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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야생 동물 대탐험 ㅣ BBC 자연사 다큐멘터리 3
팀 헤인즈 지음, 김혜원 옮김, 대런 홀리 그림 / 사이언스북스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책은 BBC에서 방영된 다큐와 연계되어 있었으며, 덕분에 다큐에 쓰인 각종 그래픽들이 올컬러 참고사진으로 실려 있었다. 예부터 도감 볼 때 그림보는 맛이 빠질 수 없다. 그 점은 썩 만족스러웠다.
일단 고생물학이야말로 진정 간학문적 연구가 필요한 학문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지구온난화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기실 지구는 여전히 추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공룡 멸종 후 에오세 초기에는 지구 평균 기온이 28도에 달했다. 심지어 필자는 이렇게 적기도 한다. "우리는 이 냉랭한 세상을 지극히 정상적으로 여길지도 모르지만 이전에 지구상을 활보했던 대부분의 동물들에게는 우리가 대단히 불행해 보일 것이 틀림없다". 물론 현재의 온난화는 비자연적인 영향을 받아 진행되고 있으므로 문제이긴 하다.
기후 변화에 따라 식물들도 진화했다. "공룡들이 만약 시간 여행을 한다면 이들을 정말로 혼란스럽게 할 것들은 바로 색깔과 냄새다. 정글은 화려한 꽃과 열매로 가득 차 있을 뿐만 아니라 아침의 열기 속에 향내까지 강렬하다. 양치류와 침엽수가 번성하던 초록과 갈색의 공룡 세계는 이제 영원히 사라졌다". 또한 '풀'이라는 존재가 예상 외로 지구상의 앗세이였다. 나는 풀이 나무보다도 먼저 생겼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풀은 2천만 년 전쯤 올리고세에 이르러서야 처음 등장한 생물이었다. "초식동물에게 초원은 광범위한 면적에 걸친 먹이의 끊임없는 재생을 의미하므로 뜻밖의 횡재나 다름없었다. 여기서 끊임없이 재생된다는 말은 아무리 뜯어먹어도 뿌리에서 계속 다시 자라난다는 뜻이다". 풀이 번성하지 않았다면 인류의 신석기혁명도 없었을 것이다. 쌀밥은 커녕 피죽도 구경하지 못했을 거란 얘기다.
신생대의 각종 말 조상, 코끼리 조상, 고래 조상, 심지어 돼지 조상들도 흥미있었지만 아무래도 가장 관심을 갖게 되는 건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일 것이다. 그런데 화석만 가지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생활습성을 파악하기엔 힘든 노릇이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유인원 및 원숭이의 행태들을 보고 그들의 삶을 유추하곤 했는데, 책에는 가부장적인 침팬지와 모계사회인 개코원숭이를 비교해놓고 유추가 힘들다고 해놓았다. 젠더 관련 논란을 피하고자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택한 방법으로 보이는데, 내 생각에 인간은 유인원과 비교해야지 원숭이를 비할 건 아니라고 본다. 현대에 이르러서야 생긴 성 역할 논쟁이 과거의 생물학적 사실 연구에 영향을 끼쳐서야 되겠는가. 아마도 이전 조상들은 철저하게 남성적인 사회였다가 호모사피엔스에 이르러 약간 다양화가 되지 않았을까? 침팬지의 예를 봐도 그렇고, 아무래도 야생에서는 힘과 경험이야말로 우수한 능력이니 말이다.
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후로 즉각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을 조명하고 있다. 북경인이나 자바인 따위는 나오지 않았다. 동시대를 살았음에도, 인간과 네안데르탈렌시스는 상당히 다른 미래를 맞이하게 된다. 너무나도 유사한 두 인종이 서로 맞닥뜨렸을 때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7만 년 전 인간이 막 네안데르탈인의 거주지역으로 진입했을 즈음 인간은 아직 흑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고 네안데르탈인은 등빨 좋은 코주부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테다. 이종교배는 전혀 없었을까? 인간이 네안데르탈인을 모조리 잡아다 카니발을 벌였을까? 언젠간 확실한 단서가 나오리라 믿는다.
각종 조상 중에 나무늘보 조상이야말로 인상적인 동물이 아닐 수 없다. 이름도 짜세다. 메가테리움. 아메리카 대륙에서 번성했으며 나무늘보가 아니라 '땅'늘보였다. 길이 6미터에 몸무게 4톤에 달하는 괴물이었다. 이 놈은 불과 8천 년 전만 해도 존재했으며, 인간의 남획에 의해 멸종되었으리라 추정된다.
그리고 매머드.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매머드도 1만 년 전쯤 멸종됐다. 환경변화도 환경변화지만 좋은 가죽과 뼈를 가지고 있으면 인간 앞에 얄짤없다. '메갈로케로스'라는 녹용이 3미터나 자라는 사슴도 있었는데, 역시 1만 년 전에 절멸하고 말았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베리아에는 지금도 수많은 털코뿔소, 매머드 사체가 냉동된 채 묻혀 있다고 한다. 이런 시체들이 워낙 많이 발견되지만, 시베리아 자체가 또 워낙 넓어서 대부분의 냉동고기는 금수들의 먹이가 되거나 설령 인간에게 발견되어도 신고를 하지 않아 연구 목적으로 활용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여러 세대에 걸쳐 수많은 냉동사체를 목격한 시베리아인들은 '땅 두더지'란 뜻으로 '매머드'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며, "지하에 살고 있으며 빛을 보면 죽는다는 동물이 있다고 믿었는데 이것은 이 동물들이 왜 산채로 발견되지 않았는지 설명해 준다".
빙하기가 간빙기로 변하는 데엔 수십 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 반대도 비슷할 것이다. 멸종된 동물들을 보며, 지금 있는 동물들이라도 잘 지켜야 하지 않는가 하는 인도주의적인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책은 이를 넘어서 우리 종 자체의 생존에 대한 경고를 하며 끝을 맺고 있다.
「우리 인간의 조상들로 말하면 빙하기에는 그저 냉혹한 세상에서 살아남은 또 다른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도구 사용은 독창적이었고 지구의 온난화가 우리 인류를 도왔던 것 같다. 그 뒤 세대를 거듭하면서 경험도 축적되었고 환경을 통제하거나 생존의 고역을 모면하는 능력 또한 개선되었다. 그 결과 우리 인류는 결국 오늘날과 같은 '비자연적인' 존재가 되는 과정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마냥 자아도취에 빠져 있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또 다른 빙하기가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20여 년 뒤에 빙하기가 찾아온다면 만년설이 런던 북부까지 완전히 뒤덮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농업이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다. 우리가 과연 이런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까? 우리 역시 고도로 진화된 동물이며 결국 그저 또 하나의 커다란 포유동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