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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평점 :
원문 위치:
http://blog.cyworld.com/char-babe/3963556
일러스트 출처: Vegetarians in Paradise
이번 후기는 내용의 소개 보다 책을 통해 생각나고 얻은 이야기를 담겠다.
런던만 아니다면 영국의 대부분 지역은 자연과 매우 가깝다. 해리포터 (Harry Potter)가 책에서 사는 머글 (muggle) 동네가 바로 Char의 고향인 써리(Surrey)라는 곳인데, 메리 포핀스 (Mary Poppins)나 내니 맥피 (Nanny McPhee)가 당장 굴뚝 타고 내려 올 것 같은, 단독주택이 길게 늘어진 조용한 동네다. 그래서 큰 행운이겠지만, 어렸을 적 언제나 앞마당과 뒷마당에 정원이 있었다. 앞 마당에는 깻잎과 토마토를 심어 먹고 뒷마당에는 사과나무와 서양배나무가 있었다. 가끔 동생과 함께 어둑어둑한 옆집 독거노인 로저 할아버지께 놀러가 할아버지 뒷정원에 심어진 배추와 감자 등 각종 채소를 구경하곤 했다.
도심이라도 무언가를 가꾸고 키우고, 주말에라도 밭을 찾아가는 어린시절이라면 소중한 것을 배운다. 모든 것은 노력에 따라 보상이 오고, 보상이 없더라도 다시 몇 번이고 씨를 뿌리면 언젠간 밭은 배를 채워준다. 조용히 말 없이 땀 흘려도 좋은 일이 생기고, 남의 눈치나 자신의 눈치 볼 것 없이 식물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행복은 세상 그 어떤 것 보다도 정직하고 따뜻하다. 그 단순함에 마음의 평온을 얻고, 아이들의 경우 반려동물을 통해 배우는 것과는 또 다른 환경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 생긴다. 이 에세이집은 워낙 헤르만 헤세가 정원 가꾸기와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써서 이를 모은 모음집 같은 것이다. 나름 글이 이어지는 느낌으로 나열됐지만 그냥 그의 여러 생각을 담은 것 같이 편하게 읽을 수 있고- 헤르만 헤세가 정원을 통해 배운 것들을 알아볼 수 있는 책이다.
헤르만 헤세의 정원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 (Knulp, 1915)'는 '데미안 (Demian, 1919)' 전에 낸 책으로 헤세가 바라보는 정원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헤세에게 정원은 "동심의 행복"을 우선 의미한다. 이는 성인이 되어 순수함을 잃기 전 가장 조화로운 모습이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 중 1900-1920 사이 출판작의 주인공은 대부분 첫사랑의 순수함처럼 자신이 잃은 어린 시절 정원으로 돌아가려 한다. 크눌프만 보아도 어릴 적 정원을 바라보며 꽃 한 송이의 아름다움은 그 어떤 경험과도 맞바꿀 수 없다 생각한다. 이렇듯 그는 작품생활에도 정원을 빼놓을 수 없었다. 헤세는 가이엔호펜 (Gaienhofen)에서 살다 1907년에 가족과 함께 자기 집을 이곳에서 가지게되어 정원을 가꾸었다. 1912년까지 이곳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맨손과 맨땅으로 정원을 완성하고 가꾼다. 이후 본고장을 떠나 베른(Bern)과 몬타뇰라(Montagnola)에서도 그는 정원을 가꾸는 취미를 가졌었다.
- 목차 -
1. 게으른 정원사의 즐거움
즐거운 정원/ 보덴 호숫가에서/ 잃어버린 주머니칼/ 잠 못 이루는 밤들/ 자연의 복원
2. 작지만 반가운 손님들을 초대하기
여름목련나무와 난쟁이 분재/ 유년의 정원/ 작은 기쁨/ 아름다운 세계에서 날아온 낯선 손님/ 도시로의 나들이/ 여름 편지
3. 다시, 소중한 것들이 말을 건다
계절의 유희/ 불꽃놀이/ 구름 낀 하늘/ 오래된 나무의 죽음을 슬퍼하며
4. 만약 내가 고독 속에만 머물러 있었더라면
땅으로부터의 행복/ 나무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기/ 내면의 부유함/ 나의 오랜 친구였던 복숭아나무/ 보덴 호수와 작별하며/ 정원에서 보낸 시간
해설_
전쟁과 폭력, 비인간화에 대항하는 헤세의 정원
요즘 팝적인 이야기를 자주 섞어 포스트 하다 보니 역시 빼먹을 수 없는 정원 여담 +_+!!
▲ '아메리칸 대드 (American Dad!, 2005-)' 시즌2, Ep. 1 "Camp Refoogee" 中
스티브는 엄마 프랜신과 금붕어 클라우스랑 함께 밭을 일구는 장면.
덥고 찍찍한 여름을 캠프에서 보내기 싫다는 아들, 스티브를 설득하려는 아빠, 스탠.
대략 이런 대화가 등장함:
뉘앙스 전달 위해 직역 아닌 의역.
프랜신: 스탠, 아들이 캠프 가기 싫다자나요!
스탠: 하지만 난 여름마다 캠프에 갔소. 인생 최고의 시간을 보냈지. 아들에게 같은 경험을 주고파.
게다가 정원 가꾸는 건 게이(gay)해.
프랜신: 제임스 코번 (영화배우, James Coburn)도 정원 가꿨거든?!
스탠: 닥쳐! 코번에 대한 당신 거짓말 이제 지긋지긋해! (실제 대사: I'm sick of your lies about Coburn!)
꽤 마쵸한 느낌으로 많은 남성들 (+ 여성들)의 우상인 명배우 코번이 정원을 가꿨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스탠의 귀엽고 재미난 분노 씬이다.
이토록 우연히 남자들은 정원을 가꾸고 있고 이것이 심신의 안정을 부른다는 걸 머리가 알면서도 여태 행동으로 못 옮겼음이 신기한- 그러한 취미다운 취미다.
Char에게는 "취미 (hobby, pasttime)"라는 단어가 바로 정원 가꾸기에서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은 이미지다.
▲ 정원을 가꾸는 헤르만 헤세의 모습.
우리가 보는 꽃 vs. 정원사가 보는 자연
"비록 정원은 아직 황량해 보이지만, 거기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또 다른 세상이 보인다."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16쪽
일주일에 5회 집 앞 올림픽 공원으로 향한다. 40분에서 1시간 정도 여섯 살 먹은 믹스견 엘리노어와 함께 산보를 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요즘 가장 자주 찾는 곳은, 공원 안 깊숙이 몽촌토성 산책로 사이에 낀 정원을 찾는 것이다. 그곳에는 1년 내내 예쁜 꽃과 식물을 심어두고 그 앞에 이름이 적혀있다. 발 밑에는 길 잃지 말라고 돌길이 있지만 거의 잔디에 가려져 우리는 자유롭게 이곳 저곳을 누빈다. 아이들이 자주 오지 않는 이곳에는 큼직한 DSLR를 목에 걸고, 또는 자그만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쥐고 오신 어르신들이 많다. 그래서 가끔은 겁 많아 모두에게 도망치기 바쁜 엘리의 목줄도 풀어주고 둘이서 같은 작은 정원을 빙글빙글 돌면서 꽃구경을 한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나비들이 가득해 NDS 게임‘동물의 숲 (Animal Crossing)’시리즈가 생각나는 느낌의 아기자기한 정원이다.
▲ 화가로도 유명했던 헤르만 헤세의 여러 그림이 깨알 같다
"이곳에 있으면 무엇이 화려하고 과장되고 오만한 것인지, 무엇이 즐거우면서 신선하며 창조적인지 분명하게 알게 된다."-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ml:namespace prefix = "o" />
-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서문 중
안심할 수 없어
도시에서 살면 마음이 자주 흔들린다. 강한 충격이 주어지고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책상 밑이나 복도로 대피한다고 그것을 피할 수 없다. 끈기를 가지고 버티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꽤 오랜 시간을 흔들리며 안심할 수 없는 불안감에 휩쓸린다. 아무 일이 없었는데, 많은 일이 벌어지고 벌어질 거 같이 매니악의 증세를 보인다. 주로 외부의 충격 때문에 흔들린 마음이다. 이럴 때면 위와 같이 헤르멘 헤세의 정원을 생각한다. 그곳에서는 아름다운 것과 과장된 것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흔히 눈이 흐려진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맞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특별함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단순한 물건이나 명칭에 혹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인근 공원이라도 찾아 나간다. 정원사가 보는 자연을 보지 못할지언정 꽃이라도 감상하며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정원 가꾸기를 통해 SIMPLE한 LIFE 꿈꾸기
단순노동을 무척 좋아한다. 온라인 쪽지함에 쌓인 수천 통의 쪽지를 한 번에 앉아 하나씩 클릭해 지우는 일, 장애인 시설에서 3시간씩 봉투에 풀 붙이는 일 또는 쪼그리고 앉아 한겨울에 손이 얼얼할 때까지 어린이 집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것 말이다.
지금은 집에서 꽤 큰 비중의 집안일을 도맡고 있다. 그래 봤자 자잘한 것들이지만 매일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빨래를 널고 걷고 (이것은 분담함), 설거지를 하고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청소기를 돌린다. 그러면 하루 반나절이 지난다. 적은 일을 매일 하고도 이리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을 호텔급으로 하는 엄마는 강한 게 아니다. 원더우먼이다.
가끔 주변에서 집안일이나 일상에 대한 부지런함과 행동력을 보고 놀란다. 하지만 함께 사는 집에 성인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것의 중요성을 느껴 하는 것일 뿐이고, 가족의 스트레스가 그만큼 반감되는 걸 발견해 오히려 나중에는 본인이 편한 일이라는 걸 알아서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남들이 귀찮아 하는 단순노동을 Char는 했을 때 치유 받는 느낌이 들어 좋아하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반복적이고 생각 없어 보이는 이 일들이 생활에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건 아마도 청소하는 시간이 아까워 그 시간에 다른 걸 하려는 사람들에겐 미친 생각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무언가를 정리하고 닦고, 반복적인 것을 힘을 들여 하는 것에 작은 기쁨을 느낀다.
특히 심적인 문제나 일상생활에 우울을 겪는 사람들에겐 “단순한 작업을 매일 반복하세요”라고 조언해본다. 아침에 일어나 똑같은 일을 같은 방식으로 진행해 어느 정도의 정해진 계획 (routine)이 생기면 자신의 가치가 오히려 높아지고 스스로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진다. 이는 절대 매일 오락하기,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기, 늘어져 있기, 12시간 자기와 같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보통 성인은 사회인, 가족구성원 등 생활에서 자신이 채워야 할 각종 역할을 통해 이러한 반복을 매일 경험한다. 그래서 결국 반복의 삶도 무언가에 도움이 되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수확이 가능한 일을 하라는 것이다. 취미도 그러한 것이 물론 가능한데- 그 중 가장 기본이자 어려운 게 정원 가꾸기일 것이다. 단순하다 하여 하찮은 일은 아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하고 고귀한 작업은 쓰레기 처분과 지저분한 것을 위생적으로 만드는 청소라 생각한다.
단순작업 속 사람의 깊이
강남 사무실 사이 골목에 담배를 피며 부하직원을 앞에 세워두고 위엄 있는 척 굳은 얼굴을 한 남자는 진부한 사고방식만큼 반복적인 일상을 살고 있지만 단순한 작업은 더 이상 하고 있지 않다. 인간의 반복적일 수 밖에 없는 삶에서 그러한 단순작업을 빼면 큰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작업이란 부지런함과 정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반면 건물에서 방금 걸어 나온 청소 아주머니는 매일 새벽 이른 기상과 같은 장소들을 꼼꼼하게 거쳐 청소를 진행한다. 단순반복의 작업과, 청결의 작업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이는 위대하다. 청소 아주머니는 분명 더 큰 일을 한다 생각한다. 퇴근 후 집에서 가족을 위해 열심히 정성까지 쏟고 여러 방면 (사회에 도움이 되고, 세상에 가장 필요한 건강한 아이들을 키운다)에서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다. 반면 여전히 굳은 얼굴로 부하직원에게 불필요하게 불편한 기를 내뿜고 있어 이 아저씨의 정체는 모르겠다.
돌아가시기 전 매우 좋아했던 할아버지께서는 아침마다 일어나서 세차를 하셨다. 커다란 4WD를 타고 다니셨는데, 멀리 있는 국제학교로 등교하는 Char를 위해 데려다 주시던 시절이었다. 탄다는 표현 보다 탑승한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중학생 Char에겐 다소 크다 느껴지는 말 한 마리를 올라타는 느낌이 들곤 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단순작업을 병행하셨다. 책을 읽으시다 화분을 키우셨고 바둑을 두시다가 동네 산책을 나가셨고 서점에 가셨다가 세차를 하셨다. 무척 존경하는 외할아버지께서는 일본 기업에 평생 근무 하시다 지금은 퇴직을 하셨지만 노동과 일에 대한 열정이 무척 많으시다. 엄청난 고학력자신 외할아버지께서 단순한 것은 상당한 부지런함을 요구한다. 부지런함은 영혼의 비료가 된다. 정원을 가꾸는 것은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마치 매일 흙을 파면서 주문을 외우듯 그 반복 속에서 위대한 무언가를 발견하고 특별한 일을 겪는 인생이라도 계속해 정원을 찾는다.
사진 출처: 여기
몇 년 전 유행이었던 모래놀이 치료 (sand tray therapy)이 원리도 비슷하지 않을까?
단순하고 재미없을 것 같은 정원사의 일은 사실 대단한 행복이다.
▲ 요즘의 통상적인 취미도 단순작업에 대한 우리들의 숨은 애정을 찾을 수 있다. '동물의 숲' 속 정원 가꾸기 정도는
'동물의 숲 (どうぶつの森, Animal Crossing)' 이나 RPG게임의 이야기를 오프라인으로 손에 흙 묻혀 즐기고 수확과 꽃피움으로 레벨 상승을 하는 것. 그런 소소함에서 그가 무엇을 얻었는지 우리의 단순하지만 근성 있는 반복 속의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인지 - 그것은 이 책 안에 있다.
법정스님의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세 권 중 한 권이라는 걸 알고는 더욱 흥미를 끌어버린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정원 가꾸기. ‘비밀의 화원 (The Secret Garden, 1911)’의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Frances Hodgson Burnett) 작가가 책에서 그렸던 비밀의 정원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렇게 추억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정원도, 독자의 정원도 방문해본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 슬픈 일들이 있다.
그래도 때때로 꿈이 현실에서 실현되고 충족되는 가운데 찾아오는 행복이 있다.
그 행복이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해도 그런대로 괜찮을 것이다. 이 행복은 잠시 동안은 참으로 그윽하고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
오십여 그루의 나무와 몇 그루의 화초, 무화과나무나 복숭아나무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기분은 그런 것이다.
- 140쪽
알라딘 신간평가단 13기 (Essay)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All Rights Reserved. 이 포스트의 출처는 Char의 Urbane Glitz입니다
(차의 어베인글릿츠)! blog.cyworld.com/char-b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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