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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평점 :
책 제목이 정말 인상 깊었다. 내용도 왠지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때로는 지겨웠고 때로는 어려웠으며 때로는 무슨 말을 하는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 범죄 문화, 진화 심리학에 의해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나의 의식의 추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또 때때로 어떤 주제들은 매우 흥미로웠으며 무척이나 유익했다.
여느 강간 대처 요령을 비꼰 이 그래픽의 열가지 조언은 다음과 같다.
1. 여자의 음료에 약을 타지 말것.
2. 혼자 걷는 여자를 보면 가만히 내버려둘 것.
3. 차가 고장난 여자 운전자를 도울 때는 그녀를 강간하지 말 것.
4. 여자가 승강기에 탔을 때 강간하지 말 것.
5. 부서진 문이나 창문으로 여자의 집에 숨어들어 강간하지 말 것.
6. 여자를 공격하지 않고 못 배긴다면 늘 친구를 대동하고 나다닐 것.
7. 잠들었거나 의식을 잃은 사람과의 관계는 섹스가 아니라 강간임을 명심할 것.
8. 호루라기를 갖고 다닐 것.
9. 정직이 최선임을 명심하여, 데이트하는 여자를 강간할 생각일 때는 그렇다고 솔직히 말할 것.
10. 강간하지 말 것.
-본문 51~52장-
인터넷으로도 비슷한 글을 한 번 본적이 있긴 하지만 책에서 읽으면서 다시금 신선하고 놀라운 감정이 일어났다. 왜 항상 모든 주어진 것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던 걸까? 왜 성폭력에 있어서 여자가 좀 더 조심하고 여자가 좀 더 주의하라는 말들을 아무런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고 수긍했었던 걸까?
원고에서 그녀는 설령 저항이 소용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더라도 우리가 원칙에 의거하여 계속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문 131쪽-
강간문화란 강간이 만연한 환경,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규범화하고 용인하는 환경을 말한다.강간문화는 여성 혐오 언어의 사용,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시선, 성폭력을 미화하는 태도를 통해서 지속되며, 그럼으로써 여성의 권리와 안전을 경시하는 사회를 낳는다. 강간문화는 모든 여성에게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성인 여성과 여자아이는 강간을 염려하여 자신의 행동을 제약한다. 대부분의 성인 여성과 여자아이는 강간을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다. 따라서 강간은 여성 인구 전체가 남성 인구 전체에게 종속된 위치에 머물도록 만드는 강력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강간을 저지르지 않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강간 피해자가 되지 앟는데도 말이다.
가끔은 '강간문화'가 '래드(lad) 문화', 즉 일부 젊은 남성들이 몸담은 하위문화로서 여성을 조롱하고 희롱하는 특징이 강한 문화를 묘사하는 표현처럼 쓰이는 경우도 들었다(1990년대에 영국에서 명명된 '래드 문화'는 페미니즘에 의해 남성의 권리가 훼손되고 있다고 여긴 젊은이들이 새롭게 남성성을 강조하며 방종과 성차별을 추구하는 태도를 말한다.)
-본문 191~192장-
위 글은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에 이미 둔감해질대로 둔감해져있었던 내게 큰 울림을 가져다 주었다.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에서 저런 일들이 있었다는 글을 보고 놀랍기도 했다.
2014년 미국을 뒤흔들었던 엘리엇 로저 살인 사건과 #여자들은다겪는다 해시태그 운동, 그 후폭풍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에서 2916년에 화두가 되었던 <강남역 살인사건>의 판박이 모습이었다.
끝내주는 금발 여자애 둘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가진 제일 멋진 셔츠 중 하나를 입고 있던 나는 그애들에게 미소를 보냈다. 그애들은 나를 보았지만, 미소로 답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나를 바보로 여기는 듯, 딴 데로 눈길을 돌릴 뿐이었다. 화가 치민 나는 유턴을 해서 버스 정류장 앞에 차를 세운 뒤 그애들에게 스타벅스 라떼를 확 뿌렸다. 그애들의 청바지가 얼룩진 것을 보니 고소한 만족감이 느껴졌다. 계집애들이 감히 나를 그딴 식으로 무시하다니! 감히 나를 그딴 식으로 모욕하다니! 나는 속으로 몇번이나 분노했다. 그애들은 내가 가한 벌을 받아 마땅했다. 라떼가 그애들을 태울 만큼 뜨겁지 않았던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 계집애들은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관심과 흠모를 주지 않은 죄로 끓는 물에 처박혀야 옳았다! (2014년 5월 23일 22세의 엘리엇 로저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남자 대학생 세명을 칼로 찔러 죽인 뒤 같은 학교 여학생 클럽으로 가서 총으로 여학생을 비롯한 세명을 더 쏘아 죽이고 행인들에게도 무차별 공격을 가하며 달아나다가 결국 차 안에서 총으로 자살했다. 이 글은 그가 대학에 입학한 첫주에 벌어졌던 일을 회상해서 썼던 것이다.)
-본문 195~196장-
나는 갑자기 2009년 우리나라에 큰 반향을 몰고 왔던 '키 180cm 이하 남자는 루저다.'라는 발언을 TV에서 한 여성을 향해 사회 전체가 합심하여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했던 사건이 떠올랐다. 일명 '루저대란'.
여성 신체 비하는 일상화되어 있는데 반해 남성의 신체 비하에 대해서는 이토록이나 가혹하게 사회적인 비난을 가하고 아예 매장시켜버리는 대한민국. 남자들은 자신의 권리에 조금이라도 손상이 가는 듯한 조짐이 보이면 아예 싹을 잘라버리는데 왜 여자들은 그동안 수없는 여권 수탈에 이토록 침묵해왔던 것인가?
물론 국내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행동해왔기에 조금씩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어 왔다. 그렇지만 여기서 멈출 것인가? 아직도 갈길이 멀다. 이 땅에 분노한여자들이 좀 더 확산되고 많아져가길 바래 본다.
여권 신장은 남권 추락의 동의어가 아니다. 여성과 남성이 뒤틀린 성적 굴레에 의해 서로에게 혹은 자기 자신에게 겨누었던 폭압의 무게를 떨쳐낼 수 있을 때 진정 모두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해방의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멀지 않았음을 확신하며 두 눈 뜨고 지켜보려 한다.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 행동으로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