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늘 톡톡 튀는 언변을 느낄 수 있는 그의 책이 때론-검은 꽃- 무게감을 가지고 읽히기도 한다. 그런 그가 여행에 관한 책을 냈다. 먼저 읽었던 [김영하의 여행자-하이델베르크]는 솔직히 감상이 별달리 없을 정도로 인상적이지 못했다. 무겁지도, 톡톡 튀는 발랄함도 가지지 못했다고나 할까? 

그런 연후라 조금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휴~~ 읽기를 다행이다 싶다. 물론 그 특유의 언변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여행을 한 곳이 시칠리아라서 인지 -그럼 지난 번 하이델베르크는 독일이라 그렇게 무뚝뚝하고 다소 어둡고 우울한 느낌이었을까?- 유머 감각이 때로 느껴지는 그리고 밝은 햇살이 느껴지는 책이다.  

시칠리아는 삼각형의 섬이다. 삼각형의 세 변은 각각 유럽과 그리스와 아프리카를 바라보고 있다. 등을 돌린 세 사람이 각각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섬, 그것이 시칠리아다. 유럽을 바라보고 있는 쪽에 팔레르모가 있다. 그리스를 바라보고 있는 쪽은 메시나에서 시라쿠사까지이고 아그리젠토나 젤라는 아프리카를 향하고 있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각 도시들이 자기들이 바라보고 있는 쪽을 닮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노토는 반쯤은 시라쿠사, 그러니까 그리스 쪽을 바라보고 있고 또 반쯤은 아프리카 쪽으로 엉거주춤 돌아앉아 있다. 
#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222p
 

이탈리아라고 하면 수도 로마만 해도 한 달 이상을 볼 것이 있다고 하고, 문화의 수도인 피렌체도 아름답고, 수상 도시 베네치아는 다시 가보고 싶을 정도인데  

왜 시칠리아일까? 했다....이탈리아와 그리스, 아프리카를 모두 아우르는 그 이탈리아 구두코 아래의 시칠리아가 그의 글을 읽어보면 더더욱 매력있어 보인다.  

마침내 뒷걸음질 쳐 항구를 빠져나오던 페리가 매달리는 여자를 뿌리치듯 매정하게 선수를 돌리자 메시나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시칠리아라는 거대한 섬, 신화와 전설로 가득한 외눈박이 거인들의 메마른 섬도 멀어져갔다.
"시칠리아에 다시 오게 될까?"
뱃전에서 아내가 물었다.
"다시 오게 될 거야."
"어떻게 알아?"
"그냥 알 수 있어."
나는 힘주어 말했다. 아내가 뱃머리에 부서지는 흰 물살을 굽어보다 말했다.
"난 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어떤 사람?"
" 난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었어."
"그런 면이 있지."
아내는 정말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특히 여행 같은 거 떠날 때는 더더욱 그랬지. 예약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그런데 시칠리아 사람들 보니까,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은 것 같아."
"이렇게 사는 게 뭔데?"
"그냥. 그냥 사는 거지. 맛있는 것 먹고 하루 종일 떠들다가 또 맛있는 거 먹고."
"그러다 자고."
"맞아.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거야."
"가이드북 보니까 이탈리아에 이런 속담이 있대. 사랑은 무엇이나 가능하게 한다. 돈은 모든 것을 이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죽음이 모든 것을 끝장낸다."
"갑자기 뜬금없이 웬 속담?"
아내가 짐짓 딴지를 걸어왔다.
"그러니까 여행을 해야 된다는 거야."
"결론이 왜 그래?"
"결론이 어때서?"
우리 말고도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잡담이 거센 바닷바람에 흩어지는 사이, 시칠리아 섬은 우리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시칠리아여, 안녕! Arrivederci, Sicilia!
#  죽은 신들의 사회 281-282p

 

그의 결론과 (그러나 언젠가부터인가 나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변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Memory Lost 291p) 비슷하게 느끼고 있는 내게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여행이 필요한 것 같다. 시칠리아로 가야할까?? ㅋㅋ 

미국을 떠나기 전 그의 여행기였는데, 미국 생활 이야기도 좀더 유쾌한 그의 코드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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