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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평점 :
금서가 부활했다. 어느 때 같았으면 이 책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처음에 놀랐던 것은 재교육이란 미명 아래 지식인들이 농촌에서 받아야 했던 정신교육이었다. 일종의 귀향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귀향보다 더 한 것이었다.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었으리라.
금서 부분에 있어서는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금서는 오히려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만 할 뿐이다. 어느 시대의 금서는 그 시대가 지나면 가치가 올라가기도 한다. 그 누가 책에 잣대를 그어 '금서'라는 오물을 뒤집어 씌울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오만이요 독단이요 독재이다.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이 책도 금서에 포함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중간에는 솔직히 별로 재미가 없었다. 유명한 책이 이정도 밖에 되질 않는단 말인가하고 실망스러웠다. 그렇지만 적어도 주인공들이 왜 책을 보물같이 여기고 여러 마을 사람들이 구전소설에 열광하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또한 힘든 현실을 피해 책 속으로 도피했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면서 이 책의 진가가 발휘되었다. 왜 책의 제목이 주인공인 '나'와 '뤄'가 아닌 '발자크'와 '바느질 하는 중국소녀'인지 납득이 되었다. 최후의 승리자는 먹물 먹은 지식인들이 아닌 책을 통해 암울한 시대를 넘어 이상을 본 민중들의 행동이었다. 그녀의 미래가 밝은 장미빛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녀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고 자기 인생의 '주체'가 되었다. 그것으로 그녀의 행보에 대한 가치는 충분했다. 그녀는 어두운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진정한 주인공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