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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의 평전
나채훈 지음 / 북오션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평전이라는 게 저자의 컨셉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올 수가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기본은 - 해당인물에 대한 유의한 사료나 정보는 일단 최대한으로 소개하는 것이며, 그에 따른 평가를 지지고 볶는 건 저자의 재량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기본에 썩 충실한 책은 아니었다. 연표도 없고, 사마의의 가계도도 없고, 사료도 충분히 인용되지 않았다. 최소한 한 왕조의 태조 취급 받는 사람인데 가계도 정도는 기본 아닌가. 내가 알기로 사마의는 부인을 최소 4명인가 많으면 6, 7명 두었고 자식도 10 단위 이상으로 낳은 걸로 아는데 여긴 그런 기초적인 내용조차 없었다. 게다가 책 컨셉 자체가 온통 사마의를 변호하는 이야기이다보니 사마의에게 불리한 사료는 누락하거나 - 유리한 내용이면 연의까지도 인용하는 등 균형이 별로 잡혀있지 않았다. 일례로 사마의가 조조의 등용을 거부하던 시절 이 양반이 풍 걸렸다고 핑계 대놨는데 막상 멀쩡한 모습을 집안 여종이 목격하자 부인이 여종을 죽여버린 적이 있다. 이에 사마의는 그 부인을 중히 여겼다고 하는데, 이게 나름 유명한 일화인데도 저자는 무려 '사마의 평전'을 쓰면서도 이걸 누락했다. 게다가 제갈량이 반간계를 써서 사마의가 좌천되었다는 둥 사마의는 장합을 말렸는데 장합이 말을 안 들어서 죽었다는 둥 연의에만 나오는 허구를 근거로 쓴 글이 상당히 많았다. 이런 점은 심히 실망스러웠다.
물론 책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상삼국지평화』가 재판 형식으로 진행되는 액자식 구성이라는 것, 거기 나오는 인물 중 사마중상이 사마의로 환생한다는 것은 이 책을 보고 알았다. 그리고 사마씨 집안이 엄청난 거한이었다는 사실도 새로웠다. 사마랑 같은 경우 12살 때 시험 보러 갔다가 감독관한테 나이를 똑바로 대라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한다.
또한 사마의가 성품이 신중하고 - 적어도 겉으로는 - 매너가 좋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다.
「...사마의가 중앙에 진출해서 높은 벼슬을 하고 있는 동안에 상림을 고향의 덕망 있는 선배라고 여겨 항상 그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상림에게, "사마공은 지위가 존귀하니 그대는 마땅히 그의 행동을 멈추도록 해야 하오" 하고 충고했다. 그러자 상림이 대꾸했다.
"사마공 스스로 長幼의 예를 돈독하게 하려는 것은 분명 후대를 위한 모범을 보이는 것이오. 그가 벼슬이 높은 걸 내가 두려워하는 바가 아니며 그가 깍듯이 인사하는 것 역시 내가 제지할 수 있는 바가 아닐 것이오."」
저자는 사마의가 난세에 딱히 출세하려고 애쓴 인물은 아니라고 평한다. 조조가 스카웃해도 거부하거나 거의 마흔 다 돼서부터야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는 등 내가 봐도 그런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기재는 기재인지라 벼슬살이 하다보면 뜰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과연 낭중지추라. 맹달을 조지고 주가가 크게 상승한 사마의는 제갈량 전담 마크맨이 되는데, 직접 교우하지도 않았으면서 제갈량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자가 바로 그였다.
「공명은 큰 뜻을 품었지만 기회를 보는 눈이 없고, 모략에는 뛰어나지만 결단력이 부족하며, 전투는 즐기지만 임기응변의 능력이 없다. 지금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출병했지만 이미 나의 계책에 빠진 상태다. 그는 이제 패해 물러가게 될 것이다.」
오장원에 별이 지리라는 것 또한 사마의는 정확하게 예견했다. 그럼에도 결국엔 死孔明走生仲達의 굴욕을 당했는데, 저자는 이걸 두고 사마의가 일부러 얼빠진 모습을 보여 토사구팽을 피하려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건 좀 황당하다.
책에 이와 비슷한 논조의 내용이 상당히 많다. 심지어 사마의가 말년에 쿠데타 일으킨 것도 본인이 생각한 최선의 구국행위였으며 조위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고 평하는데, 그게 진짜라면 사마의가 식읍 4만 호인가를 받았어도 안 됐고 쿠데타 성공 후에는 황권을 공고히 하여 황제를 밀어줬어야 한다. 하지만 사마의는 조상 패거리처럼 양아치짓만 안 했다 뿐이지 권력으로 치면 그냥 'The New 조상'이었다. 책 군데군데 이런 무리수가 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