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0만 번 주사위 던지기 - 이시백 자유단편 소설집
이시백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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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국어 내지는 문학교사 출신이라고 한다. 명퇴하고 작품활동하는 사람 같은데, 주로 7,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 꽁트 같기도 한 단편소설을 거의 50편 정도 엮어놓았다. 누가 봐도 전교조 출신인듯한 필자는 7, 80년대를 증오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랑천이고 모란시장이고 청계천이고 모든 곳이 우중충한 고담시 같다. 이게 어떤 소린지는 책을 봐야 안다. 특히 학교, 교사, 군대 얘기가 많은데 군대는 심히 악의 축 수준으로 나온다. 나도 물론 대한민국 군대, 특히 하사관들에 대해서는 지극히 혐오한다.


 물론 글빨도 좋고 주로 장삼이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점도 좋았다. 그 시절 어디에나 있었을 법한 이야기와 사람들을 그려놓았다. 필자가 전교조이든 교총이든, 독자는 그 현장감에 몰입하고 풍자에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사상이 편향적이다 뿐이지 잘 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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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내 마음 - 세계의 산문 3-004 (구) 문지 스펙트럼 4
샤를 보들레르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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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일전에 악명 높은Notorious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구해다 읽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책이 완역본이 아닌 온갖 칼질을 가한 시선집임을 알고 나는 보들레르와 같은 분노에 찼었다.
 설마 이건 아니겠지, 하고 이 책을 샀다. 다행히 아니었다.

 

 이건 보들레르가 책 내려고 준비하던 습작 모음집이다. 어떻게 보면 개인적인 메모들에 다름 아닐 수도 있는 토막글들이었는데, 그래서 이 괴짜 꼴통마초 아저씨의 머릿속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보이기도 한다.
 일단 신에 대해 불경스러운 사람이고, 벨기에를 혐오하며, '댄디'를 좋아하고 정작 지는 별로 일도 안 하면서 강박적으로 노동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곤 하더라.
 그리고 참 부정적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실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이야기들을 여기저기 읊어놓았다. 예를 들면,

 

 「한 사내가 앓아 누우면, 거의 모든 친구들은 그가 죽는 것을 보려는 은밀한 욕망을 품게 된다. 어떤 이들은 환자가 자기들보다 더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려 하고, 다른 이들은 임종의 고통을 연구하려는 사심 없는 희망에서 그러하다...」

 

 와 같은 이야기. 우리들 중 누군가는, 깊이 친하지는 않은 사람에 대하여 저런 식의 태도를 취한 적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전술했듯 이 사람은 꼴통 마초이면서도 성매매를 혐오하는 척(?)을 한다. 그래서 이와 같이 말한다.

 

 「...자신을 소모할 권리를 얻기 위해서 돈을 치르는 곳은 딱 두 군데뿐인데, 공중 화장실과 창녀들에게이다...」

 

 그리고 자신이 글쟁이로서 무언가 업적을 남겨야한다는 강박에도 시달린다.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상투어를 하나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재능이다.
 나도 상투어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혐오하는 이 양반은 또한 불경스럽기까지 한데, 이게 또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랑을 없앨 수 없자, 교회는 적어도 그것을 소독하기를 원해서 결혼 제도를 만들었다.
※ 이렇게 지저분한 자리에 자궁이 있다는 사실에서 그는 적어도 사랑에 반대하는 섭리의 악의적 풍자를 간파했고, 생식의 방법에 있어서는 원죄의 표식을 짐작할 수도 있었겠다. 사실 우리는 배설 기관을 통해서만 사랑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가장 매음적인 존재,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존재인 신이다. 왜냐하면 그는 각 개인의 지고한 친구이며, 또 그는 고갈되지 않는 사랑의 공동 저장소이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굶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르게 될 것이오"라고 말할 때, 그는 확률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까칠한 아저씨의 메모장 잘 봤다. 에드가 앨런 포의 열렬한 광팬이었던 저자는 이 메모장을 기초로 하여 책도 찍을 생각이었는데, 심지어 '벌거벗은 내 마음'이라는 제목조차 포가 "자신의 이름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은 이 제목으로 책을 한 권 내면 된다고 언급한 걸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어찌 보면 목적 달성한 것 같다. 보들레르 정도면 불멸의 이름이다.

 

 「...시간은 사용될 때만 잊혀질 수 있다...」

 

 「...사랑에 있어 성가신 것은, 사랑은 공모자 없이는 불가능한 범죄라는 것이다.」

 

 「젊은 작가가 자신의 첫 교정쇄를 고치는 날, 그는 막 처음으로 매독에 걸린 학생처럼 우쭐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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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의 행복 - 행복해지고 싶지만 길을 몰라 헤매는 당신에게
법륜 지음, 최승미 그림 / 나무의마음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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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6년 겨울, 내 생일 언저리 어느날 합정 맛있는교토에서 한잔하고 있을 때 오랜 친구가 가게 앞까지 차끌고 와서 선물로 주고 간 책이다. 당시에 나름 힘든 시절이었는데 이 책을 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볼까...했다가 보다말다보다말다를 반복한 끝에 근 2년만에야 완독하게 됐다.

좋은 말씀도 많고 기본적인 컨셉은 부처님 말씀을 기반으로 하는데 필요에 따라 가톨릭이나 기독교 사상도 제법 끌어다 쓴 책이었다. 개방적인 책이다.

「...따라서 희생보다 더 좋은 것은 '내가 너를 돕는 것이 나한테 좋다'는 마음가짐이에요. 이것을 '자리이타自利利他'라고 부릅니다. 자기를 이롭게 하는 '자리'와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가 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좋은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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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아틀란티스 - 세상을 보는 글들 6
프랜시스 베이컨 지음, 김종갑 옮김 / 에코리브르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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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단히 유명하기 짝이 없는 이 책.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이름이 현대에도 회자되게 만들어 준 필생의 역작. 나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오래 전에 책을 주문해놨고, 드디어 완독하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아틀란티스'가 유토피아의 일종을 제시한 책이라는 건 알고 있었으나, 이렇듯 가볍게 읽히는 SF소설인 줄은 모르고 있었다. 우선 이 아틀란티스는 진짜 아틀란티스가 아니고, 별개의 'The New' 아틀란티스였다. 지명부터가 다르다. 이름하야 벤살렘.

  베이컨 생전에 명확하게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던 호주 대륙을 모티브로 한 장소인데, 이곳에는 기적적으로 바르톨로메오와 한 천사에 의해 성경이 전파되어 있었고, 이에 따라 당시 유럽인 기준으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베이컨은 벤살렘의 둘레가 5,600마일인 것으로 설정했는데 호주의 크기를 절반 정도로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사실 도입부 대부분은 크게 의미없는 내용들이고 '솔로몬 학당'이라는 대학 내지는 연구기관의 성과를 열거한 후반부가 이 책의 핵심이다. 여기서 베이컨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상적인 과학의 성과들을 활자화시켰는데, 제법 그럴듯한 내용들이 많다. 800m에 달하는 초고층빌딩, 지하벙커와 거기서 생활하는 사람들, 생화학기술을 활용한 제약, 간척사업, 정수기, 인공강우, 심지어 GMO농작물도 나오고 동물로 생체실험하는 연구소, 각종 공장에다 태양력발전, 원자력발전, 전자 디스플레이 기술, VR기술, 신디사이저 같은 악기도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야말로 21세기의 모습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책은 급하게 마무리되고, 이름만 들어도 짭짤하고 기름진 저자처럼 다소 더부룩한 상태에서 끝난다.

  말 그대로 책 자체가 엄청난 사상을 담고 있거나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하거나 해보이진 않았다. 다만 베이컨은 자신의 이상향을 기술했고, 그게 당시의 기조를 잘 대변하는 모습이었을 뿐인듯 하다. 그래도 적중률이 상당히 높은 SF소설 아닌가. 그 점은 솔직히 감탄했다.

  벤살렘 사람들은 유럽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는데, 베이컨은 다음과 같이 유럽의 성 윤리를 비판하고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매춘이 공공연히 허용되는 유럽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혐오스럽게 바라봅니다. 유럽의 결혼제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불법적인 육욕의 예방책이 바로 결혼이 아니겠습니까? 자연스러운 육욕은 결혼으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사악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보다 수월한 방법이 있으면 결혼은 타기시 될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유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결혼이란 멍에에 묶이지 않고서 욕망을 실컷 채우겠다는 속셈이지요. 결혼을 해도 아주 늦게, 청춘의 힘과 패기가 시들어버린 다음에야 결혼을 합니다. 이들에게 결혼이란 한갓 거래에 불과합니다. 결혼을 통해서 자손에 대한 약간의 욕심을 채우거나, 인척 관계를 맺거나 명예를 얻고 싶어하는 것이지요.」

  이에 따라 베이컨은 45살에 14살의 아내를 맞이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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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 - 일본인이 밝히는 한국 호랑이 멸종의 진실
엔도 키미오 지음, 이은옥 옮김 / 이담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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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두 번의 올림픽 - 각 행사들의 마스코트였던 호돌이, 수호랑 등을 보면 한국인의 호랑이 사랑은 남달라 보인다. 하지만 돌연변이 백호인 수호랑, 앞발가락이 세 개인 호돌이를 보며, 무언가 결핍된 불완전한 감정이 연상되고 - 종국엔 그들이 호랑이에게 느끼는 감정이 과연 사랑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고는 한다. 왜냐, 정작 한국인이 사는 한반도에는 호랑이가 없다. 이.율.배.반.

 

 한국인은 범을 지키지 못했다. 아니, 지키기는커녕 철저히 말살하는 데에 몰두 내지는 동참했다. 아무르호랑이는 본디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에 걸쳐 분포하였는데, 유독 좁은 한반도에 많은 개체가 서식하였고 표범 또한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래도 범들은 지나치게 높지도 않고, 그렇다고 구릉이라기엔 애매하게 높은, 그런 산들이 끝없이 연결되어있는 한반도를 매우 사랑했던 것 같다.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지키는 일에 그 어떤 동물보다도 민감하며, 무리생활을 하면서 무기를 사용한다. 한반도에는 매우 많은 인간과 범이 공존하고 있었으며, 두 종이 사육 혹은 수렵하는 대상 역시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이에 虎患이라 부르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으며 영역을 침범 당한 인간은 범을 경외하면서도 수시로 잡아 가죽과 고기를 취했다. 중국 속담에 "조선인은 1년의 반을 호랑이를 쫓느라 보내고 나머지 반은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의 문상을 가느라 보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 책의 번역출판을 기획한 서울대 이항 교수 왈,

 

「...조선 초기에 이루어진 체계적인 호랑이 포획 정책이 조선시대 내내 지속되었다. 그 결과 호랑이 개체수는 15세기 말과 16세기 초에 급감하였고, 조선 말기까지 낮은 개체수를 유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에 결정타를 가한 것은 일제의 해수구제 정책이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 해수구제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한국인 사냥꾼이었다. 또 설사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 가정하더라도 우리는 이 땅에서 호랑이가 살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을 것으로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심지어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인이다. 글쓴이의 성품은 대단히 겸손하고 양심적이며, 왜국의 제국주의적 만행에 대해 매우 부끄러워하고 있다. 그야말로 개념이 꽉 찬 일본사람인데, 일본인 특유의 덕후性을 가지고 있어 한국 호랑이의 흔적을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1980년 한국에 야생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오보 기사를 접하고서 즉각 한국으로 넘어와 일단 창경원에 가보고, 그곳의 호랑이가 벵골호랑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실망하고, 신문사니 국립중앙도서관이니 온갖 곳을 뒤지기도 하고, 한국에 아는 인맥을 총동원하여 남한 지역의 마지막 호랑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야말로 인간승리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양반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목포 유달국민학교의 호랑이 박제, 경주 대덕산의 호랑이 - 그리고 그 호랑이에게 습격 당했다가 살아남은 할아버지 등등 이 모든 것들은 저자의 집요한 취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저자가 들쑤시고 다니지 않았으면 호랑이 박제니 호랑이한테 먹힐 뻔한 생존자니 모두 역사에 기록되지 못하고 잊혀졌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자가 한국에 왔던 80년대에만 해도 왜정 시절 초등교육 이상을 이수했던 어르신들이 많아서 일본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았다는 거다. 저자가 생면부지 노인네를 만나 말을 걸어도, 시골 깡촌 슈퍼 주인한테 말을 걸어도 한국에는 어디에든 한일 2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취재 도중 이런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장면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정작 한국인들은 버려두고 있었던 온갖 귀한 증언과 증거, 사진들을 수집하면서도 저자는 만족할 줄을 몰랐으며, 종국에는 끝판왕격인 자료들까지 찾아내고 만다.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총독부 통계연보』, 『조선휘보』, 기타 왜인 공무원이 쓴 논문 등등...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왜정 때 해수구제 현황은 모두 이 사람이 찾은 자료를 기초로 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1915년과 1916년 사이에 호랑이 24마리, 표범 136마리, 곰 429마리, 늑대 228마리 등을 잡아죽였고, 1919년부터 1924년 사이에는 호랑이 65마리와 표범 385마리를 사냥했다. 이어 1933년부터 1942년까지 10년간 호랑이 8마리, 표범 103마리, 곰 610마리, 늑대 1141마리를 도륙했다. 인류에게 자연보호와 종의 보존에 대한 의식이 조금이라도 일찍 생겼더라면 이러한 피의 살육은 벌어지지 않았을 테다.

 대충 생각해봐도 20세기 초에 한반도에서 호랑이, 표범, 곰, 늑대 사냥을 하지 않았더라면 호랑이는 대략 100여 마리, 표범은 7~800마리, 곰은(불곰인지 반달곰인지는 구분이 되어 있지 않다) 1000여 마리, 늑대는 - 번식력을 고려해 - 2000마리 정도는 살아 있지 않았을까? 아주 이상적인 생태계다. 이외에 멧돼지나 고라니, 사슴 같은 경우도 셀 수 없이 많은 개체가 사냥을 당했더라. 사슴은 한반도에서 멸종됐고 노루도 거의 없는 걸로 안다. 고로 산에 먹을 게 없으니 식육목 동물들이 민가 쪽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고, 인간 눈에 쉬이 띄어 더욱 쉽게 잡히는 악순환이 계속 되지 않았나 싶다. 그야말로 재앙이다(우리 할머니 젊었을 적에는 뒷산에서 매일 밤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한반도 남부로, 2마리의 호랑이를 찾아서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몇 년을 찾고 찾은 결론이 바로 일본의 침략이 이 나라의 호랑이 멸종에 깊이깊이 관여했다는 것이었다. 호랑이를 산신으로서 숭배해 온 이 나라에 많은 일본인들이 신식의 연발총과 軍銃을 들고 밀어닥쳐 메이지 후반(1897~1912년)부터 다이쇼(1912~26년)에 걸쳐서 금세 호랑이를 멸종시켜 버렸다.」

 

 저자는 죄책감에 일본 탓만 하고 있지만 그건 아니라고 본다.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토끼 같이 생긴 한반도를 호랑이라 칭하고, 무서운 스승을 호랑이 선생님이라 부르고, 각종 캐릭터 상품도 호랑이를 본떠 만들곤 하는 한국인들. 그들이 전혀 손대지 않고 있던 작업을 한 양심적인 일본인이 해냈다.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 책은 1986년에 출간되어 일본과 한국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고 하는데, 정작 한국어 번역본은 2009년에야 나왔다. 그릇된 일이다.

 

 책 자체가 수기 형식이라서 소소하니 쉽게 읽히는 책이었다. 해장국이나 산낙지 같은 거 먹으러 간 것도 다 써놨다. 멘트도 일본인스러웠다. '음, 이것은…. 꽤 맛있지 않은가!' 등등... 번역은 다소 일본어를 번역한 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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