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 발칙한 글쟁이의 의외로 훈훈한 여행기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4월
구판절판


어떤 나라에서는 아주 쉽게 잘하는 일을 다른 나라 사람들은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경우도 세상에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끔은 어떤 나라에서 처음 유래한 사물이 매우 독창적이고 기발해서 그 물건하면 반드시 그 나라를 연상되는 것들이 있다. 영국의 2층 버스나 네델란드의 풍차(평평한 땅에 얼마나 훌륭한 착상인가. 네델란드 인들을 네브라스카에 데려다 놓으면 이 황량한 주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자못 궁금하다) 파리의 노천 카페가 그렇다. 반면에 다른 국가들이 대부분 아주 쉽게 하는 일인데도 어떤 나라 사람들은 아예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있다.

가령 프랑스 사람들은 줄서기의 의의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되나 보다. 파리에 가면 버스 정류장마다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서 있지만, 버스가 도착하기만 하면 이 질서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정류장은 비인도적인 수용소에 화재 경보라도 울린 듯이 아수라장이 된다. 모두들 버스를 먼저 타려고 쟁탈전을 벌인다. 그럴 거면 애초에 줄은 왜 서느냔 말이다.
오슬로 중 -52-53쪽

영국인들은 음식을 먹을 때 기본적인 점 몇 가지를 도통 이해하지 못한다. 햄버거를 굳이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해서 먹으려하는 점만 봐도 그렇다. 어떤 이들은 포크를 뒤집어서 포크 뒷면으로 음식을 가지런히 정돈하기도 하는데, 왜 그러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영국에 산 지 벌써 15년이 되었건만, 햄버거를 먹을 때 포크와 나이프를 가지고 씨름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낯선 그들에게 다가가 조언해 주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한다.
"저기요, 두 손으로 쥐고 먹으면 지금처럼 완두콩이 사방에 줄줄 떨어지지 않거든요?"
독일인들은 유머라면 아주 당혹스러워하며, 스위스 인들은 즐길 줄을 모르고, 스페인 사람들은 자정에 저녁을 먹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심성이라곤 전혀 없는 이탈리아인들은 자동차 발명에 절대로 참여하지 말았어야 한다.
오슬로 중-52-53쪽

첫 유럽 여행에서 특히 경이로웠던 사실은, 세상이 이토록 다양하며, 먹고 마시거나 영화표를 사는 일처럼 간단한 일을 하는 데도 수많은 방법이 있다는 점이었다. 유럽 인들을 하나 같이 너무나 비슷하다. 모두 책을 좋아하고 지적이며, 소형차를 몰고, 오래된 마을의 작은 집에서 살며, 축구를 좋아하고, 상대적으로 덜 물질적이며, 법을 준수하고 호텔 방은 춥게 하면서 음식점이나 술집은 따뜻하고 편안하게 만들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동시에 예상치 못한 측면에서 서로 나무나 다르기도 하다. 유럽에서는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 나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오슬로 중 -52-53쪽

런던에 있을 때 유럽 여행을 한 다음 책을 쓸 거라고 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여러 외국어를 구사하지나 보군요."
"아니, 영어밖에 모르는데요."
내가 모종의 자부심을 가지고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게는 그것이 외국 여행의 묘미다. 나는 여행지의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싶지 않다. 낯선 나라를 여행하는 것보다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을 자아내는 일이 어디 있을까. 여행자는 갑자기 다섯 살짜리 어린이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읽을 수 없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간신히 눈치로 알 수 있을 뿐이며,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가 없다. 존재 자체가 연이은 추측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오슬로 중 -52-54쪽

프랑스 인들은 심지어 내연 기관이 발명되기 훨씬 전부터 험한 운전으로 유명했다. 일찍이 18세기에도 파리로 여행하는 영국인들은 프랑스 사람들이 마차를 얼마나 험하게 모는지에 대해 언급하곤 했다.
‘사람을 실은 마차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거리를 지나가며.....아이들은 마차에 치이거나, 치어 죽는 광경도 흔히 목격된다.’
크리스토퍼 히버트가 쓴 『여행기(The Grand Tour)』의 한 구절이다. 유럽 각국의 국민들이 적어도 300년 동안 고정관념에 충실하게 살아왔다는 내용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16세기에만 해도 여행자들은 벌써 이탈리아 사람은 수다스럽고 신뢰하기 어려우며 지독히 부패하고, 독일인은 식탐이 많으며, 스위스 사람은 짜증이 날만큼 거말하고 정리정돈을 좋아하고, 프랑스 사람은 견딜 수 없을 만큼 ‘프랑스인답다’고 묘사했다.
파리 중-69쪽

도시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너무 뻔한 말 같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건물은 자동차나 상점, 건설 회사를 위해 지어졌다. 그리고 도시를 사람이 사는 곳으로, 기능과 이동을 위한 곳으로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남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려 하지 않는, 돈과 야망으로 가득 찬 소수만을 위해 지어졌다. 왜 음습한 터널이나 높은 육교를 통해야만 복잡한 거리를 다닐 수 있어야 하는가? 왜 사람보다 자동차를 우선 고려하는가? 인간은 그토록 돈이 많으면서도 왜 그리 바보인가? 이 모두는 우리 시대의 저주다. 우리는 돈은 너무 많고, 생각은 너무 없다. 그런 의미에서 퐁피두센터는 합성수지로 만든 ‘부유하고 우매한 인간상’의 상징이다.
파리 중-76쪽

‘나는 흐르는 물을 보면서 변기에 앉아 여행이라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생각했다. 집의 안락함을 기꺼이 버리고 낯선 땅으로 날아와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애초에 잃지 않았을 안락함을 되찾기 위해 시간과 돈을 쓰면서 덧없는 노력을 하는 게 여행이 아닌가.’
이스탄불 中-383쪽

나도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가족이 보고 싶었고, 내 집의 친숙함이 그리웠다.매일 먹고 자는 일을 걱정하는 것도 지겨웠고, 기차와 버스도, 낯선 사람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도, 끊임없이 당황하고 길을 잃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라는 사람과의 재미없는 동행이 지겨웠다. 요즘 버스나 기차에 갇혀서 나 자신이라는 사람과의 재미없는 동행이 지겨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라는 사람과의 재미없는 동행이 지겨웠다. 요즘 버스나 기차에 갇혀서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대는 내 모습을 보고 벌떡 일어나 자신을 내팽개치고 도망가고픈 충동을 얼마나 많이 느꼈던가?
동시에,나는 계속 여행을 하고 싶다는 비이성적인 충동을 강하게 느끼기도 했다. 여행에는 계속 나아가고 싶게 만드는, 멈추고 싶지 않게 하는 타성이 있다. 해협 바로 저편에 아시아가 있다.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저기가 아시아 대륙이라고 생각하자 경이로웠다.몇 분이면 아시아 땅을 밟을 수 있다.돈도 아직 남아 있다.그리고 내가 가보지 못한 대륙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가지 않았다.~어쨌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여행이란 어차피 집으로 향하는 길이니까- 385-386쪽

'시원하도록 도발적'이라는 둥 '옷에 난 보푸라기에 대해 글을 쓰더라고 폭소를 자아낼' 거라는 둥, 그의 글은 언론에서 흔히 극찬을 받지만 빌 브라이슨은 사실 번역하는 사람에게는 최악의 작가이다.
우리말로 옮길 수 없는 무수한 말장난도 그렇고, 유럽과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만이 별다른 설명 없이 알 수 있는 문화 코드는 왜 그리고 책 전체에 속소들이 버무려져 있는지. 심하게 유식한 이 작가의 백과사전적 지식은 왜 그리 곳곳에서 발목을 잡았는지....
역자 후기에서-3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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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자이저 북라이트
에너자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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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활자중독인지라 저녁에 누워서도 꼭 책을 보는 편입니다.  

스탠드 불빛으로 책을 읽고는 했는데, 늘 혼자 있다가 동침하는 사람이 생기고는 좀 신경이 쓰이던 차에 망설이다가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 아이의 눈을 가려두고는 책을 읽고는 했는데, 물론 집의 녀석이 불빛에 일어나지는 않지만 훨씬 마음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답니다.

생각보다는 밝지만 일반적 소설 사이즈에 가장 많은 A5신 사이즈에 고르게 비치는 느낌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드 커버에도 OK!, 움직임이 부드러워 옮겨다니기에 힘들지는 않습니다. a

 (30시간 사용)이라고 붙어 있는 내용을 못보고 구입했는데, 가격 대비 싼 데 비해 배터리가 동전형 2개라 추가비용이 많이 들 듯 해서 리튬 건전지도 다시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배터리가 약해짐에 따라 불빛이 흐려져 2개를 한꺼번에 사용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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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구판절판


이십대의 나는, 자연이 만든 것보다 인간이 만든 것에 더 끌린다고 자신만만하게 떠들고 다녔다. 나는 미술관들을 돌아다녔고 인간이 그런 그림과 인간이 지은 책과 음악, 건축물에 매료되고 했다. 자연? 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텅 비어버리는 것 같아요. 아무 생각도 안 난다고요. 나보다 연배가 대여섯은 위인 한 시인이 나를 향해 이렇게 일갈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이봐, 그런 말, 너무 부도덕하잖아." 무슨 소린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술에 취해 떠드는 헛소리인가? 그런데도 그 말은 이상하게 뇌리에 남았다. 인간이 만든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이 어째서 더 부도덕하단 말인가? 그것은 태도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가 아닌가?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인은 아마도 내가 오만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연에 대해 품어야 할 마땅한 경외를 결여한 것, 그것에 대해 취해야 할 마땅한 예의를 생략한 것, 인간이 만든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분노한 것이었다.
# 리파리 스쿠터 일주 -109쪽

저격수는 멈춰 있는 대상을 노린다.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표적을 지켜보다 조용히 한 방.

향수 역시 머물러 있는 여행자를 노린다.

이 부드러운 목소리의
위험한 저격수를 피하기 위해
신중한 여행자는
어지럽고 분주히 움직이며
향수가 공격할 틈을 주지 않는다.

방심한 여행자가 일단 향수의 표적이 되면
움직이기 어려워진다.
그럴수록 그는 더더욱 한곳에 머물러 있고자 하며
마냥 깊은 우물만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 속에 자기가 찾는 모든 것이 있다는 것이.

그러나 세상의 모든 우물이 그렇듯
그곳은 비어 있다.

# 향수 -120-129쪽

시칠리아는 삼각형의 섬이다. 삼각형의 세 변은 각각 유럽과 그리스와 아프리카를 바라보고 있다. 등을 돌린 세 사람이 각각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섬, 그것이 시칠리아다. 유럽을 바라보고 있는 쪽에 팔레르모가 있다. 그리스를 바라보고 있는 쪽은 메시나에서 시라쿠사까지이고 아그리젠토나 젤라는 아프리카를 향하고 있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각 도시들이 자기들이 바라보고 있는 쪽을 닮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노토는 반쯤은 시라쿠사, 그러니까 그리스 쪽을 바라보고 있고 또 반쯤은 아프리카 쪽으로 엉거주춤 돌아앉아 있다.

#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222쪽

카부프 거리의 골목 속에 숨어 있는 멋진 식당들에서 먹은 요리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못 견디게 그리워진다.싱싱한 문어와 오징어,새우와 조개로 요리한 리조토와 파스타,상큼한 전채와 따뜻한 홍합 수프,친절하고 소박한 주인들이 접시를 비운 우리를 보고 기뻐하며 "음식이 마음에 들었느냐."며 조심스레 묻던 장면들도 차례로 떠오른다.
식도락이야말로 순간의 즐거움이다.그것은 사진으로 찍어 남길 수도 없고 잘 보존하여 간직할 수도 없는 성질의 것이며 그 자체로느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는다.어느 한 순간 최고의 행복감을 주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천천히 사그라진다.몇 줄의 문장으로 겨우 남을 뿐이다.
노토를 떠난 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묻는다. 왜 노토 사람들은 그토록 먹는 문제에 진지해진 것일까.혹시 그것은 그들이 300년 전의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후손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하라의 열풍이 불어오는 뜨거운 광장에서 달콤한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먹는 즐거움을 왜 훗날로 미뤄야 한단 말인가?죽음이 내일 방문을 노크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죽음을 기억하라는 Mementi Mori와 현재를 즐기라는 Carpe Diem은 어쩌면 같은-239-240쪽

신전이라는 말에는 태생적으로 아이러니가 있다.

신전을 신이 사는 집이지만 실은 인간이 지은 것이다. 신전은 인간 스스로가 상상해낸, 크고 위대한 어떤 존재를 위해 지은 집이다. 그러나 인간이 지어 올렸기에 이 집들은 끝내 돌무더기로 변해버린다. 세월이 지나면 무너진다는 것, 폐허가 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신전이라는 건축물의 운명이다.

그렇게 무너진 신전을 바라본다는 것은 이중으로 쓸쓸한 일이다.
제우스나 헤라, 포세이돈 같은 신들이 상상 속의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 인간이 세운 높고 위태로운 것은 마침내 쓰러진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문명이 사라지면
그 문명이 상상했던 것들까지도 함께 소멸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곳에 살았던 일군의 인간들이
자신을 닮은 어떤 존재들을 한때 진지하게 믿었다는 것이다.
현대의 우리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슈퍼 히어로에 열광하듯.......

..........그들은 강하고 지혜롭고 유쾌한 신들을 만들었고 거대한 신전을 지어 그들에게 바쳤다.

# 신전 -251-260쪽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오직 단 한 가지의 이유 때문에 아그리젠토에 온다.이른바 '신전의 계곡'을 보러 오는 것이다.신전의 계곡에는 이 도시가 그리스 문명의 일원이던 시절에 건설된 거대한 신전들이 남아 있다. 시칠리아의 여행안내서 대부분은 이 신전의 계곡 사진을 표지로 하고 있다.특히 거의 온전하게 보존돼 있는 콩코르디아 신전을 이렇게, 또는 저렇게 찍어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다.아그리젠토에 도착할 무렵이면 그 이미지가 식상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막상 신전의 계곡에 와 보면 왜 수많은 편집자들이 그럴 수 밖에 없는지를 알게 된다.그만큼 압도적이고 인상적이다.아그리젠토가 시칠리아를 대표하지는 않지만 책상 위에 사진들을 늘어놓고 단 한 잔의 사진을 뽑으라면 콩코르디아 신전의 사진을 집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연기력 뛰어난 조연들이 많아도 감독이나 제작자는 언제나 스타를 주연으로 쓰게 된다.인간은 뛰어나게 독특한 것으로 시선을 돌리도록 진화해 왔다.그리고 영화든 책이든,사람들의 주의를 단숨에 끌지 못하면 실패하고 만다.결국 시칠리아 도시들 간의 치열한 관광객 유치 경쟁은 압도적인 한 장의 이미지-260-262쪽

"시칠리아에 다시 오게 될까?"
뱃전에서 아내가 물었다.
"다시 오게 될 거야."
"어떻게 알아?"
"그냥 알 수 있어."
나는 힘주어 말했다. 아내가 뱃머리에 부서지는 흰 물살을 굽어보다 말했다.
"난 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어떤 사람?"
" 난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었어."
"그런 면이 있지."
아내는 정말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특히 여행 같은 거 떠날 때는 더더욱 그랬지. 예약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그런데 시칠리아 사람들 보니까,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은 것 같아."
"이렇게 사는 게 뭔데?"
"그냥. 그냥 사는 거지. 맛있는 것 먹고 하루 종일 떠들다가 또 맛있는 거 먹고."
"그러다 자고."
"맞아.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거야."
"가이드북 보니까 이탈리아에 이런 속담이 있대. 사랑은 무엇이나 가능하게 한다. 돈은 모든 것을 이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죽음이 모든 것을 끝장낸다."
"갑자기 뜬금없이 웬 속담?"
아내가 짐짓 딴지를 걸어왔다.
"그러니까 여행을 해야 된다는 거야."
# 죽은 신들의 사회 -281-282쪽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돌아보면 지난 시칠리아 여행에서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그 긴 여행에서 그 어떤 것도 흘리거나 도둑맞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운이 좋았던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다시 짐을 점검해보았다. 있을 것들은 모두 있었다. 오히려 내가 잃어버린 것들은 모두 서울에 있었다. 전광판을 보며 나는 지난 세월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편안한 집과 익숙한 일상에서 나는 삶과 정면으로 맞장 뜨는 야성을 잊어버렸다. 의외성을 즐기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한 자신을 내려다보며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즉각적으로 감지하는 감각도 잃어버렸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나날들에게 평화를 느끼며 자신과 세계에 집중하는 법도 망각했다. 나는 모든 것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골똘히 생각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 Memory Lost -291쪽

어린 날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의 날,건달의 세월을 견딜 줄 알았고 그 어떤 것도 함부로 계획하지 않았고 낯선 곳에서 묻득 내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를 새삼 깨닫고 놀랄 줄 아는 사람이었다.그러나 언젠가부터인가 나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이 되어 있었다.그런데도 나는 내가 변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비슷한 옷을 입고 듣던 음악을 들으며 살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어느새 내가 그토록 한심해하던 중년의 사내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아니,애써 외면해왔을지도 모른다.정말 젊은 사람들은 젊은이의 옷을 입는 사람이 아니라 젊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다.젊게 생각한다는 것은 늙은이들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이다.늙은이들은 걱정이 많고 신중하여 어디로든 잘 움직이지 않는다.그리고 자신의 육신과 정신을 이제는 아주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반면 젊은이들은 자신의 취향도 내세우지 않으며 낯선 곳에서 받는 새로운 감흥을 거리낌 없이,아무 거부감 없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그것은 세상과 인생에 대해 더 이상 호기심을 느끼지 않게 되는 과정이다.호기심은 한편 피곤한 감정이다-291-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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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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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톡톡 튀는 언변을 느낄 수 있는 그의 책이 때론-검은 꽃- 무게감을 가지고 읽히기도 한다. 그런 그가 여행에 관한 책을 냈다. 먼저 읽었던 [김영하의 여행자-하이델베르크]는 솔직히 감상이 별달리 없을 정도로 인상적이지 못했다. 무겁지도, 톡톡 튀는 발랄함도 가지지 못했다고나 할까? 

그런 연후라 조금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휴~~ 읽기를 다행이다 싶다. 물론 그 특유의 언변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여행을 한 곳이 시칠리아라서 인지 -그럼 지난 번 하이델베르크는 독일이라 그렇게 무뚝뚝하고 다소 어둡고 우울한 느낌이었을까?- 유머 감각이 때로 느껴지는 그리고 밝은 햇살이 느껴지는 책이다.  

시칠리아는 삼각형의 섬이다. 삼각형의 세 변은 각각 유럽과 그리스와 아프리카를 바라보고 있다. 등을 돌린 세 사람이 각각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섬, 그것이 시칠리아다. 유럽을 바라보고 있는 쪽에 팔레르모가 있다. 그리스를 바라보고 있는 쪽은 메시나에서 시라쿠사까지이고 아그리젠토나 젤라는 아프리카를 향하고 있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각 도시들이 자기들이 바라보고 있는 쪽을 닮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노토는 반쯤은 시라쿠사, 그러니까 그리스 쪽을 바라보고 있고 또 반쯤은 아프리카 쪽으로 엉거주춤 돌아앉아 있다. 
#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222p
 

이탈리아라고 하면 수도 로마만 해도 한 달 이상을 볼 것이 있다고 하고, 문화의 수도인 피렌체도 아름답고, 수상 도시 베네치아는 다시 가보고 싶을 정도인데  

왜 시칠리아일까? 했다....이탈리아와 그리스, 아프리카를 모두 아우르는 그 이탈리아 구두코 아래의 시칠리아가 그의 글을 읽어보면 더더욱 매력있어 보인다.  

마침내 뒷걸음질 쳐 항구를 빠져나오던 페리가 매달리는 여자를 뿌리치듯 매정하게 선수를 돌리자 메시나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시칠리아라는 거대한 섬, 신화와 전설로 가득한 외눈박이 거인들의 메마른 섬도 멀어져갔다.
"시칠리아에 다시 오게 될까?"
뱃전에서 아내가 물었다.
"다시 오게 될 거야."
"어떻게 알아?"
"그냥 알 수 있어."
나는 힘주어 말했다. 아내가 뱃머리에 부서지는 흰 물살을 굽어보다 말했다.
"난 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어떤 사람?"
" 난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었어."
"그런 면이 있지."
아내는 정말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특히 여행 같은 거 떠날 때는 더더욱 그랬지. 예약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그런데 시칠리아 사람들 보니까,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은 것 같아."
"이렇게 사는 게 뭔데?"
"그냥. 그냥 사는 거지. 맛있는 것 먹고 하루 종일 떠들다가 또 맛있는 거 먹고."
"그러다 자고."
"맞아.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거야."
"가이드북 보니까 이탈리아에 이런 속담이 있대. 사랑은 무엇이나 가능하게 한다. 돈은 모든 것을 이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죽음이 모든 것을 끝장낸다."
"갑자기 뜬금없이 웬 속담?"
아내가 짐짓 딴지를 걸어왔다.
"그러니까 여행을 해야 된다는 거야."
"결론이 왜 그래?"
"결론이 어때서?"
우리 말고도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잡담이 거센 바닷바람에 흩어지는 사이, 시칠리아 섬은 우리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시칠리아여, 안녕! Arrivederci, Sicilia!
#  죽은 신들의 사회 281-282p

 

그의 결론과 (그러나 언젠가부터인가 나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변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Memory Lost 291p) 비슷하게 느끼고 있는 내게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여행이 필요한 것 같다. 시칠리아로 가야할까?? ㅋㅋ 

미국을 떠나기 전 그의 여행기였는데, 미국 생활 이야기도 좀더 유쾌한 그의 코드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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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으로 베틀북 그림책 62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허은미 옮김 / 베틀북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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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의 책을 아이들의 책을 읽으면서 조금 맹목적이다 싶을 정도로 좋아하게 된 면이 없지 않아 있어요. 그래서 이 책도 구입을 한 지가 오래되었는데, 이제야(27개월) 아이가 거의 매일 읽어달라며 가져오는 책입니다.  

 그런데 읽으면서 느끼는 아쉬움 몇 가지.... 

1. 왜 숲속으로 가는 이 아이의 이름이 없을까?? - 자꾸 누구야? 묻는 아이에게 '앤서니' 라고 했다가 '브라운'이라고 했다가 맘대로 부르고 있답니다. 

2. 아빠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는데 왜 사라졌는지 엄마도 모르고 있는 것도 이상하고 

3. 아빠를 빨리 만나고 싶어서 빨리 가는 길로 들어서는 이 친구....숲속으로 들어갔다 라는 말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냥 "빨리 가는 길로 가기로 했어요."라고 나와 있는 것도 좀 어색

4. 여러 동화 속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데 연결이 자꾸만 끊어지는 느낌이랄까??   

5. '빨간 외투"를 느닷없이 입고는 무서워 뛰어간 할머니 집에서 만난 사람이 할머니였다는 건 다행스럽지만 아빠를 여우 만나듯이 갑자기 만나는 것도... 

 6. 마지막에 집으로 돌아올 때 맞이해주는 엄마의 모습도 꽤나 우울해보여요.... 

 

그래도  

아이녀석은 계속 글 속에 나오는 음메음메 소를 팔려는 소년도, 바구니 속 케이크를 먹고 싶어하는 소녀도, 헨젤과 그레텔인 듯 한데 그 두 형제간도 궁금해하며 매일 읽어달라 합니다.  

여지껏 읽던 앤서니 브라운의 책보다는 못하다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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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 2010-03-09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고 나니 저 책이 사보고 싶어지네요
우연히 다른 책 리뷰를 보고 클릭해서 왔습니다 ^^

kalliope 2010-03-26 09:42   좋아요 0 | URL
아유.....죄송해합니다.

원체 혼자 주절대는 곳이라 댓글이 달리는 일이 없어서리....이제야 봤네요.
아무튼 감사드려요...

어제 밤에도 들고 들어와 누워서 읽어달라 해서 읽어주며 또 이야기가 이상하네 그러는데 애는 재미있어 하는 걸 보면 어른들은 모르는 나름의 뭔가가 있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