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털없는 원숭이 - 동물학적 인간론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김석희 옮김 / 문예춘추(네모북)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1967년도에 나온 고전이다. 예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과연 허명이 아니었다. 철저한 진화론자인 저자는 동물로서의 인간의 양태를 메스로 가르고 핀셋으로 집어내어 보여주고 있다. 최근 고인류학이 크게 발전하면서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는 내용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지만 이 대작에 흠결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동기와 의의만으로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딱 1967년이면, 이런 시도가 한 번쯤은 있어야만 했다. 저자는 동물학자들조차 인간을 연구할 때 주관을 개입시키는 현실을 개탄하며 털 없는 원숭이 연구를 시작하고 있다.
일단 흥미로운 점은 인류가 나무에서 내려온 이후의 적응과정이다. 삶의 터전이 바뀌자 이는 어마어마한 변화를 불러왔다. 인류는 육식을 즐기게 되었고 전문적인 사냥꾼이 되었다. 신체능력은 형편 없었기에 협동을 하며 인공 무기를 개발하게 되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그 어떤 육상동물보다도 장거리 달리기에 특화되었다는 얘기를 어떤 다큐에서 본 적이 있다. 이 또한 협동하여 몰이사냥을 하는 인류의 습성에 따라 진화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이때 커다란 문제가 발생했다. 육식을 하기 전에는 힘 센 놈이 여러 암컷을 거느리고 냅다 싸지르기만 하면 됐다. 약한 놈은 도태되고 죽든 말든 상관 없었다. 하지만 협동 사냥을 하게 되다보니 적당히 약한 놈들과도 협력을 해야하고, 인공 무기가 생기다보니 어린애도 기습만 잘하면 가장 힘 센 어른을 죽일 수가 있게 됐다. 시쳇말로 '같이의 가치'가 매우 커진 것이다. 저자는 이에 따라 일부일처제란 풍습이 생겨나게 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게다가 뇌가 커지다보니 미숙아로 태어나는 새끼를 부모가 매우 오랜 시간 돌봐야했기에 이런 계약관계는 생존에 유리한, 당연한 관계였다. 이후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일부 호모 사피엔스가 일부다처제를 시행한 것은 논외로 한다. 저자는 이러한 일부일체제의 약점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이 체계는 여자가 줄줄이 많은 아이를 낳고, 남자가 다른 남자들과 함께 사냥하러 나가는 상황에서 효과를 발휘하도록 고안된 게 분명하다. 근본적으로는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두 가지 상황이 바뀌었다. 하나는 자녀수를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것은 짝을 이룬 여자가 어느 정도 부모의 의무에서 해방되었으며, 남편이 없을 때 다른 상대와 성행위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많은 여자들이 사냥 집단(직장)에 가담하는 경향도 나타났다...(중략)...이것은 한 쌍의 남녀관계가 양쪽에서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포르노, 매춘을 들고 있다. 요즘 이런 얘기했다간 여기저기서 큰 사달난다. 저자는 철저한 동물학적 관점에서 논지를 이어가고 있으며, 이건 1967년도 책이다.
그밖에 호모 사피엔스의 짝짓기에 관한 적나라한 내용, 그들이 그런 괴이한 방식으로 짝짓기를 하게 된 연유 등에 대하여 장황한 썰을 풀어놓고 있다. 대부분의 내용이 익히 들어본 것이거나 수긍이 가는 이야기들이었다.
양육과 모험심, 그리고 싸움에 대해서도 나와있었다. 여기서는 인사나 매너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들도 나와있었다.
「우리는...상대편의 적개심을 가라앉히는 신호도 유난히 다양하게 갖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신호는 우세한 사람보다 몸의 위치를 낮추는 것이다. ...우리는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몸을 낮추지 않고, 수많은 단계를 두어 제각기 특수한 의미를 가진 독특한 양식을 개발했다.」
이게 각종 인사법으로 발전했다. 또한 한 존재를 계속 노려보는 것은 매우 공격적인 행동이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를 뚫어지게 쳐다보지 않는 매너를 가지고 있다. 이 불문율이 깨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뉴스 사회면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군대에서도 선임과 눈을 3초 이상 마주치면 관등성명을 대도록 되어있다.
일반적인 동물들은 상대가 사냥감이 아닌 이상 살상이 아닌 굴복만을 취한 후 싸움이 끝나는데, 인류는 전쟁과 학살 등을 통해 무수히 살상을 자행한다. 저자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에 대해 몇 가지 가설을 제시하고 있는데, 결론은 우리도 살생을 원하지 않는 일반적인 동물 중 하나라는 것이다. 하지만 원한관계 등에 의한 살인 또한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으니 이건 좀 동의하기 어려웠다. 인간의 공격성은 타고난 면이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생태에 관한 놀라운 탐험이었다. 저자는 저술의도를 완벽하게 관철시켰다. 그리고 아래 멘트는 우리가 두고두고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인간은 생물학적 통제를 초월해 있다는 기묘한 자기 만족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인간을 높이 찬양할 수도 있었고, 눈부신 업적을 묘사할 수도 있었다. 그것들을 생략했기 때문에, 나는 불가피하게 일방적인 그림만 제시했다. 우리는 정말 비범한 동물이다. 나는 그 사실을 부인하거나 우리를 과소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찬사는 너무나 자주 되풀이되었다. 동전을 던졌을 때 항상 앞면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동전을 뒤집어 뒷면을 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불행히도 우리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너무 강력하고 성공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우리의 비천한 기원을 생각하면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들으리라고는 애당초 기대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꼭대기까지 올라간 것은 일확천금을 얻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벼락부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우리는 우리의 내력에 매우 민감하다. 게다가 우리는 그 내력이 언제 폭로될 지 몰라 끊임없이 전전긍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