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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 - 일본인이 밝히는 한국 호랑이 멸종의 진실
엔도 키미오 지음, 이은옥 옮김 / 이담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두 번의 올림픽 - 각 행사들의 마스코트였던 호돌이, 수호랑 등을 보면 한국인의 호랑이 사랑은 남달라 보인다. 하지만 돌연변이 백호인 수호랑, 앞발가락이 세 개인 호돌이를 보며, 무언가 결핍된 불완전한 감정이 연상되고 - 종국엔 그들이 호랑이에게 느끼는 감정이 과연 사랑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고는 한다. 왜냐, 정작 한국인이 사는 한반도에는 호랑이가 없다. 이.율.배.반.
한국인은 범을 지키지 못했다. 아니, 지키기는커녕 철저히 말살하는 데에 몰두 내지는 동참했다. 아무르호랑이는 본디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에 걸쳐 분포하였는데, 유독 좁은 한반도에 많은 개체가 서식하였고 표범 또한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래도 범들은 지나치게 높지도 않고, 그렇다고 구릉이라기엔 애매하게 높은, 그런 산들이 끝없이 연결되어있는 한반도를 매우 사랑했던 것 같다.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지키는 일에 그 어떤 동물보다도 민감하며, 무리생활을 하면서 무기를 사용한다. 한반도에는 매우 많은 인간과 범이 공존하고 있었으며, 두 종이 사육 혹은 수렵하는 대상 역시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이에 虎患이라 부르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으며 영역을 침범 당한 인간은 범을 경외하면서도 수시로 잡아 가죽과 고기를 취했다. 중국 속담에 "조선인은 1년의 반을 호랑이를 쫓느라 보내고 나머지 반은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의 문상을 가느라 보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 책의 번역출판을 기획한 서울대 이항 교수 왈,
「...조선 초기에 이루어진 체계적인 호랑이 포획 정책이 조선시대 내내 지속되었다. 그 결과 호랑이 개체수는 15세기 말과 16세기 초에 급감하였고, 조선 말기까지 낮은 개체수를 유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에 결정타를 가한 것은 일제의 해수구제 정책이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 해수구제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한국인 사냥꾼이었다. 또 설사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 가정하더라도 우리는 이 땅에서 호랑이가 살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을 것으로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심지어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인이다. 글쓴이의 성품은 대단히 겸손하고 양심적이며, 왜국의 제국주의적 만행에 대해 매우 부끄러워하고 있다. 그야말로 개념이 꽉 찬 일본사람인데, 일본인 특유의 덕후性을 가지고 있어 한국 호랑이의 흔적을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1980년 한국에 야생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오보 기사를 접하고서 즉각 한국으로 넘어와 일단 창경원에 가보고, 그곳의 호랑이가 벵골호랑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실망하고, 신문사니 국립중앙도서관이니 온갖 곳을 뒤지기도 하고, 한국에 아는 인맥을 총동원하여 남한 지역의 마지막 호랑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야말로 인간승리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양반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목포 유달국민학교의 호랑이 박제, 경주 대덕산의 호랑이 - 그리고 그 호랑이에게 습격 당했다가 살아남은 할아버지 등등 이 모든 것들은 저자의 집요한 취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저자가 들쑤시고 다니지 않았으면 호랑이 박제니 호랑이한테 먹힐 뻔한 생존자니 모두 역사에 기록되지 못하고 잊혀졌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자가 한국에 왔던 80년대에만 해도 왜정 시절 초등교육 이상을 이수했던 어르신들이 많아서 일본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았다는 거다. 저자가 생면부지 노인네를 만나 말을 걸어도, 시골 깡촌 슈퍼 주인한테 말을 걸어도 한국에는 어디에든 한일 2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취재 도중 이런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장면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정작 한국인들은 버려두고 있었던 온갖 귀한 증언과 증거, 사진들을 수집하면서도 저자는 만족할 줄을 몰랐으며, 종국에는 끝판왕격인 자료들까지 찾아내고 만다.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총독부 통계연보』, 『조선휘보』, 기타 왜인 공무원이 쓴 논문 등등...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왜정 때 해수구제 현황은 모두 이 사람이 찾은 자료를 기초로 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1915년과 1916년 사이에 호랑이 24마리, 표범 136마리, 곰 429마리, 늑대 228마리 등을 잡아죽였고, 1919년부터 1924년 사이에는 호랑이 65마리와 표범 385마리를 사냥했다. 이어 1933년부터 1942년까지 10년간 호랑이 8마리, 표범 103마리, 곰 610마리, 늑대 1141마리를 도륙했다. 인류에게 자연보호와 종의 보존에 대한 의식이 조금이라도 일찍 생겼더라면 이러한 피의 살육은 벌어지지 않았을 테다.
대충 생각해봐도 20세기 초에 한반도에서 호랑이, 표범, 곰, 늑대 사냥을 하지 않았더라면 호랑이는 대략 100여 마리, 표범은 7~800마리, 곰은(불곰인지 반달곰인지는 구분이 되어 있지 않다) 1000여 마리, 늑대는 - 번식력을 고려해 - 2000마리 정도는 살아 있지 않았을까? 아주 이상적인 생태계다. 이외에 멧돼지나 고라니, 사슴 같은 경우도 셀 수 없이 많은 개체가 사냥을 당했더라. 사슴은 한반도에서 멸종됐고 노루도 거의 없는 걸로 안다. 고로 산에 먹을 게 없으니 식육목 동물들이 민가 쪽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고, 인간 눈에 쉬이 띄어 더욱 쉽게 잡히는 악순환이 계속 되지 않았나 싶다. 그야말로 재앙이다(우리 할머니 젊었을 적에는 뒷산에서 매일 밤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한반도 남부로, 2마리의 호랑이를 찾아서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몇 년을 찾고 찾은 결론이 바로 일본의 침략이 이 나라의 호랑이 멸종에 깊이깊이 관여했다는 것이었다. 호랑이를 산신으로서 숭배해 온 이 나라에 많은 일본인들이 신식의 연발총과 軍銃을 들고 밀어닥쳐 메이지 후반(1897~1912년)부터 다이쇼(1912~26년)에 걸쳐서 금세 호랑이를 멸종시켜 버렸다.」
저자는 죄책감에 일본 탓만 하고 있지만 그건 아니라고 본다.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토끼 같이 생긴 한반도를 호랑이라 칭하고, 무서운 스승을 호랑이 선생님이라 부르고, 각종 캐릭터 상품도 호랑이를 본떠 만들곤 하는 한국인들. 그들이 전혀 손대지 않고 있던 작업을 한 양심적인 일본인이 해냈다.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 책은 1986년에 출간되어 일본과 한국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고 하는데, 정작 한국어 번역본은 2009년에야 나왔다. 그릇된 일이다.
책 자체가 수기 형식이라서 소소하니 쉽게 읽히는 책이었다. 해장국이나 산낙지 같은 거 먹으러 간 것도 다 써놨다. 멘트도 일본인스러웠다. '음, 이것은…. 꽤 맛있지 않은가!' 등등... 번역은 다소 일본어를 번역한 티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