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철폐정책의 기원과 발자취 - 차별의 벽을 넘어 평등의 세계로
테리 H. 앤더슨 지음, 염철현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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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든 생각은 "왜 이런 책이 있는 걸 몰랐지?"였고, 곧이어 든 생각은 "왜 이렇게 비싸?"였다.

주위의 많은 이들은 하드커버를 싫어한다. 하드커버는 '이책은 비싼 책임'이라는 알림장 같아서. 그렇지만 책의 두께나 저자의 명성이 아니라 책을 쓰면서 들였을 노력으로 값을 매긴다면 이 책은 그렇게 비싼 책은 아닌 것 같다. 번역도 깔끔하다.

우리사회의 '차별철폐'에 관심있는 사람이거나 관련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은 역자가 서문에서 쓴 것처럼 "실증적인 사실과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의) 차별철폐정책(affirmative action)에 대한 시작과 전개과정,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 시기마다 등장하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연방의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주정부와 관계기관, 언론, 학계, 여러 관련 단체와 기관들의 견해와 주장들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자세로 제시해 그 시대의 주역들이 차별철폐정책을 정의내리게 했다."

나는 정책이 입법화되는 과정도 그렇지만, 일단 법률이 만들어지면 사람들이 저항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깊게 하는데 그 법률을 활용하는 방식에 더 눈이 갔다. 법을 만드는 것은 그래서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싸움의 시작일 뿐이었다.

각 시기마다 차별철폐정책을 전진시키거나 후퇴시킨 사회적, 경제적 배경이 잘 설명되어 있기는 하지만, 초점은 정치적 배경에 맞춰져 있다. 그 때문인지 저자가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간에 정책 결정에서 권력층의 선의 혹은 악의가 너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잡힌 자세"도 가끔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예를 들면 전쟁에 나가 죽을 병사의 부족이 군대내의 흑백통합을, 호황기의 노동력 부족이 작업장 내의 흑백통합을 밀어붙이는 압력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저자의 그 균형잡힌, 그래서 애매하거나 냉랭한 서술이 그렇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의 '말'을 통해 책을 보는 사람이 알아서 판단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두는 이 냉랭함은 이 책의 매력이기도 하다. 

차별철폐정책에 관련된 풍부한 사실을 왼쪽으로 좀더 살짝 꺽어서 해석하고 싶은 사람이 이 책을 본다면 각 시기별로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를 참고로 읽어나가면 좋겠다. 두 책을 합쳐서 읽고 차별철폐정책의 역사를 이해하면 그야말로 '딱'이다. 동일한 사건과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를 느껴보는 것도 재미있다.

부실한 '차별금지법'의 국회 통과와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참에 이 책을 읽고 있으니 마음이 무겁다. 어떤 법률이 존재하는지, 어떤 대통령과 어떤 당이 집권하는지가 사회의 소수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책이 너무 잘 보여주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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