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아틀란티스 - 세상을 보는 글들 6
프랜시스 베이컨 지음, 김종갑 옮김 / 에코리브르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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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단히 유명하기 짝이 없는 이 책.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이름이 현대에도 회자되게 만들어 준 필생의 역작. 나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오래 전에 책을 주문해놨고, 드디어 완독하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아틀란티스'가 유토피아의 일종을 제시한 책이라는 건 알고 있었으나, 이렇듯 가볍게 읽히는 SF소설인 줄은 모르고 있었다. 우선 이 아틀란티스는 진짜 아틀란티스가 아니고, 별개의 'The New' 아틀란티스였다. 지명부터가 다르다. 이름하야 벤살렘.

  베이컨 생전에 명확하게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던 호주 대륙을 모티브로 한 장소인데, 이곳에는 기적적으로 바르톨로메오와 한 천사에 의해 성경이 전파되어 있었고, 이에 따라 당시 유럽인 기준으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베이컨은 벤살렘의 둘레가 5,600마일인 것으로 설정했는데 호주의 크기를 절반 정도로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사실 도입부 대부분은 크게 의미없는 내용들이고 '솔로몬 학당'이라는 대학 내지는 연구기관의 성과를 열거한 후반부가 이 책의 핵심이다. 여기서 베이컨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상적인 과학의 성과들을 활자화시켰는데, 제법 그럴듯한 내용들이 많다. 800m에 달하는 초고층빌딩, 지하벙커와 거기서 생활하는 사람들, 생화학기술을 활용한 제약, 간척사업, 정수기, 인공강우, 심지어 GMO농작물도 나오고 동물로 생체실험하는 연구소, 각종 공장에다 태양력발전, 원자력발전, 전자 디스플레이 기술, VR기술, 신디사이저 같은 악기도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야말로 21세기의 모습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책은 급하게 마무리되고, 이름만 들어도 짭짤하고 기름진 저자처럼 다소 더부룩한 상태에서 끝난다.

  말 그대로 책 자체가 엄청난 사상을 담고 있거나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하거나 해보이진 않았다. 다만 베이컨은 자신의 이상향을 기술했고, 그게 당시의 기조를 잘 대변하는 모습이었을 뿐인듯 하다. 그래도 적중률이 상당히 높은 SF소설 아닌가. 그 점은 솔직히 감탄했다.

  벤살렘 사람들은 유럽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는데, 베이컨은 다음과 같이 유럽의 성 윤리를 비판하고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매춘이 공공연히 허용되는 유럽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혐오스럽게 바라봅니다. 유럽의 결혼제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불법적인 육욕의 예방책이 바로 결혼이 아니겠습니까? 자연스러운 육욕은 결혼으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사악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보다 수월한 방법이 있으면 결혼은 타기시 될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유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결혼이란 멍에에 묶이지 않고서 욕망을 실컷 채우겠다는 속셈이지요. 결혼을 해도 아주 늦게, 청춘의 힘과 패기가 시들어버린 다음에야 결혼을 합니다. 이들에게 결혼이란 한갓 거래에 불과합니다. 결혼을 통해서 자손에 대한 약간의 욕심을 채우거나, 인척 관계를 맺거나 명예를 얻고 싶어하는 것이지요.」

  이에 따라 베이컨은 45살에 14살의 아내를 맞이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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