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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필
존 그리샴 지음, 유소영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존 그리셤의 작품들은 끊임없이 발전한다.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나 '펠리컨 브리프', '레인메이커'같은 작품들은 거대권력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비록 골리앗을 완벽하게 무너뜨리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아기자기하고 통쾌한 승리를 거두곤 한다.
하지만 최근 작품들은 존 그리셤 스타일이라고 불릴만한 전형적인 패턴들을 뛰어넘는다.
엉뚱한 소재의 성탄특집 스릴러 '크리스마스 건너뛰기', 첩보/정치 스릴러에 가까운 '브로커'와 '톱니바퀴', 이야기의 반 이상이 열대 밀림에서 벌어지는 '유언장', 스포츠를 통해서 어린 시절의 꿈과 삶을 회상하는 '관람석'까지 폭넓은 재능을 선보였다.
최신작 '어필'은 초기의 스릴과 최근의 변칙성을 함께 갖춘 작품이다.
예전의 '파트너'라는 작품이 그랬듯이 '어필' 또한 존 그리셤의 다른 작품들이나 평범한 법정 스릴러라면 결말에 해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환경오염으로 원고의 가족을 죽음에 이르게 한 대기업이 엄청난 금액의 배상금을 선고받는다. 원고와 원고의 변호사들은 마치 길고 긴 싸움의 마지막에서 피로에 젖은 승리를 만끽한다.
그러나 곧 대기업의 반격이 시작되고, 대법원의 판사를 교체하기 위한 음모가 이어진다.
하지만 작품의 실제 모델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는 점이나 미국의 대법관 선출 방식의 문제를 지적하는 부분은 지구 반대편의 한국 독자에게는 너무 먼 나라의 낮선 이야기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점은 한참동안 차곡차곡 사건과 사건을 엮어나가던 존 그리셤이 결국 우연이라는 요소에 의지해 결말의 반전을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스릴러라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우연 말이다.-불치병으로 죽을 것 같던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을 살릴 수 있는 기적의 약이 나타나고, 시종일관 주인공을 괴롭히던 시어머니가 최종회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물의 참회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확실히 존 그리셤의 글 솜씨가 장황해졌다. 초창기의 간결한 문장은 ‘크리스마스 건너뛰기’ 정도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조연에 불과한 오트 목사의 배경을 설명하는데 두 페이지, 트루도를 소개하는데 서너 페이지씩이나 할애한다.
번역의 문제인지, 원작의 문제인지 이해할 수 없는 구절도 나온다.
138페이지에서 친기업적 판사 후보로 선택된 론의 변호사 봉이 9만 2천 달러인데, 판사 연봉이 11만 달러라는 말을 듣고 ‘연봉을 그렇게까지 깎일 수 는 없다는 듯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는 문장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뭐, 여러 가지 불만스러운 부분도 많고, 더 이상 초기작에서 느낄 수 있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감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시의적절한 소재와 비교적 탄탄한 줄거리로 그럭저럭 읽는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존 그리셤도 나이를 먹었는지 ‘어필’에서도 성같은 집, 비싼 사무실보다 그저 아이들을 키울 집을 갖고 싶었다는 식으로 인생을 성찰하는 듯한 문장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