하게도 여전히 김추자가 노래를 부르지만 앞의 두 곡만한 개성이 묻어나오지 않는다. 밋밋하다. 나름대로 '무인도'와 '아침'에 가깝게 들었던 곡들은 A면의 5번 트랙인 '못난이'와, 내가 CD 트랙처럼 표기하여 8번 트랙이라 했지만, LP 식으로 따진다면 B면의 2번 트랙에 해당되는 '그리고' 정도다. 왜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이봉조의 관현악 편성은 여전히 빅 밴드 특유의 소란스러움이 있다. 쉴새없이 쾅쾅거리는, 동시에 현란한 키보드 연주는 압권이다. 그러나 곡 자체가 '무인도'와 '아침' 만큼의 업 템포가 아니라 발라드에 가깝다. 이런 식의 느릿느릿한 리듬이라면 김추자는 여전히 신중현의 곡에 여전히 맞추어져 있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끊임없이 반복 연주되는 긴 분량의 곡에 맞춰 몽환적인 목소리와 바이브레이션을 해야 했던 것. 그게 '김추자 다운 것' 이라고 규정할 수 있었지만, 개인이 노력을 해도 다른 작곡가와 작업할 때는 그에 맞춰 바꿀 수도 있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이 당시의 김추자는 그것을 100% 성공적으로 해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에서 들려오는 허밍 부분이 사이키델릭한 감흥을 다시 가져다 줬기에 들을만 했던 것일까.. 가끔 생각해보는 문제다.

 

 


물론 내 취향에 맞지 않은 곡들이 있긴 하다. 예컨대 A면의 3번 트랙인 '너와 내가' 라든가,  (나는 9번 트랙이라고 표기했지만) B면의 3번 트랙인 '아까시아 길' 은 곡이 너무 고루하게 들려 솔직히 시간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생각 뿐이다. 그러나 제일 처음 들리는 투 톱만은 못하더라도 이 앨범의 곡들은 대체적으로 다 들을만하다. 단지 김추자와 이봉조의 만남이 이 앨범에서 어째 엇박자를 일으킨 것 같다. 그래도, 옷 두 벌은 건졌으니 된 거겠지.

 

 


헌데 독특하게도 김추자의 이름을 뺐을 때 남는 게 '이봉조 작곡집' 이라 그런지, 각 면의 마지막 즈음에 배치된 그의 연주곡이 예상치 못한 귀의 즐거움을 주는 순간이 있다. 이봉조는 당시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한국에서 언제나 색소폰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으로 거론되곤 했다. 하지만 자신의 곡인 '무인도', 신중현의 곡인 '님은 먼곳에', 조지 거쉬인이 쓴 오페라, <포기와 베스>의 수록곡인 'Summertime' 을 트랙 리스트에 올려놓은 센스 때문인지 테크니션의 노련함에 관한 기대만큼, 아티스트로서의 작품을 접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예상 외로 '무인도'의 경음악 연주 버전은 기존의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압권은 '님은 먼 곳에'와 'Summertime' 의 커버다.

 

 


사실 이 곡은 김추자가 부른 버전 빼면 조관우의 리메이크만 생각나는 정도다. 부른 사람이 몇몇 더 되는 걸로 안다. 원래 '님은 먼 곳에'는 패티 김을 위한 곡이었다. 그러나 당시 패티 김은 노래를 거절했고, 이걸 김추자가 부른 것이었다. 김추자가 부른 버전이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고 난 뒤, 패티 김이 결국 1984년에 이 곡을 직접 부르게 된다. 자기도 노래 놓친 게 결국 아까웠던 거지. 하지만 대부분은 1995년에 조관우가 부른 리메이크 버전을 기억하고 있다. 그가 정말 잘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봉조는 여기서 김추자 이후, 패티 김과 조관우, 혹은 장사익.. 그 사이에서 주목할만한 결과물을 이뤄낸다. 나는 '님은 먼 곳에'를 이런 식으로 리메이크 한 걸 처음 들어봤다. 이 곡은 누가 부르든, 어떤 성별을 가진 사람이 부르든 원곡이 가진 쓸쓸함과 비극의 정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봉조는 '님은 먼 곳에' 를 위해 류복성이 칠 법한 봉고를 배치 시키고, 피아노를 우아함이 아니라 철저한 리듬 악기로서의 정체성을 이용한다.

 


결과적으로, 신명나는 재즈의 분위기도 가득하지만 영화음악 분위기도 좀 난다. 가령 예를 들자면, 최경연 음악평론가는 이봉조의 '님은 먼 곳에' 커버를 두고 '007 영화의 사운드트랙 같다' 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007 시리즈에서 이런 리듬을 듣기는 힘들다. 그보다는 제임스 코번이 주연한 007 시리즈의 아류작인 <전격 플린트 고고 작전>, <전격 플린트 특공 작전>을 연상케 하는 측면이 있다. 그 작품의 음악을 제리 골드스미스가 작곡했는데, 딱 이런 음악적 정취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혹은 낭만기를 조금 뺀 미셸 르그랑의 음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제리 골드스미스의 <전격 플린트 특공작전> 사운드트랙 중에서 *

 



원곡을 듣지 않고 먼저 접할 경우, 오해할 수 있을 정도로 이봉조는 이렇게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이것은 앨범의 최종 트랙에 해당하는 B면의 6번 트랙, 'Summertime' 에도 해당된다. 어찌 보면 '님은 먼 곳에'가 이 곡과 비슷한 과가 아닐까 싶다. 원 오페라인 <포기와 베스>의 등장인물인 클라라가 무더운 여름에 한가로운 삶을 꿈꾸며 단독으로 부르는 곡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가 그런 삶을 누릴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불어 결과적으로 '현재 없는 것' 을 그리워 한다는 점에서 '님은 먼 곳에' 와의 유사성이 있다. 이봉조는 독특하게 그 곡에 활기를 더 했고, 'Summertime' 에는 묘한 관능을 부여한다. 해당 곡들이 원래 어땠었는지를 생각한다면 배신감, 몰이해 등으로 격하할 수도 있겠지만 이봉조는 그저 장르 문법에 충실했을 뿐이다. 'Summertime' 에서 이봉조의 색소폰 연주는 그가 악기를 불고 있는 마우스 피스 사이에 있을 타액까지 연상될 정도로 끈적끈적하다. 더불어 매혹적이기도 하다. 거기엔 마치 애초에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민족적 문화를 향하여 어떻게든 정서적으로 다가가려는 사람의 노력이 있다.

 

 


그에게 끈적한 색소폰의 선율은 흑인음악과, 그것이 나올 수 있었던 민족 자체에 대한 음악가로서의 헌사나 다름없다. 아무리 이해하려 한들 결국 표피적인 선에서 그칠 것을 알기에, 그는 절륜한 기교로 자신의 성취와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다. 그 점이 기존과 다른 음악적 이미지를 새로이 이끌어 냈더라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 이유가 아닌가 한다. 오만하지 않은 음악인 셈이다.

 

 


작곡가는 가수와 작업을 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인장을 분명하게 남기고 싶어한다. 결과는 좀 기묘한 형태가 되고 말았다. 가수에게 평생동안 언급될 명곡을 두 개나 선사해 줬지만 정작 다른 곡들이 그만큼의 힘이 없으니 말이다. 헌데 작곡가가 나서서 직접 연주한 두 개의 커버곡이 앨범의 두 타이틀곡에 버금가는 음악적 감흥을 청자에게 남긴다. 이럴 때 '작곡가' 라는 사람의 위치는 결국 어디에 머물러 있어야 하나 같은 의문이 생긴다. 의도적인 건 아니겠지만 아홉곡을 부른 김추자의 입장에서 그녀가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는 반면, '자신이 직접 참여하는 무대' 에서의 이봉조는 세 곡 중 두 곡에서 실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조그맣게 '이봉조 작곡집' 이라 되어 있긴 하지만 '김추자'의 이름이 크게 박힌 데에서 결국 어느 쪽에 좀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해야 했는지는 청자들도 대개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으리라 본다.

 

 

이런 점에서 <무인도 / 하늘을 바라보소>를 두고 '명반'이라 하기가 좀 그렇다. 명반은 개별의 곡이 다르지만 비슷하게 유기성을 가지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모든 트랙들을 마냥 들을만 할 때 해당 호칭을 붙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무인도 / 하늘을 바라보소>는 '명반'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명곡이 수록된 앨범' 이라고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김추자의 디스코그래피에서 브라스 섹션과 어울리는 명곡이 몇 개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강렬한 커버 디자인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분명 이 앨범은 평가 받을만 하다. 나는 김추자란 이름을 부르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시각적 이미지가 저것이니까 말이다. 이 앨범은 합이 좀 어긋났지만 그래도 그녀의 이름이 손상될 정도는 아니다.

 

 

김추자는 젠 체 하며 자빠졌던 한국의 문화계에서 그들의 위선을 벗기고 야성을 일깨운 선구자였다. 그 야성이 사람을 억압하고 천년만년 정치해먹는 경우의 천박함과는 다르다. 김추자는 야성의 예술을 보여준 가수다. 마녀다. 말레피센트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무조건적인 박애주의자 성녀만을 원했던 당시의 한국에서 마녀가 살기란 여간 퍽퍽한 환경이 아닐 수 없다. 김추자 자신의 말로는 절대 은퇴가 아니라 공백기가 길어졌을 뿐이라 하지만, 광풍 수준으로 휘몰아치며 시대를 풍미했던 이 말레피센트는 놀라울 정도로 소리 소문 없이 일반적인 사람의 삶 속으로 침참해 들어갔다. 이봉조 역시 1987년에 타계한다. 곡은 여전히 사랑 받는다. 곡은 영원히 살아 있으니, 이제 나는 현재 살아 있는 사람을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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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노래는 몸에서 나와요. 머리에서 생각해서 나오는 게 아니고, 느낌 그대로 나오는 거죠. 사이키델릭이나 소울 창법도 신중현 선생님께 배웠다기 보다는 생래적인 것으로 봐야겠죠."

 

- 2007년 6월, <월간 신동아>와의 전화 인터뷰 중에 자신의 노래 스타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김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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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 김추자 님은 1981년, 동아대 정치학과 교수인 박경수 님과 결혼한 뒤에 1986년에 잠시 콘서트를 한 것 빼고는 철저하게 언론과의 접촉을 거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부터 슬슬 복귀설이 나돌기 시작했죠. 거의 매 해 빠지지 않고 나왔던 것 같아요.

 

 


흔치 않게 전화로 인터뷰를 했던 <신동아> 2007년 6월호를 스크랩해서 가지고 있는데, 사실 이 리뷰를 처음 끄적이기 시작한 올 해 1월 1일에도 복귀 소리가 나왔고, 그거 보면서 그냥 그러려니 했거든요. 그런데 4월 5일이 되어 다 쓰고 나니 정말 복귀하는가 봅니다. 이번 달이 그 달이죠.

 

 


<신동아>의 인터뷰에서 김추자 님은 복귀를 위해서라도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한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 때부터 7년이 지났는데, 이제 김추자 님의 연세도 예순 셋이 됐습니다. 일흔 셋 되어도 목소리 한결같은 이미자 님도 있고, 동년배의 조용필 님도 여전하니 기대는 됩니다만 김추자라는 사람이 복귀설만 나돌하게 하고 그걸로 거의 10년 넘게 끌어온 걸 생각하면, 사실 신뢰를 상당히 잃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제게 김추자란 이름은 그 분이 부른 노래 제목과 유사하게 '거짓말장이' 일 뿐이죠. 기대보다는, 정말 어떻게 나오려고 그러나 한 번 매섭게 지켜봐야 겠습니다. 소문만 나돌게 한 벌이에요, 벌. 신보가 발매되면 그것에 관해서도 할 말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p.s.2 - 방송사 어딘가에 분명 아카이브가 있을 거라 믿습니다만, 현재 제가 볼 수 있는 '김추자 님이 '무인도'를 부르는 모습'은 앨범 발매 당시가 아니라 1986년에 잠시 콘서트를 하러 방송 출연을 했을 때 입니다. 희한하겓 앨범 발매 당시에 '무인도'를 부르는 모습은 정훈희 님의 모습만이 있죠.

 

 


여기에 사연이 있다고 해요. 이봉조 님이 1975년에 '칠레 국제 가요제' 에 초청을 받습니다. 이른바 국가대표로 초청 받은 거죠. 국가가 칠레이니까 '무인도'를 에스파냐 어로 편곡해서 부르기로 했지요. 요즘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당시는 더 흔치 않았던 '인터내셔널 버전' 인 것입니다. 이러려면 원곡 부른 가수를 데려가야 했는데, 이 때 현미 님이 이봉조 + 김추자 조합의 해외여행을 극구 반대를 했다고 하는군요. 예. '밤안개' 부른 그 현미입니다. 이봉조 님의 아내 분이었죠.

 

 


김추자라는 가수가 섹시 컨셉을 당시에 드물게 고수하며 인기를 끄는 가수였고, 그에 걸맞게 남자관계가 문란하다, 건방지다 등등의 많은 루머가 있었어요. 그 중 정말 많은 것들이 루머로 밝혀지긴 했지만...여튼 가정을 지키려는 노력으로 결국 칠레 가요제에 이봉조 님과 같이 간 사람은 엉뚱하게도 정훈희 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에 한 번 남을까 말까한 칠레 가요제의 '무인도'에서 우리는 김추자 대신 정훈희를 봤죠. 그리고 김추자의 공백기가 길어질수록 TV에서 '무인도'를 열창하는 사람 역시 정훈희 님이었습니다. 충분히 부를 수 있겠지만, 조금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봉조와 현미 부부 역시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음악적 동지로서는 평생을 갔지만 사랑은 아니었죠. 그리고 현미 님이 걱정했던 건 '김추자와 함께 가서' 라기 보다는 '그녀와 같이 간 사람이 이봉조라서' 였던 것 같습니다. 그와 결혼하고 나서 숨겨진 자식이 두 명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 받았다는 일화는 유명하죠. 물론 그렇게 생각한다면 가수를 보내지 않는게 더 명답일 것 같습니다만.

 

 


p.s.3 - 올 2월에 이봉조 님의 유품들이 도난 당했다고 합니다. 현미 님이 금고에다 남편의 유품들을 넣어두고 관리해 왔는데 절도범이 그걸 다 때려 부수고 가져 갔다는군요. 도난당한 물품 중에는 1974년에 쓴 '무인도'의 악보도 있다는군요. 이 놈의 나라는 도대체가 문화유산을 가만 놔두질 않네요.

 

 


p.s.4 - 이 앨범은 LP만 있을 뿐, CD로 복각되거나 발매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LP 소장하시는 분의 집에 갔다가 이걸 192kbps 로 mp3로만 리핑을 해 와 듣는 식으로 소장하고 있는데, ...당시에는 용량만을 생각하다 보니 원체 무지해서 비트레이트를 그 모양으로.. 뭐, 지금 생각해보니 헌 책방 돌면서 이 앨범의 LP를 구해야 겠다는 생각 뿐이죠.

 






* 아침 *

작사 : 이종택 + 작곡 : 이봉조


창문을 열어라 가슴을 펴라

하늘을 보아라 먼산을 보아라

찬란한 하루가 시작이 된다.

눈부신 행운의 아침이다.

세상은 즐겁게 인생은 신나게


찬란한 하루가 시작이 된다.

눈부신 행운의 아침이다.

세상은 즐겁게 인생은 신나게

인생은 신나게 





* 무인도 *

작사 : 이종택 + 작곡 : 이봉조


파도여 슬퍼말아라

파도여 춤을 추어라

끝없는 몸부림에

파도여 파도여 서러워마라


솟아라 태양아 어둠을 헤치고

찬란한 고독을 노래하라

빛나라 별들아 캄캄한 밤에도

영원한 침묵을 비춰다오

불어라 바람아

드높아라 파도여 파도여





* 1986년에 방송에서 콘서트를 하기 위해 잠시 출연했을 때의 모습입니다. 

= MBC 방송국의 <화요일에 만나요> 출연분이죠.

첫 딸을 출산하고 나서 출연했다고 하는데, 

최규성 음악평론가는 '비만해진 그녀의 모습에 팬들이 실망했다' 고 감정을 드러냈지만, 

뭐.. 노래는 이 때도 잘 했던 거 같아요. 


사실 이 때의 무대는 개인적으로 '청개구리 사랑' 이 아주 좋았습니다. 

여전히 춤 되고 노래 된다는 걸 보여준다고나 할까요? 

애 낳은 아주머니가 스텝 제대로 밟아주시더라구요. 그래서 '무인도' 말고 이거 넣었습니다. *




* 1975년 '칠레 국제 가요제' 에 출전한 정훈희 님의 '무인도' 커버. 

이봉조 님이 지휘하다 말고 중반에 갑자기 색소폰 연주도 하며, 

정윤희 님이 돌고래 초음파를 발사하는 명 무대입니다.


참고로 이 때 '무인도'가 국제 가요제 결승에 진출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곡은 3위 본상, 정훈희 님은 최고가수상의 영예를 안게 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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