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그때 나를 통과하는 바람이 내게 물었다. 아직도... 그립니? - 박광수감성사진일기
박광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1년 4월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우선 지레짐작하는 버릇이 있다. 이 책을 보고 음... 박광수의 만화집이겠구나 하고 또 헛다리를 짚었다. 의외로 이 책은 만화가 아니라 그가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글로 이루어진 포토 에세이였다.

어찌보면 만화보다 좀 지루할 것 같기도 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재미도 있고 생각하게 하는 부분도 있고 좋은 글귀도 눈에 띄었다.

"큰 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하느님께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다. 많은 일을 해볼 수 있는 건강을 구했는데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다. 행복해지려고 부유함을 구했더니 지혜로워지라고 가난함을 주셨다.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다. 삶을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것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선물로 주셨다. 구한 것 하나도 주지 않았지만 내 소원 모두 들어주셨다..."

나는 무교지만 종교를 떠나 이 글귀가 참 가슴에 와닿았다. 돈을 쫓으면 돈은 달아나고 성공을 갈구할 수록 성공은 더 뒷걸음친다는 생각을 나도 해왔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우고 하는 일에 충실하다보면 어느새 돈도 명예도 따라오게 되어 있는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광수의 글은 사람의 감성을 매우 자극한다. 그의 글과 그림을 읽으며 가슴이 훈훈해짐을 많이 느끼지만, 그 이면에 박광수라는 현실속의 인물은 그다지 자신의 작품처럼 순수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은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사람은 누구나 다 이중성을 지니고 있고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 없다는데 글만 좋고 작품만 좋으면 됐지 작가의 사생활까지 검열(?)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너무나 대비되고 언행일치 안되는 현실과 글 속 박광수의 이중성에 이 글속 내용들 조차 가식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나쁜광수생각'에서였던가... 그때도 여러 지인들과의 토크를 수록했던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글 말미에도 그리움에 대한 토크가 담겨 있다. 꽤 읽을만 하다. 

박광수... 참 모순되는 작가라서 나조차 그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혼란스러운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작품만큼은 참 좋다...이 책을 더불어.... 작품만큼은.... 참 희안한 일이 아닐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