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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비서들 - 상위 1%의 눈먼 돈 좀 털어먹은 멋진 언니들
카밀 페리 지음, 김고명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소설은 웬만큼 아는 작가가 아니면 엄청 입소문이 났거나, 한번 읽어보고 싶은 구미가 당길만한 줄거리거나, 책이 너무 멋지거나...
뭐 그런 선택의 요소들이 있는데 이 책은 처음 소개를 받았을때 그냥 유쾌하고 재밌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쇼퍼홀릭>처럼 가벼운 책이라면, 머리 식히는 용으로 짬짬이 읽으면 좋겠지 싶어서 받아들고 읽기 시작했다.
확실히 재밌었다.
번역도 뭔가 맛깔나게 작가의 입맛대로 잘 번역된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티나의 그 혼란스럽고 고민가득한 심리를 잘 표현했다.
눈먼 돈이 들어왔다고 해서, 심지어 그 돈을 내가 어떻게 쓰든 아무도 모른다고해서 맘 편하게 거금을 사적으로 쓰는 일이,
보통의 사람이라면 절대 아무렇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내적 갈등을 겪기 마련이고, 그렇게해서 일을 저질러버렸을때조차 100% 개운한 마음이 들 수 없다.
이 책의 티나에게 일어난 일이 그것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만 아는 회사의 거금이 자신에게 왔을때 가장 먼저 생각난 건 그 금액만큼의 자신의 학자금 대출이었고,
그 돈을 쓰면 안된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도덕적인 부분이니 당연히 티나에게도 고민이 되었지만,
'아무도 모르는 돈'이라는 사실이 그녀가 학자금 대출이라는 오랜 짐을 덜어주는데 한 몫했다.
하지만 결국 '아무도 모르는 돈'이라는 건 있을 수 없고, 회사 내의 동료들에게 점점 발각이 되면서 그들의 니즈도 해결해주게 되는데,
이 니즈라는 것도 결국 학자금 대출같은 절박한 문제들이었다.

회사의 돈을 엄연히 횡령을 한거고, 그 범죄는 아기 분유를 샀다고해서 학자금 대출을 갚았다고해서 묵인되는 일은 아니다.
그런 사실은 모두가 다 당연하게 알고 있는 부분이니, 이 책에서 그 일에 대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그러나 그렇다면.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라도 공부를 하고 싶은 건 책임지지도 못할 만큼 과한 욕심을 내는 것일까?
회사돈을 횡령한 건 아니지만 옳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 하루밤에 학자금 대출금 만큼의 돈을 펑펑쓰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가.
그 사람들은 그렇다고해서 범죄자로 잡혀가는 것도 아니지 않나.
심지어 요즘은 평생 써도 못 쓸 어마어마한 규모의 나랏돈을 개인적으로 탕진해가며 쓴 사람도 줄줄이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그럼 그들의 재산은 어떤식으로 압수할 것이며 그들의 죄값은 어떻게 제대로 치르도록 할 것인가.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졸업하면, 사회에 나오는 순간 자기 연봉보다도 더 많은 돈의 빚을 안고 출발하는 신입사원들이 정말 많다.
그것도 그 연봉이라도 받고 신입사원이 된 사람들은 나은 편이다.
그 빚을 떠안고 공무원 시험이니, 자격증 시험이니 하며 또 다른 빚을 져가며 살아가는 청년들도 부지기수다.
이들이 명품백을 사느라, 유흥을 위해 낭비를 하느라 돈을 쓴거면 욕이라도 들어 싸지만, 그 빚 안지려 대학을 안나오면 그 미래는 더욱 답답해지는 이 현실에 사는데 그럼 그 빚은 누가 진 빚인가.
티나와 그 일행들의 첫단추는 물론 잘못이다.
하지만 나는 자기들의 빚만 갚고 모른척 하는 게 아니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의 그 빚 해결을 위해 이렇게 고군분투하며 애쓰는 모습에 진정으로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남의 나라의 그저 픽션에 지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나라의 이 힘겨운 시대를 살고있는 청년들에게도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내 학자금이 끝났다고, 나는 이제 취업을 하고 자리를 잡았다고 그들의 아픔과 고민을 모른척하고 살지는 않았나 반성도 되었다.
대학을 다닐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어떡해요? 그 사람들은, 우리도 이렇게 고생하는데 그 사람들은 어떻겠느냐고요. 이건 말하자면, 그러니까, 제도화된 계급 차별이에요.
나는 커피와 노트북을 들고 침대로 와서 웬디가 사이트에 새로 넣은 기능들을 한결 편한 마음으로 둘러봤다.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대출금을 갚게 되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선행을 베풀어서 보답할지 간략하게 적을 수 있는 코너가 신설돼 있었다. 우리를 통해 대출금을 갚은 사람들이 삶에서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누리고 있는지 고백하는 공간도 존재했다. ‘학자금 대출의 굴레에서 벗어난 당신, 결혼에 골인했나요? 생애 처음으로 집을 장만했나요?가정을 꾸렸나요? 사진을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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