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 잃어버린 도시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6
클로드 보데 지음 / 시공사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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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어 보고 조금 어이가 없었다. 명색이 마야에 관한 책이면 마야의 역사나 유물, 신화 등에 대해 집중 조명을 하는 게 당연한 일일진대, 저자는 순전히 서양인의 관점에서 미개 내지는 신비한 문명 - 마야의 유적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들을 이야기하는 데에 지면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이는 마치 『한국; 동방의 횃불』 식으로 제목을 단 책이 정작 한국의 역사나 풍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만(?) 하고 대부분의 내용을 19세기 말에 조선에 가서 생활했던 서양인들의 수기에서 인용해 채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야에 대해 알고 싶어서 사 본 책이었는데, 아무래도 다시 다른 책을 구해봐야 될 것 같다. 

 서두부터 험담만 늘어놓았지만, 사실 책을 읽어보니 마야에 대해서 그렇게 자세하게 쓸만한 내용도 충분치는 않아 보였다. 왜냐하면 마야는 남긴 문헌이 극히 적으며, 그 후손들조차 저 유적은 신들이 살다가 버리고 떠난 것이라는 등의 전설 같은 이야기나 하고 앉았으니 영 단서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비교적 최근까지 집적된 연구 성과도 마야 문명의 정체에 대해 썩 만족할만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책 내용의 대부분이 서양 정복자, 고고학자, 여행가의 모험담으로 점철되어 있어서 정작 마야의 풍습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정보 밖에 얻지 못했는데, 그나마 내가 캐치한 바로 - 마야인들은 잔인한 성향을 지니고 있었으며, 자해 의식도 있었고, 생각보다 대단한 문명은 아니었다는 판단이 섰다. 유명한 계단식 피라미드는 그렇게 거대한 규모도 아니고(이집트랑은 비교 자체가 불가할 듯) 문자 체계는 - 보고 있자니 웃음 밖에 안나오는 수준이었다.
 말 나온 김에 여기서 마야의 문자를 보고 내가 느낀 바를 좀 적어보겠다. 마야의 문자는 상형문자다. 책을 보아하니 뜻글자인 것 같은데, 그 문자는 문자가 아니다. 그러니까, 문자가 널리 통용될 수 있는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한 글자 한 글자가 대단히 복잡한(한마디로 그림) 구조로 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문자는 대부분이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이를테면 한글이 그렇다). 글쎄, 아직도 그림으로 된 문자가 존재할는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메이저의 위치에 있는 문자들은 전부 다 선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마야 문자는 점, 선, 획이 아니라 그 자체가 매우 복잡한 그림이다. 만약 획으로 따진다면 간단한 글자라도 30획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복잡한 건 100획에 육박할 듯). 그걸 어느 천년에 쓰고 앉았나? 일견 신비로워 보이긴 하지만 실용성은 전혀 없는 문자였다.
 사실 내가 이 책에서 얻고자 한 바는 다음과 같은 류의 정보였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호박씨나 호박을 마야인은 기가 막히게 맛있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마야인은 사랑의 슬픔에 대해서도 잘 간파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야일(yail)이라는 단어는 사랑과 고통을 동시에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역으로 서양인들은 호박씨나 호박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번역도 그리 충실한 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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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생애 에버그린북스 10
로맹 롤랑 지음, 이휘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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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 역경을 딛고 일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항상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분명 베토벤은 역경을 딛고 일어난 사람인데, 겉으로 보기에는 항상 자기는 불행하다며 신세한탄을 하여 그가 과연 역경을 이겨낸 건지 역경에 빠져서 허우적댄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글쎄, 내가 봤을 때는 허우적대다가 승화시키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허우적대고 그런 것 같다(?). 그만큼 베토벤은 감정의 굴곡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질풍노도 베토벤의 인생에 전제로 깔려 있는 것은 '불행'이었다. 

「"그의...소리를 내어 웃는 웃음은 듣기 싫고 괄괄하고 얼굴까지 찡그리는 웃음이었으며, 더구나 늘 짧게 끊어져 버리는 웃음이었다" - 그것은 기쁨을 자주 가져 보지 못한 사람의 웃음이었다. 그가 습관적으로 띠던 표정은 멜랑콜리였다. "사라질 수 없는 슬픔"이었다.」 

 그가 불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돈벌이를 위하여 혹사 당하였으며, 모친을 일찍 여의었고, 연애를 하는 족족 실패하였던 것만 봐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귀까지 멀어버렸다. 명색이 작곡가인데 귀머거리가 된 그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이는 마치 사격선수가 맹인이 된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베토벤은 많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였는데, 귀가 안 들리기 시작하자 그 사실을 들키기 싫어서 사람들 만나는 것을 회피하였다. 스트레스가 엄청났을 것이다.
 사람과 사교를 하지 못하게 된 베토벤은 자연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으며, 자연에서 영감을 많이 얻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천성적으로 남을 돕는 일을 좋아했다. 

「"타인을 위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어릴 때부터 나의 최대의 행복이며 즐거움이었다"(1824년)」 

 나는 베토벤의 이미지 - 괴테와의 일화, 영웅교향곡의 일화 등 - 를 고려했을 때 그가 남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선량한 사람이라기 보다는 고집불통이고 자존심이 센 난봉꾼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완전히 잘못 짚은 것이었다. 알고 보면 베토벤은 항상 남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입장이었다. 어려서는 가족에게 그랬고, 젊어서는 애인에게 그랬고, 늙어서는 조카(양아들)에게 그랬다. 그는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 위하여 작곡을 한다고 분명하게 밝히기도 하였다. 대단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할 자격이 있다. 

「"괴로움을 뛰어넘어 기쁨으로!"(Durch Leiden Freude)」 

 오탈자가 좀 있었고 원서가 워낙 문장이 난해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도 번역을 일부러 그렇게 했는지 아무튼 읽기가 좀 어려웠다. 원래부터 베토벤은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고전 음악가였는데, 이제 그 위치는 확고부동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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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10,000일의 전쟁
마이클 매클리어 지음, 유경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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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캐나다 사는 기자가 쓴 책인데, 베트남전의 개전, 진행, 종료까지 - 가급적 시간순으로 하여 배경과 요소 등을 일일이 짚어내어 보여주고 있다. 꽤 성실한 책이었다.
 베트남전의 전체적인 양상 따위는 이미 알고 있던 바가 있으므로 그렇게 특별한 것은 없었다. 저자는 책의 많은 지면을 미국의 정치인들이 어떻게 전쟁에 개입하게 되었고, 그들이 이후 어떻게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였는지에 대하여 서술하는 데에 할애하고 있다. 그러한 정치적 배경들에 대하여 꽤나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도 하나의 소득이다(물론 거의 다 금방 까먹었다).
 사실 미국에게 있어 베트남전은 처음부터 꼬인 전쟁이었다. 케네디는 암살 당하기 전 베트남에 정부 관료 두 명을 파견하여 그들에게 상황을 알아보고 미국이 취해야 할 적절한 입장을 제시해줄 것을 요구했는데, 이 에피소드는 마치 선조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보고 오게 한 두 조선 관리들의 이야기와 흡사했다. 

「크루랙 장군은 모든 일은 잘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중략)
 "디엠은 국민들에게 많은 지지를 얻고 있었으며 군인들의 사기도 높았다...(중략)"
 멘던홀은 상반된 내용을 보고했다.
 "디엠은 전혀 인기가 없었다. 정부가 아주 위험스러운 상태였다...(중략)"
 ...듣고 난 케네디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물었다.
 "당신 두 사람은 같은 나라를 다녀온 거죠?"」 

 저자는 멘던홀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답시고 베트남전에 멋모르고 개입했다가 완전히 발렸다. 베트콩(Viet Cong; Vietnamese Communist의 경멸 섞인 약어)들은 엄청나게 강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단결력이 대단했다. 거기다가 - 나는 미처 몰랐던 사실인데 - 소련과 중국의 지원물자를 무한히 제공받고 있었다. 베트남전을 시작한 존슨 대통령은 이른바 '북폭'이라고 해서 북베트남 군사, 산업시설들을 수도 없이 폭격하여 쑥대밭을 만들어 놓았으나, 베트콩들은 자기들이 생산 안해도 얼마든지 소련과 중국이 물자를 주었다는 이야기다. 아무튼 베트콩이 호치민을 중심으로 단결이 매우 잘 되어 있었던 반면 남베트남은 완전 나가리 국가였다. 

「...해병대 위생병 잭 매클로스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번은 다낭에 간 일이 있었다. 18~19세 정도의 남베트남 청소년들이 일제 혼다 오토바이를 멋지게 타고 다니는 것을 봤다. 산화해 버린 내 동료들이 생각이 났다. 도대체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이 녀석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라고 우리를 이곳에 불러 놓고, 자기들은 혼다 오토바이나 타고 다닌단 말인가..."
 해답은 간단했다. 부패의 원인은 사회 전체적으로 '전쟁에서 이겨야만 된다'는 공감대와 동기 부여가 안 되어 있었던 탓이다.」 

 현실이 이러다보니 남베트남과 미국 사이도 여기저기서 금이 가곤 하였다. 이렇듯 워낙 부패하고 타락한 정부를 돕다보니 자연 미군도 기강이 해이해지는 모습을 많이 보이곤 하였다. 다음의 적군 전사자 부풀리기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종종 '전사자 숫자놀음'은 코미디나 다름없는 경우가 있었다. 필라델피아의 달동네에서 성장한 맷 마틴 상병은 해병대에 지원 입대하여...(중략)...이렇게 말했다.
 "육군이건 해병대건 오래 근무한 사람일수록 전사자 부풀리기에 능숙했다. 한번은 대령에게서 걸려온 무전을 옆에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무척 흥분한 상태였다. 우리는 일부러 포탄 소리가 무전기에 잘 들리도록 했기 때문에 그는 크게 소리쳤다. '전사자가 몇 명인가? 적군 전사자가 몇 명인가?' 우리는 대령과 같은 마을에서 전투를 하고 있었다. 대령은 많은 전사자를 원했다. 우리와 함께 있던 소위가 무전병에게 성큼성큼 다가서더니 '300명 이상이라고 해!'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무전병이 '딱 떨어지는 숫자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중위가 '그러면 311명이라고 말해 줘!'라고 소리질렀다. 무전병은 그대로 불러줬다. 대령은 '좋아!'를 큰 소리로 외쳤다. 전사자가 311명으로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격전의 현장을 체험한 맷 마틴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자.
 "우리는 무차별 사격만 계속했었고, 실제로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지프가 전복하여 소위 1명이 죽은 것이 전부였다. 적은 1명도 사살하지 못하고 아군 초급장교 1명이 사고사했을 뿐이었다..."」

 이 외에도 미군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었다. 일단 지휘하는 대통령과 그 보좌관들부터가 문제였고, 병사들도 복무기간이 1년밖에 되지 않아서 경험자가 부족했다. 거기다가 병사들 평균 연령이 19세였다고 하는데, 내가 군대 갔을 때가 딱 만 19세 되자마자 였으니까 그렇게 어리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 2차 대전 때 미군 평균 연령이 26세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까 어린 것이 맞는 것 같다. 사실 저 나이면 정신적으로는 청소년이다. 사실 26세 정도는 돼야 전투력이 좀 살아날 듯도 하다. 또한 전술했던 전사자 부풀리기에 이어 더욱 심한 현상들도 일어났는데, 바로 극단적인 하극상이 그것이다.

「인기 없는 장교에게 종종 현상금을 거는 경우가 있었으며, 액수는 대개 50달러에서 1000달러 수준을 오르내렸다. 미군 병사들은 여러 명이 용돈을 모아 현상금을 마련했다...
 ...상원 자료에 따르면, 1969년부터 1970년 사이에 살해나 협박용까지 포함하여 미군 부대에서 수류탄 사고가 790회 발생하여 83명의 장교가 목숨을 잃었다. 이 숫자에는 사병들이 칼이나 총으로 살해한 장교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특무상사와 갈등을 겪고 있던 친구 몇 명이 있었다. 그 상사는 나이가 많은 만큼 경력도 다양했고 전투에서도 군인 정신이 투철했다. 그는 전쟁을 좋아했다. 심지어 전투 현장에서조차도 "해병대 복장은 이러해야 된다'는 등 꼼꼼하게 챙기는 성격이어서 청결 정돈을 항상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살아남은 부대원들이 그 상사를 발견했을 때, 등 뒤에서 근접 사격을 한 듯 총구멍이 많이 나 있었다.적의 총에 맞은 것이 아니라 부대원들이 뒤에서 쏘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중대원들도 항상 전쟁이 난다면 일단 간부들부터 쏴죽이겠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실제 전쟁이 나면 진짜로 그러는 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쟁은 몇 년을 끌었으나 답이 안 나왔고, 매스컴은 계속하여 전쟁의 참상을 보도했다. 반전데모는 미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시위대에게 발포하는 일도 발생했다. 결국 미군은 철수하게 되었다.
 미군의 철수는 평화협정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남북베트남이 휴전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삼 년 후에 북베트남은 협정을 파기하고 전격 침공에 나섰다. 앞서 말했듯 남베트남은 나가리 국가였다. 베트콩이 남베트남을 유린했지만 미국은 더이상 간섭하지 않았(못했)다. 

 그야말로 인간 승리의 드라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가장 대표적인 표본이 베트남전이다. 하지만 그들이 염원하는 통일을 이루었다고 해서 그 사이에 끼어 죽고 다친 수백만 명의 희생이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베트남인이라면 차라리 조국 통일에 목숨을 바쳤느니 하면서 위안을 삼으면 되겠지만, 미국인이나 한국인 같은 경우는 완전히 개죽음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베트남전의 교훈도 자명하다.
 전쟁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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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whairis 2010-06-08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잘썼네요. 사 봐야 겠다는 마음이 일었으니깐.
[전쟁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된다.] 공감!!
 
히틀러와 홀로코스트 크로노스 총서 8
로버트 S. 위스트리치 지음, 송충기 옮김 / 을유문화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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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히 불쾌한 책이다. 책의 소재도 그렇고 저자(유대인이다)의 편향된 - 한 맺힌 듯한 - 비난적인 어조에다 역자의 어설픈 번역문까지 완전히 삼박자로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사실 책의 저자 프로필을 볼 때부터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히틀러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유대인이 쓴다면 그게 과연 객관적인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책을 쓴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제삼자의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꼼꼼한 사례 제시나 방대한 양의 참고문헌은 저자가 이 방면에 상당히 연구를 많이 한 사람임을 증명해 주는 듯했다.
 나는 유대인들이 원래부터 기독교인들에 의해 박해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니 그 역사는 예수의 죽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오래된 것이었다. 옛부터 유대인들은 서양인들에 의해 배반자이며 세속적이고, 그 속을 알 수 없는 자들로 치부되어 왔다고 한다. 저자는 여기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으나 그러한 평가를 받게 된 데에는 자신들의 잘못도 분명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러한 잘못 때문에 그들 모두가 학살될 이유는 없지만 말이다.
 앞서 내가 저자의 편향된 시각과 어조에 대하여 문제 삼았는데, 다음과 같은 부분을 보면 분명 내 말에 수긍이 갈 것이다.

「1933년에 유대인들은 독일 전역을 통틀어 의사 가운데 11퍼센트, 법률가 가운데는 16퍼센트를 점하고 있었다 - 대도시에서는 이 수치가 훨씬 더 높았을 것이다. ...이는 분명 직업상의 질투와 시기심에 의해 촉발된 것이었다.」

「...감옥에서 히틀러는 《나의 투쟁Mein Kampf》을 저술했는데, 펜으로 아무렇게나 휘갈겨 써서 읽기 어렵고 조잡스런 이 책은 나중에 나치운동의 성서이자 반유대주의의 고전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너무 잘났기 때문에 독일인들의 질투를 받아 그것이 기존의 반유대주의와 맞물려 극단적인 곳으로 나아갔으며, 히틀러는 '감옥에서' 9개월의 수감 기간 동안에 '아무렇게나 휘갈겨' 쓰지 않은, 정리정돈 된 책조차 완성하지 못하는 무능한 인간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9개월 동안 얼마나 깔끔한 책을 써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어쨌든 이러한 반유대주의 이데올로기 - 라고 할 가치나 있을지 모르겠다 - 는 나치즘의 핵심적인 요소였고 히틀러는 젊었을 때부터 유대인은 멸종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조차도 '볼셰비즘과 유대인에 대한 전쟁'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었다. 이건 뭐 지나치게 강박적이고 싸이코 같다. 평균적인 독일인 장교가 유대인을 어떻게 생각하였는지는 다음을 보면 알 수 있다. 

「...유대인의 번식을 막기 위해서 근로 유대인 남성들을 즉각 거세시켜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여성이 임신하게 된다면, 그녀는 제거되어야 한다.」

 유대인을 사람이 아닌 금수로 보고 있는 것이다. 당시 독일은 정책적으로 비유대인인 사람이 유대인과 섹스하는 것을 아주 엄격하게 금했다. 금수와는 피를 섞을 수 없다는 논리다.
 나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이탈리아가 서로 동맹국이었고, 무솔리니가 파시즘의 대가인만큼 이탈리아도 유대인 학살에 적극 가담하였으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실은 이와 반대였다. 다음은 1934년도에 무솔리니가 한 말이다.

「나는 히틀러를 잘 압니다. 그는 멍청이인 데다가 불량배, 그것도 미친 불량배이고, 비위에 거슬리는 공론가이지요. 그의 말을 듣는 것은 정말 고역입니다. 당신들은 히틀러보다 훨씬 강합니다. 히틀러가 남긴 흔적이 사라질 때면, 유대인들은 여전히 위대한 민족으로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나라 군대의 대명사인 이탈리아 군대가 유대인들을 어떻게 대하였는지도 나와 있다. 

「게으름, 부패, 비효율성, 그리고 혼란스러운 무질서의 대명사인 이탈리아인의 악습이 홀로코스트의 와중에서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명목으로 법을 자주 융통성 있게 처리함으로써 미덕이 되었다...」 

 저자는 유대인에다 예루살렘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이다. 그가 이스라엘인인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자가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서는 온갖 한탄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입주로 인하여 쫓겨난 팔레스타인 원주민(이들이야말로 '원주민'이다)들에 대해서는 일말의 배려조차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팔레스타인이 더 많은 유대인들의 피난처가 되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 - 배려(?)를 해주지 않은 - 영국과 미국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1942년 7월 5일 처칠은..."유대인에 적대적인 아랍인들의 편을 들어주려는 선입견"에 빠지는 것은 잘못이라고 썼다...」 

 저자가 처칠의 이 발언을 대단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은 명약관화하다. 그렇게 잘났으면 다른 나라 이민 들어가서 노력해서 잘 살면 되지 도대체가 2천 년 전에 떠났던 팔레스타인에 느닷없이 빽(영국)을 등에 업고 나타나서 원주민들 쫓아내고 나라 세우는 것은 어디 법도란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2천 년 전에 살았던 요동과 산동반도를 돌려받아야 한단 말인가?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 때 고생하고 힘들었던 건 인정한다. 하지만 아무리 박해받고 학살을 당했다 해도 잘 살던 사람들 내치고 그 자리에 들어앉는 건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도적질 당했다고 도적질 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저자는 홀로코스트의 동기를 아주 복잡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일단 기본적인 전제로는 기존 기독교 사회내에서의 반유대주의를 깔고 있다. 이러한 설명은 합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학살수용소 관계자들은 학살에 맛을 들인, 잔인무도하기 짝이 없는 작자들도 있었고 겉보기에는 대단히 신사적이고 매너 있는 사람처럼 보이면서 학살을 사무적으로 처리하는 작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세상 어딜 가나 똑같듯이 유대인들 중에서도 나치에 아부하여 동족들을 앞장 서 괴롭혔던 친일파 같은 놈들도 많이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생물학적인 인종에 근거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적 · 사무적 · 전문적으로 학살한 유일무이한 현상에 대한 책을 읽고 나니 - 남는 건 더러운 기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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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i 2009-01-03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동물의 왕국에서 짝짓기를 마친 후 홀로 남겨진 미래의 여왕개미가 홀홀단신으로 어떻게 하나의 거대한 개미왕국을 건설하는가 하는 다큐를 본 적이 있습니다. 번성하던 그녀의 왕국은 이웃 개미왕국의 침입을 받아 초토화되고 맨 마지막으로 여왕개미가 지상으로 끌어올려져 적군에 둘러쌓여 목이 잘립니다. 영토싸움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우리는 휴머니즘을 다시 정의해야 하지 않은지... 인간은 지구 생태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잔인하지도, 유일무이하게 고상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이방인 범우문고 71
A.까뮈 지음 / 범우사 / 198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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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저기 서평 같은 것을 보면 이 책의 주인공인 뫼르소에 대해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된 캐릭터라는 점을 많이들 이야기하는 것 같던데, 나에게는 그 점보다는 주인공이 - 모든 일에 - 권태를 심하게 느꼈다는 점이 더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뫼르소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는 논리적 일관성은 없을지라도 그 행동거지를 창출해내는 기본적인 감정 - 권태감 - 이 '일관'적으로 뫼르소에게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가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낸 것, 어머니 장례식에서의 태도, 친구들과의 사귐, 심지어는 살인행위까지도 전부가 권태 - 무기력까지 포함 - 로부터 비롯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뫼르소가 마리와 사귀면서도, 청혼을 받아들이면서도 끝까지 마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사랑을 하게 되거나 사랑을 인정하게 되었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모든 변화에 대처하기가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는 직장 상사의 - 파리로 보내주겠다는 제의도 귀찮아서 거절한다. 나중에는 자기자신에 대한 변호조차 귀찮고 따분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는 가끔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되게시리 적극적인 사람이 될 뻔도 하지만 내재하고 있는 권태가 너무 강해서 그 충동(?)을 눌러 버리곤 한다.

「그래서 그러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나는 이따금 끼여들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변호사가 "잠자코 있어요. 그것이 당신 사건에 유리해요" 하고 내게 말하곤 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제쳐놓고 이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모든 것은 내 개입이 없이 전개되었다. 내 운명은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결정되어 갔다. 때때로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로막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니 도대체 누가 피고입니까? 피고라는 것은 중요한 겁니다. 나도 할 말이 있단 말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무 할 말도 없었다.」 

 "내 운명은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결정되어 갔다"는 말이 이 소설의 키워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을 능가하는 것은, 거기에 반발하여 무언가를 하려던 주인공이 그것을 하려는 일을 포기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나서 말이다. 

 내가 보기에도 뫼르소라는 인간은 정말 구역질 나는 놈이었다. 그래도 그는 일단 사람이고, 감정이 대단히 건조하지만 정신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경우 그나마 동정의 여지가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을 무고해서 죽이는 검사는 또 다른 무언가를 상징하는 듯 했다.
 마리의 뫼르소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도 조금 이상하게 여겨졌다. 뫼르소는 그녀의 면전에서 사랑하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 해놓고도 그녀와 아주 여러 번 섹스를 하고 결혼을 응낙하는 등 파렴치한 행태를 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는 뫼르소를 사랑한다. 이는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른 후에도 지속된다. 이게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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