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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평점 :
얼마 전 인터넷 상에서 메갈 사태에 대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넥슨 게임 캐릭터 목소리 연기를 한 성우 김자연씨가 "Girls Do Not Need A Prince" 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넥슨사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고 이 해고 문제에 대해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정치적 의견이 직업 활동을 가로막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다는 논평을 낸다. 그러자 정의당 게시판에 정의당이 메갈리아를 옹호하는가, 정의당은 메갈리아 당인가 하는 항의와 불만 글이 폭주했고 당원 수백명이 당을 탈당한다. 이에 정의당은 논평을 철회하고 심상정 당대표는 정의당은 메갈리아를 옹호하지 않지만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당이라는 사과문을 발표한다. 그 뒤에도 시사인에서 '분노한남자들'이라는 기사를 내서 많은 사람들이 시사인 구독을 끊고 또 많은 사람들이 시사인을 응원하며 신규 가입을 하기도 했다.
사실 나는 항상 시끌 시끌한 문제에 대해서 자세히 찾아보질 않는다. 일단 골치가 아프니까. 그래서 넥슨 성우 해고 사태,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 논평에 대해서도 제대로 내용을 알게 된지 얼마되지 않았다. 인터넷 상에서는 구구절절한 장문의 글 보다는 핵심(그렇지만 논점을 흐리거나 비약, 왜곡하는) 몇 문장, 사진이나 짤 등이 계속 확대 재생산되며 여기 저기 사이트를 돌아다니고 나같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실'을 알려하기 보다는 누군지 모를 그들이 만들어 놓은 보기 쉬우면서도 흥미를 끌 수 있는 게시글을 읽고 사태를 파악하고 흥분하고 때로는 광분하기도 한다.
'페미니스트(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ㆍ경제 ㆍ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를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라는 용어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이미 우리 사회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오염시켜서 원뜻이 아닌 부정적인 다른 해석으로 받아들이게끔 만들었다.
일베 기자, 일베 교사, 일베 경찰, 일베 정치인 등은 버젓이 직장 생활을 이어가고 사회 생활을 하지만 메갈 성우(사실 그 티셔츠가 메갈을 옹호하는 것인지도 잘모르겠다-일단 찾아보기도 귀찮고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퇴출되고 사회에서 매장되는 나라.
진보와 보수(?)는 서로를 향해 공격하고 정치, 사회, 문화 권력을 잡기 위해 아등바등거리지만 페미니즘 문제에 대해서는 대동단결 일치되어 약자를 짓밟는 하나된 모습들이 참으로 훈훈하다.
일련의 메갈사태 문제에 대해서 몇 몇 여성이 모여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메갈을 옹호하거나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이 분노하는 분 앞에서 솔직한 나의 생각을 그대로 말 할수가 없었다.(여성주의에 대해서 무지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고, 공격받을 수도 있고, 또 무엇보다 내 스스로가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뒤에 각 지역에서 모인 여성 대토론을 통해서 대다수의 침묵하는 사람들은 다 나와 비슷한 시각으로 이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성우 해고, 정의당 논평과 심상정 대표의 사과문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성우 해고는 잘못 되었고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 논평은 적절하였으며 논평 철회는 아쉬운 선택, 심상정 대표의 사과문(사실 읽어보진 않았다.) 내용에 동감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십여 년전 우연히 읽었던 <섹시즘> (그 때는 이 책이 여성 언어 차별에 관한 내용인지도 모르고 골랐다가 책을 읽고나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언어 오염에 대해서 알게되어 큰 충격을 받았었다.) 이 후로 처음 읽게 된 페미니즘 책이다. 사실 일부러 페미니즘 책을 찾아서 읽고 싶지는 않았다.(투표는 꼭 하지만 남들 다 듣던 '나꼼수' 한 번 안들었고 관심도 없던 그런 개인적 성향) 그렇지만 필요에 의해서 읽게 되었는데 읽으면서 뭔가 딱 꼬집을 수는 없지만 별로 공감가지 않는 내용들도 간간이 있었다. 그에 대해서 나는 이미 남성주의적 사고에 물들어 있는 것인가, 여성주의에 무지한 것인가, 내가 잘못된 것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그런데 또 책을 읽고 나서 들었던 여성학자의 강의에서 이 책에 대해서 낡은 페미니즘 사고가 담겨 있다는 비판을 듣고 나서 안도하고 안심했다. 내가 이상했던 것은 아니구나 하고...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은 내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잘 모르니까 자신이 없고 확신이 없고 내 생각과 주장에 대해서 당당하고 떳떳할 수 없었던 것이다. 라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부해야 한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페미니스트에 대해서 찾아보고 읽고 생각하고 나만의 페미니즘 사고를 확립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별점 4점을 준 이유는 아직 미흡하고 초보적 발상에 머물러 있는 내게는 색다른 관점을 던져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페미니스트인가? (원래 페미니즘이 내포하는 뜻에는 동조하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관점에서의 페미스트에 대해서는) 아니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은가? 자신이 없다.(어떤 의미에서는 내 스스로가 비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알고는 싶다.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해서...
앞으로 페미니즘 책을 조금씩 조금씩 더 읽어나가게 될 것 같다.
나더러 절대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란 남편을 얻지 못해서 불행한 여자를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행복한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이지리아 여성인 웬 학자가 나더러 페미니즘은 나이지리아 문화가 아닌 비아프리카적인 것이며 내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일컫는 것은 서구의 책에 영향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이 지적은 퍽 흥미로웠는데, 왜냐하면 내가 어릴 때 읽었던 책 대부분이 분명 반페미니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열여섯살까지 나는 당시 출간되었던 밀스앤분의 로맨스 소설을 아마 한권도 안 빼고 다 읽었을 걸요. 그리고 "페미니즘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시도할 때마다 따분해져서 끝까지 읽으려면 안간힘을 써야만 했습니다.)
아무튼 페미니즘이 비아프리카적이라고 하니까, 나는 이제 스스로를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친한 친구 하나가 나더러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일컫는 것은 남자를 미워한다는 뜻이라고 말해주더군요. 그래서 나는 이제 스스로를 남자를 미워하지 않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더 나중에는 '남자를 미워하지 않으며 남자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 립글로스를 바르고 하이힐을 즐겨 신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가 되었습니다.
-본문 13-1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