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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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부딪쳐서 싸우거나  피해서 버티거나 맞아들여서 숙이거나 간에 외줄기 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 터이고, 그 길들이 모두 뒤섞이면서 세상은 되어지는 대로 되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옵니다.....
16p

........ 버티지 못하면 어찌 하겠느냐, 버티면 버티어지는 것이고, 버티지 않으면 버티어지지 못하는 것 아니냐..... 죽음을 받아들이는 힘으로 삶을 열어가는 것이다. 아침이 오고 또 봄이 오듯이 새로운 시간과 더불어 새로워지지 못한다면, 이 성 안에서 세상은 끝날 것이고 끝나는 날까지 고통을 다 바쳐야 할 것이지만, 아침은 오고 봄은 기어이 오는 것이어서 성 밖에서 성 안으로 들어왔듯 성안에서 성 밖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어찌 없다 하겠느냐....
 

사물은 몸에 깃들고 마음은 일에 깃든다. 마음은 몸의 터전이고 몸은 마음의 집이니, 일과 몸과 마음은 더불어 사귀며 다투지 않는다......
121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 상태에서 인조의 그 삼전도 치욕을 남한산성안에서 함께 하는 그 날들이 끔찍했다. 하루하루 세상이 되어지는 대로 되어갈 수 밖에 없어 힘 하나 쓰지 못하면서 갇혀 지내며 우유부단하게 움직이는 모든 남한산성의 사람들이 너무 힘들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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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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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 교과서 같은 분위기의 책을 싫어해 여행기가 아니라는 책소개를 보며 어쩔까했지만 그의 책은 한 권도 빠트리지 않고 읽었으니 하면서 들게 됐다.  길 위에서 이야기가 아닌 지라 속내를 좀더 많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다. 물론 그의 9년 간의 삶을 함께 했던 월드 비젼 에서의 구호 활동 속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빼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의 책 중에서는 가장 많은 시간 한국(??)에서 보냈던 이야기들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요즘 신문 칼럼이나 잘 팔리는 책마다 예외 없이 하는 말이다. 나 역시 책과 강의 등을 통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엇이 가슴을 뛰게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주문을 하곤 한다. 그러나 잘 알고 있다. 이것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무리한 요구인지를.

한창 자기 인생의 밑그림을 그려야 할 중고등학교 때는 학교와 학원이라는 가마솥에 넣어놓고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공부만 해라, 공부만 잘하면 다른 것은 다 따라온다.’며 푹푹 삶아대던 어른들이, 아이가 고등학교 문을 나서자마자 갑자기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 딴생각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몰아붙이니 얼마나 황당할 것인가. 자신의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나 시간이 없었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는가.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꿈이 아니라 엄마의 꿈, 선생님의 꿈, 사회적으로 성공한 다른 이의 꿈을 꿀 수밖에 없는 거다. 남의 꿈이 자신의 꿈이라고 착각하며 살 수밖에 없는 거다.  

길을 묻는 젊은이에게 144-145  


이제 더 이상 젊지는 않지만(한비야씨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안되겠지만^^) 나도 다시 새로운 길을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서 부터 강조한 '가슴 뛰는 일을 하라'가 내 마음에 화두처럼 새겨져 있는데,   '길을 묻는 젊은이에게'에도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다시금 강조한다.  
 뚜렷한 목표를 가진 삶에서 생길 수 있는 자신감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그런 목표점을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일 것 같다. 정열적으로, 열정적으로 살고 만들어내는 삶에서만 가능한 일 말이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게 다시금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대단한 그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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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거닐다 - 교토, 오사카... 일상과 여행 사이의 기록
전소연 지음 / 북노마드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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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상적인 여행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교토까지 와서 고작 하는 일이 빈둥거리는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여유. 그것은 여행의 태도인 것이고 나의 여행의 태도는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나 스스로에 의해서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행을 하다가 정말 마음에 드는 곳에서는 한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면 한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것처럼. 이번 교토 여행에서는 의도적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건드렸고 덕분에 나는 일상적인 여행의 매력에 매료되었다.  

일상적인 여행의 매력 84


일상적 생활과 여행의 두 경계를 오가며 타지에서 있어 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흡인력이 있는 글이 좋다.   

차분한 느낌으로 읽어지는 글도 좋다.  

색다른 시선의 렌즈로 따뜻한 느낌의 사진들도 좋다.  

 

여행지에서의 감상보다 개인 감정이 많이 실린 책들은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닌 데도 천천히 호흡하며 읽어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글이 많지 않은 책이라 그닥 오래 들고 있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가끔씩 여행지를 다니다 보면 '정말 이런 곳에서는 살아보고 싶네'하는 생각이 드는 적이 있다. 그렇다고 모두 그렇게 해볼 수는 없을 것인데 그렇게 살아보는 글쓴이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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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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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인 작가의 에세이를 읽는 것은 일반적으로 에세이 등으로만 주로 만나는 것과는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책을 읽으며 느껴지는 감수성이 있지만 그건 ‘과연 그럴 것이다’라고 추측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와는 다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책을 접했던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집을 읽어보게 됐는데, ‘취하기에 많이 부족하다’라는 느낌이다.

작은 생활 속 소품들이나 마주치게 되는 일상들(원제처럼 하찮은 것들)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너무나 생략되어 있는 간결한 느낌(??)의 짧은 단상이라 ‘취하기에 많이 아쉬운’ 이야기였다. 
 

읽으면서 조금 뜨끔했던 이야기 한 편 

 

전철을 탈 때나 목욕을 할 때, 찻집에서 기다릴 때, 치과에서 차례를 기다릴 때, 아무튼 늘 추리소설이 없으면 안 된다. 갈 장소가 없다는 느낌이 든다. 또는 있을 곳이 없다는.

누가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이건 순전히 도피다.

몇 년 동안 그렇다는 걸 인정하기 두려웠지만, 일을 하거나 식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사람을 만나는 등의 내가 정해서 하는 일, 또는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을 할 때가 아니면 나는 늘 책을 읽고 있다.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이다.

가령 내 신변에 굉장히 불행한 일이 생겼다 해도, 재미나는 추리소설이 있으,면 그것을 읽는 동안에는 울거나 한탄하지 않을 것이라도 생각한다. 그 현장에 없으니까.

원하지 않는 장소에 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게 된 시가와 텔레비전을 외면하게 된 시기가 얼추 일치하는 것도 납득이 간다. 원하지 않는 정보를 싫든 좋은 보고 듣게 되는 것을 고통스러워하는, 겁 많으면서도 이기적인 정신. 호기심 없는 어린애 같다.

하지만 아마도 그 때문에 나는 하루하루를 건강하게, 기분 좋게 살 수 있는 것이리라. 이것은 하주 중요한 점이다.

추리소설 177-17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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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일기 - 최인호 선답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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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몸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그건 몸을 방기하기 때문이 아니라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서이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하는 건 육체의 헛벗음이 아니라 영혼이 메말라 가는 일이다.

육신은 영혼을 그리워하고 영혼은 끊임없이 육신을 찾아 떠도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194p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 늙어버릴 것을 저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크나큰 지혜의 창고를 다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저도 결국에는 친구가 몇 명 남아 있어야 하겠지요. 끝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을 향해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제 팔다리, 어미,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 주소서. 제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가고 그것들에 대해 위로받고 싶은 마음들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얘기를 기꺼이 들어 주는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마는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제 기억력이 좋게 해 주십사고 감히 청할 수는 없사오나 제게 겸손한 마음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름 사람의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저도 가끔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적당히 착하게 해 주소서. 저는 성인까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그렇더라도 심술궂은 늙은이는 그저 마귀의 자랑거리가 될 뿐입니다.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는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아멘.
201-202p
 


나이가 들어가면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것일까?  

가톨릭인 작가의 선답 에세이는 읽으면서 꼭 불교도가 쓴 글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종교인과 비종교인을 구분하지 않고 종교인과 타종교인의 구분을 넘나들 수 있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진데 멋있게 나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싶다. 읽으면서 마음이 차분해지는 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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