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나는 장영희 교수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소아마비에 걸린 영문학 여교수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녀가 남긴 유작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이라는 홍보성 글에 끌려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일반인이 교수가 되기도 힘든데 장애우의 몸으로 교수가 되었다니 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암으로 돌아가셨다니 시련에 시련이 더해진 특별하고도 힘든 삶이었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막상 책을 읽어보면 남들과 달리 독특하지도 유난히 힘겹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삶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우리들이 갖게 되는 그 많은 편견과 고정관념 때문에 고인은 얼마나 많은 고뇌에 시달렸을까 싶다. 

아름다운 빚 

 강원도 홍천군 희망리라는 곳에 용간난이라는 할머니가 산다. 1979년 어느 날, 할머니의 남편은 약초를 캐러 갔다가 담뱃불을 잘못 떨어뜨리는 바람에 국유림의 일부를 태웠다. 국유림 관리소는 할아버지에게 산불 피해를 입힌 죄로 벌금 130만원을 부과했다. 그러나 실림이 극도로 어려운 정황을 참작해서 분할 상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할아버지는 중풍을 앓다가 숨졌고, 간난이 할머니에게 "나 대신 벌금을 꼭 갚아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할머니는 넷이나 되는 자녀를 혼자 키우면서도 매년 형편에 따라 3만원에서 10만원에 이르는 벌금을 꼬박꼬박 납부했다. 너무 늙어 농사를 지을 근력조차 없어지자 일당 7천원의 허드렛일로 살아갔는데, 그래도 돈을 모아 단돈 몇 만원이라도 해마다 빚진 벌금을 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2001년 가을에 드디어 벌금을 완납하고 나서 할머니는 말했다. "이제 빚을 다 갚았으니 20년 동안 답답했던 가슴이 후련하다. 저승에 간 남편도 이제 편히 쉴 수 있겠다"고.                                          -pp.62~63- 

자신의 돈이 아니라고 혈세로 쓸데없는 공사나 한답시고 돈장난 치는 고위층들이 좀 읽고 정직과 양심이라는 것을  배우고 되새겼으면 싶다. 

오마니가 해야 할 일 

 다시 이북으로 떠나기 전, 백살 된 어머니를 돗자리에 앉히고 마지막으로 절을 올리며 어떤 아들은 말했다. "오마니, 통일 되어 아들 다시 보기 전에 눈을 감으면 안돼요. 알갔시오? 그게 오마니가 해야 할 일이야요"어머니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을 '오마니가 해야 할 일'이라고 자꾸 우기던 아들은 울며 떠났다.                                                                         -p.191-  

90년대쯤이었나? 이산가족 상봉을 했던 것이 생각난다. 위안부 할머니들도 대부분 돌아가셨고 북한 실향민들도 이제는 고인이 되신 분들이 많을 것 이다. 언제쯤 통일이 될까? 통일이 된다한들 상봉할 이산가족은 얼마쯤 될까? 이런 걸 보면 때로는 삶과 세월이라는 것이 무섭고도 잔인하기만 하다. 

살아있는 한 자신의 고난은 헤쳐나가야 할 숙제이며 기적과 희망을 꿈꾸게 하는 모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적을 바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것이 살아있는 자의 올바른 자세이다.  

장영희 교수는 끝까지 기적과 희망을 노래 했지만 자연 속으로 되돌아갔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저 편 어딘가에서 아버지와 김점선 화가와 도란도란 차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울 수도 있고 어느 창가 옆 나무로 환생해 한떨기 백일홍 꽃망울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고 이도 저도 아닌 無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살아 생전 쌓아온 글탑들이 현세 사람들의 가슴 속을 촉촉히 적시고 있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이 것이 바로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진정한 기적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