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조막손 투수' 짐 애보트(Jim Abbott. 밀워키 브루워즈)가 10년간의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금세기 최고의 인간 승리로 신체장애인들의 빛나는 희망이었던 그는 오른쪽 손이 없는 장애를 극복하고 정상인들도 도전하기 힘든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위대한 성적을 낳은 장본인. 10년간 87승 방어율 4.25를 기록했고, 93년 뉴욕 양키즈 시절에는 이름있는 실력파 투수도 평생에 한번 할까말까한 노히트노런의 대기록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오른손이 없어도 야구가 좋았던 소년
본명이 Abbott James Anthony인 애보트는 1967년 9월19일 미시간주의 플린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오른손이 없었던 그에게 발을 사용하는 축구를 가르치며 밝게 자라주길 기원했다. 그러나 애보트는 야구에 더 재미를 느껴 6살 때 의수를 풀어 버리고 혼자서 공던지기를 즐겼다. 리틀리그에 들어간 11살 때는 팀의 투수로 활약했다.
전미(全美)대표팀의 에이스
애보트가 공을 뿌린뒤 지금처럼 재빨리 글러브를 왼손에 끼우기 시작한 건 고교시절부터다. 상대 타자들이 연속적으로 번트를 대는데 자극받아 맹렬히 수비 연습을 한 것. 고교 졸업을 앞두고 프로팀 가운데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그에게 입단을 제의했다. 1985년 당시 Free-Agent Draft에서 토론토는 36라운드에 애보트를 지명하고 계약금 5만달러를 제시한 것. 그러나 "지금 프로에 가면 단순히 구경거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나는 내 능력을 평가받고 싶다. 왼팔로 돈을 벌고 싶지, 오른팔로 돈벌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며 동향의 미시간대에 진학했다. 미시간대에서 애보트는 145Km의 강속구를 자랑하며 통산 26승 8패 방어율 3.03를 기록해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애보트가 세계인들의 관심을 끈 것은 전미대표팀의 일원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에 참가하면서 부터다. 시범경기로 치러진 이 대회에서 그는 흡사 묘기대행진과도 같은 투구모습을 선보이며 미국팀을 당당히 우승으로 이끌었다.
묘기와도 같은 투구 동작
포수가 던져주는 공을 왼손으로 받아 조막손인 오른손으로 글러브를 옮겨 끼고 다시 왼손으로 공을 던지는 그의 동작은 너무 자연스럽고 빠르다.
먼저 공이 담긴 글러브를 오른손에 걸쳐 놓고 왼손으로 공을 빼내 투구한 후 그는 왼손으로 글러브를 끼고 수비 자세를 취한다. 글러브로 공을 받아선 글러브를 오른손에 걸치고 왼손으로 공을 빼내 던지고자 하는 곳으로 투구 또는 송구를 한다. 이런 자세로 그는 145Km대의 강속구를 뿌렸다. 얼마나 피눈물나는 노력이 있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꿈의 MLB 직행 그리고 노히트노런
애보트는 88년 그해의 가장 훌륭한 아마추어 선수에게 수여되는 설리반상을 받고 프로 드래프트에서 캘리포니아 엔젤스(현 애너하임 엔젤스)에 1차로 지명되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로빈 벤츄라, 볼티모어 오리올즈의 그렉 올슨, 텍사스 레인저스의 몬티 파리스 등이 1차 지명 동기들이다. 그는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해 4월8일 시애틀 매리너스와 데뷔전을 치렀다. 데뷔 첫 게임서 패한 그는 4월28일 볼티모어 오리올즈에게 첫 승을 신고한후 첫해 12승12패 방어율 3.92의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이듬해에도 10승(14패)을 올려 그의 실력이 거품이 아님을 증명한 그는 3년차때인 91년 18승11패 방어율 2.89의 성적으로 로저 클레멘스(볼티모어.18승10패 방 2.41), 케빈 타파니(미네소타.16승9패 방 2.99)등과 사이영상을 다투기도 했다.
애보트는 92년말 뉴욕 양키즈로 트레이드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었을까? 93시즌 애보트는 9월4일 양키스타디움서 벌어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전서 대망의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그해 4월7일 양키즈 유니폼을 입고 첫 출격했을 때 패배의 수모를 안겨준 바로 클리블랜드를 상대로 한 완승이었기에 더욱 값진 기억으로 남았다.
이제 기적은 막을 내리고...
올시즌 2승8패 방어율 6.91.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왔습니다". 성에 차지 않는 성적을 남긴 애보트는 밀워키로부터 방출 통고를 받자 이렇게 말했다. 그의 나이 32세. 애보트는 은퇴를 결심했다. 96년 캘리포니아 엔젤스에서 2승18패로 무너진뒤 마이너리그를 거쳐 98년 5승을 올리며 재기하는 듯 했으나 40만달러를 받고 밀워키로 옮겨온 올시즌 다시 부진에 빠지자 은퇴를 공식 발표한 것. 지난 10년간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한 팔만으로 100승'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기대했던 팬들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10년간 통산 87승108패 방어율 4.25를 남긴 그는 아마야구 최고의 좌완 투수와 올림픽 금메달, MLB 노히트노런 등 야구선수로서 누릴수 있는 영예는 어쩌면 다 누린 셈인지도 모른다. 특히 지난 6월15일 시카고 커브스전에선 4회에 한손으로 안타를 치며 타점까지 올리는 진기록을 남겼다.
"항상 최선을 다했다"는 그의 회상에서 이제 기적은 막을 내린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