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박철 옮김 / 시공사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에 대한 감상을 쓴다는 것은 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돌진하다가 낭패를 보는 돈키호테의 이야기는 매우 유명해서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정신병자 같은 사람 이야기가 왜 그렇게 유명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장 위대한 소설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가는 항상 의문이었다.
작년 스페인어권 문학에 대한 강의 첫 시간에 선생님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왜 마지막 장면에 꼭 두 남자가 맨 몸으로 결투를 벌이는가를 비롯하여 오늘날 문화의 많은 코드들이 돈키호테에서 비롯되었다는 말로 나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사정상 그 수업을 신청하지 못하고 돈키호테를 잊어버리고 있다가 시공사에서 새로 번역한 책이 나왔기에 사서 읽게 되었다. (강의에서 들은 말이지만 이 책이 나오기 전의 돈키호테는 어느 출판사 책이나 번역이 거의 동일하다고 한다)

돈키호테를 다 읽는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는 이 책을 기필코 읽고야 만다는 집념으로 책을 집어들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도대체 어디가 그렇게 대단한지 쉽사리 알아채기 어려웠다. 책이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세르반테스는 책을 꽤 재미있게 썼는데, 당시 역사적 사정들을 알고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아서 읽는 속도가 별로 빠르지 않았다.
돈키호테는 예상대로 정신병자였고 소설속에서도 그렇게 못을 박고 있다. 하지만 항상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니라 가끔씩은 매우 논리정연한 말들로 주위를 놀라게 한다. 원래 돈키호테를 미친 사람으로 설정한 것은 세르반테스가 검열을 피하면서 사회비판을 하기 위해서였다. 설정이 그렇지 않더라도 풍차를 거인으로 보는 것이나 양떼를 군대로 보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돈키호테만 제대로 보고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돈키호테의 내용 중에는 사랑 이야기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둘시네아에 대한 돈키호테의 사랑을 기본축으로 소설 속에는 사랑에 빠져 괴로워하는 수많은 커플들이 등장한다. 이슬람에서 유럽으로 넘어왔다는 사랑의 개념이 돈키호테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았다. 돈키호테의 연인인 둘시네아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끝내주게 잘 생기고 똑똑하고 돈도 많은 남자, 여자라는 설정이 맘에 안 들지만, 적극적인 여성상을 많이 보여준 점은 좋게 평가하고 싶다.
돈키호테가 조금 재미있지만 별다른 자극을 주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그 내용들이 출판될 당시에는 파격적이었으나 지금은 흔한 이야기가 되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돈키호테에서 시작된 다양한 소재, 형식들이 근본이 되어 현재 사회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즉 근대를 만드는 바탕이었기에 지금은 평범하게 느껴지지만 위대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수백년 전의 이야기가 별다른 이질감없이 다가온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겠는가. 돈키호테에 대해 이 정도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아쉽고, 엄청난 페이지 수로 독자를 압박할 수도 있지만 일독의 가치는 충분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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