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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찔한 경성 - 여섯 가지 풍경에서 찾아낸 근대 조선인들의 욕망과 사생활
김병희 외 지음, 한성환 외 엮음 / 꿈결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산문 [이토록 아찔한 경성] 최영묵 외, 꿈결, 2012
역사책은 아니다. 이 책은 근대에 나타난 6가지의 소재(광고, 대중음악, 사법제도, 문화재, 미디어, 철도)를 가지고 쓴, 물론 인터넷 서점의 분류는 인문학 또는 역사로 분류하고 있지만, 산문으로 생각하며 읽어야 할 것 같다.
6부 ‘철도로 본 근대의 풍경’에 시인 이상(李箱)의 일화가 소개되고 있다. 이상은 1930년대 후반 경부선을 타고 부산으로 가, 그곳에서 일본행 관부연락선을 타고, 다시 기차를 타고 일본 동경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필자는 “이상은 도쿄에서 잡문을 써서 돈을 벌어서 병을 치료하려고 하는데 그만 치료를 못 끝내고 죽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망우리 공동묘지에 한번 가보세요. (중략) 여기에는 소설가 이상은 물론 (하략).” 이라고 말한다.
1964년 12월 [신동아]에 이상의 동생 김옥희(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이다)가 쓴 글을 보면, 일본경찰에 체포된 이상은 “심한 고문도 받았겠지만, 워낙 뼈만 남은 오빠의 몸에 더 이상 손을 댔다가는 변을 당할 것 같아서인지 한 달 남짓 만에 병으로 보석이 되었습니다.” 경찰서에서 풀려난 이상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동경 제대 부속병원에 입원하지만 얼마 후 죽는다. 이상의 무덤에 관해선 부분을 보면, “5월에 돌아온 유해는 다시 한 달쯤 뒤에 ‘미아리’ 공동묘지에 묻혔고 그 뒤 어머니께서 이따금 다니며 술도 한 잔씩 부어 놓곤 했던 것이, 지금은 온통 집이 들어서 버렸으니 한 줌 뼈나마 안주의 곳이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고 적어놓았다.
김옥희가 틀렸을 수도 있다. 이상의 마지막 행적을 어디에다가 중점을 두고 기술하느냐에 따라서 글의 느낌은 달라지고, ‘미아리’라고 한 곳이 ‘망우리’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그곳으로 ‘이장’을 했을 수도 있다. 이처럼 불과 100년도 안 된 일이지만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달라질 수 있다. 역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물이 ‘반씩이나 남았는지, 반밖에 없는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처럼, 보는 사람에 따라 역사의 의미도 달라진다.
5부 ‘미디어로 본 근대의 풍경’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유럽에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로 종교개혁 등이 가능했던 것 아닙니까. 영국도 일찍부터 ‘언론 자유’사상이 발전했기 때문에 큰 사회적 혼란 없이 명예혁명을 통해 근대적 국가를 건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필자는 ‘언론 자유’에 초점을 두고 이 글을 쓴 것 같다. 인쇄술과 종교개혁, 언론자유와 명예혁명이 전혀 관련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인쇄술의 발달과 언론자유’가 원인이 되어서 ‘종교개혁과 명예혁명’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 속에는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각가지 원인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언론자유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독자들이 얼마나 균형을 잡고 읽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진보 일간지를 읽으면, 보수 일간지도 읽는 것이 언론자유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4부 ‘문화재로 본 근대의 풍경’의 저자는 “우리나라 재벌과 기업인들이 문화재 환수에 좀 더 많은 신경을 써서, 앞으로 제2, 제3의 간송이 나오기를 간절하게 기대합니다.”라고 했다. 물론 정부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간송 선생의 평가가 아니다. 재벌과 기업인들에게 신경 써달라고 할 만큼 우리 나라가 그토록 엉망인가? 아니면 비싼 문화재 몇 점 사 나라에 헌납하든지 아니면, 개인 미술관에 소장하면 모두 간송이 되고, 중세 부자들에게 팔았던 면죄부처럼, 그들이 저질렀던 수많은 잘못은 덮어둔 채, 우리의 귀중한 유산 뒤에 꼬리표를 붙여야 할까.
3부에서는 근대 사법제도의 변화 과정을 설명하면서, 현대의 사법제도의 문제도 이야기하고 있다. 당시 유럽에서도 후진국이었던 독일의 법체계를 더 후진국인 일본이 수입했고, 그 일본인들이 한국의 근대 사법체계를 만들었고, 그 후진적인 사법체계와 문제의 인물들이 지금 사법체계를 구성하고 있으니, 현재의 ‘사법체계’는 문제다. 물론 공감이 되는 이야기다. 그런데 청산되었어야 할 과거의 인물들은 모두 죽었거나 현역을 떠났고, 수없이 많은 법 개정이 있었지만, 저자가 지적하듯이 아직도 수없이 발생하는 사법부의 문제가 ‘사법체계’의 후진성만의 문제일까. 한국 전쟁 이후에 태어나고 교육받은 현대의 법관, 검사, 고위 경찰관이 가지고 있는 똘똘 뭉친 관료주의와 그릇된 엘리트 의식 때문은 아닐까. 2012.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