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뛰어와 꼬리를 흔든다. 마음만 먹으면 목을 부러뜨릴 수 있는 억센 손에 안겨서도 완전한 신뢰만을 보여준다. 개들은 보통 아무 일도 안 하고 먹이만 축낸다. 하지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 어떤 유용한 것들보다 의미가 있다. 눈물을 흘리면 슬그머니 다가와서 얼굴을 핥고, 주인을 위협하는 적을 조그만 몸뚱아리로 가로막는다.

롤플레잉 게임 <폴아웃>에서 '독밋(dogmeat)', 그러니까 개고기란 희한한 이름의 개를 만났다. 이 녀석의 삶이 참 기구하다. 독밋의 주인은 뭐 하나 특출날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핵전쟁 후 폐허가 된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다니다 '정크 타운'에 도착했다. 이 곳을 주름잡는 인간 쓰레기 기즈모 일당은 단지 심심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빌딩에서 집어던져 버렸다. 혼자 남은 독밋은 주인이 묵었던 집 앞을 지키며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정크 타운에서 일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독밋 때문에 집에 못 들어가는 집주인의 의뢰를 받았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결과 독밋의 주인은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독밋은 검은 재킷을 입은 나를 보고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따라왔다. 이것으로 한 건 해결, 하지만 녀석은 계속 나를 따라왔다. 내가 주인이 아니란 걸 몰랐을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개는 먹이와 물, 그리고 사랑을 먹고 산다. 독밋은 믿고 사랑할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간 길은 무척 험했다. 하지만 녀석은 기꺼이 나를 쫓았다. 독밋은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돌연변이들과 맞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싸웠다. 맨 몸에 이빨만 가지고도 나를 돕겠다는 이유 한가지만으로 망설이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약했다. 때로는 짜증이 나고, 때로는 안타까웠다. 가만히 숨어 있거나 뒤에서 싸우기만 해도 좋을텐데, 무조건 제일 앞으로 뛰어나오는 녀석을 보고 있기가 괴로웠다. 적의 총 앞에서 독밋이 쓰러질 때마다 게임을 다시 로드했다. 다치지 않고 끝낼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싸웠다.

하지만 우려했던 날이 왔다. 마지막 전투를 위해 적의 기지로 가야 했다. 레이저 방어막을 뚫기에는 독밋의 체력이 너무 약했다. 다른 동료들은 다 돌려보냈다. 하지만 독밋만은 떠나보낼 방법이 없었다. 독밋은 내가 가는 한 계속 따라 왔다. 방어막 하나하나를 지날 때마다 독밋은 약해졌고, 결국 쓰러졌다. 나는 게임을 계속 했고, 보스를 물리치고 엔딩을 보았다. 독밋이 죽을 걸 알면서도 그냥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 녀석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난 이런 식으로 보답했다. 애초에 독밋을 거둔다고 나선 게 잘못이었다. 그럴 자격이 없었다.

어느 수의사에게서, 개는 주인이 바뀌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버려진 개들을 보지 않는 날이 없다. 사람을 보면 떨며 도망가는 녀석도 있고, 무조건 따라오며 애처롭게 쳐다보는 개도 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다른 생명을 소중히 여기면, 인간이 응당 받아야 할 몫을 빼앗기라도 하는 것처럼 치를 떤다. 하지만 지구는 모든 생명의 것이다. 그리고 그 고마운 생명의 원천을 망치는 데 인간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는 생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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