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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3월
평점 :
소설가인 작가의 에세이를 읽는 것은 일반적으로 에세이 등으로만 주로 만나는 것과는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책을 읽으며 느껴지는 감수성이 있지만 그건 ‘과연 그럴 것이다’라고 추측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와는 다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책을 접했던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집을 읽어보게 됐는데, ‘취하기에 많이 부족하다’라는 느낌이다.
작은 생활 속 소품들이나 마주치게 되는 일상들(원제처럼 하찮은 것들)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너무나 생략되어 있는 간결한 느낌(??)의 짧은 단상이라 ‘취하기에 많이 아쉬운’ 이야기였다.
읽으면서 조금 뜨끔했던 이야기 한 편
전철을 탈 때나 목욕을 할 때, 찻집에서 기다릴 때, 치과에서 차례를 기다릴 때, 아무튼 늘 추리소설이 없으면 안 된다. 갈 장소가 없다는 느낌이 든다. 또는 있을 곳이 없다는.
누가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이건 순전히 도피다.
몇 년 동안 그렇다는 걸 인정하기 두려웠지만, 일을 하거나 식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사람을 만나는 등의 내가 정해서 하는 일, 또는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을 할 때가 아니면 나는 늘 책을 읽고 있다.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이다.
가령 내 신변에 굉장히 불행한 일이 생겼다 해도, 재미나는 추리소설이 있으,면 그것을 읽는 동안에는 울거나 한탄하지 않을 것이라도 생각한다. 그 현장에 없으니까.
원하지 않는 장소에 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게 된 시가와 텔레비전을 외면하게 된 시기가 얼추 일치하는 것도 납득이 간다. 원하지 않는 정보를 싫든 좋은 보고 듣게 되는 것을 고통스러워하는, 겁 많으면서도 이기적인 정신. 호기심 없는 어린애 같다.
하지만 아마도 그 때문에 나는 하루하루를 건강하게, 기분 좋게 살 수 있는 것이리라. 이것은 하주 중요한 점이다.
추리소설 177-17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