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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내 마음 - 세계의 산문 3-004 ㅣ (구) 문지 스펙트럼 4
샤를 보들레르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일전에 악명 높은Notorious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구해다 읽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책이 완역본이 아닌 온갖 칼질을 가한 시선집임을 알고 나는 보들레르와 같은 분노에 찼었다.
설마 이건 아니겠지, 하고 이 책을 샀다. 다행히 아니었다.
이건 보들레르가 책 내려고 준비하던 습작 모음집이다. 어떻게 보면 개인적인 메모들에 다름 아닐 수도 있는 토막글들이었는데, 그래서 이 괴짜 꼴통마초 아저씨의 머릿속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보이기도 한다.
일단 신에 대해 불경스러운 사람이고, 벨기에를 혐오하며, '댄디'를 좋아하고 정작 지는 별로 일도 안 하면서 강박적으로 노동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곤 하더라.
그리고 참 부정적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실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이야기들을 여기저기 읊어놓았다. 예를 들면,
「한 사내가 앓아 누우면, 거의 모든 친구들은 그가 죽는 것을 보려는 은밀한 욕망을 품게 된다. 어떤 이들은 환자가 자기들보다 더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려 하고, 다른 이들은 임종의 고통을 연구하려는 사심 없는 희망에서 그러하다...」
와 같은 이야기. 우리들 중 누군가는, 깊이 친하지는 않은 사람에 대하여 저런 식의 태도를 취한 적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전술했듯 이 사람은 꼴통 마초이면서도 성매매를 혐오하는 척(?)을 한다. 그래서 이와 같이 말한다.
「...자신을 소모할 권리를 얻기 위해서 돈을 치르는 곳은 딱 두 군데뿐인데, 공중 화장실과 창녀들에게이다...」
그리고 자신이 글쟁이로서 무언가 업적을 남겨야한다는 강박에도 시달린다.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상투어를 하나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재능이다.
나도 상투어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혐오하는 이 양반은 또한 불경스럽기까지 한데, 이게 또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랑을 없앨 수 없자, 교회는 적어도 그것을 소독하기를 원해서 결혼 제도를 만들었다.
※ 이렇게 지저분한 자리에 자궁이 있다는 사실에서 그는 적어도 사랑에 반대하는 섭리의 악의적 풍자를 간파했고, 생식의 방법에 있어서는 원죄의 표식을 짐작할 수도 있었겠다. 사실 우리는 배설 기관을 통해서만 사랑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가장 매음적인 존재,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존재인 신이다. 왜냐하면 그는 각 개인의 지고한 친구이며, 또 그는 고갈되지 않는 사랑의 공동 저장소이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굶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르게 될 것이오"라고 말할 때, 그는 확률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까칠한 아저씨의 메모장 잘 봤다. 에드가 앨런 포의 열렬한 광팬이었던 저자는 이 메모장을 기초로 하여 책도 찍을 생각이었는데, 심지어 '벌거벗은 내 마음'이라는 제목조차 포가 "자신의 이름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은 이 제목으로 책을 한 권 내면 된다고 언급한 걸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어찌 보면 목적 달성한 것 같다. 보들레르 정도면 불멸의 이름이다.
「...시간은 사용될 때만 잊혀질 수 있다...」
「...사랑에 있어 성가신 것은, 사랑은 공모자 없이는 불가능한 범죄라는 것이다.」
「젊은 작가가 자신의 첫 교정쇄를 고치는 날, 그는 막 처음으로 매독에 걸린 학생처럼 우쭐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