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방 E. M. 포스터 전집 4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2월
절판


우리가 그러는 건 대개 자신의 인격을 높이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아버지가 친절을 베푸는 건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를 기이하고 불쾌하게 여기거나 겁을 먹어요.-41쪽

왜 이 세상의 대단한 일들은 대부분 숙녀답지 못한 걸까?-61쪽

그들은 이제 인격이 입을 여는 상황, 유년이 문을 닫고 Œ음의 갈림길이 열리는 순간에 이르러 있었다.-69쪽

열정이란 저항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예의범절이라든가 심사숙고라든가 그 밖에 교양이라는 이름의 각종 족쇄를 잊는 것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통행권이 있는 곳에서 허락을 구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그는 왜 노동자나 인부들처럼, 아니 판매대 앞의 상점 점원들만큼이라도 하지 못하는 걸까?-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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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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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의 위대한 10가지 심리 실험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단순히 실험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그 이론을 전달하려는 목적에서 쓰여진 책이 아니라, 실험을 했던 연구자의 개인적인 삶의 궤적을 따라 가며 어떤 배경 하에서 위대한 실험들이 행해졌는지를 보여 준다. 연구자들의 성장 배경, 출신, 가정 환경 등의 족적을 따라가며  실험과의 연관성을 찾아 낸다. 또한 지은이는 하나의 실험에 관여했던 여러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한 현장감을 전해 준다.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지은이 역시 자신이 심리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이기에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를 내놓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실험을 검증해 보기 위해 노력했던 점 또한 인상적인데, 자신의 책을 위해 직접 마약을 복용해 본다든지, 정신병원에 입원해 본다든지 하는 점은 놀랍기도 하다. 이런 점들은 이 책이 단순히 심리 실험들의 보고서에서 훌쩍 벗어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책에 실린 실험들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사실들을 증명해 주는 것들이다. 그러나 실험을 했을 당시에는 상당히 센세이셔널했으며, 많은 학문적,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고 한다. 여러 유명한 심리학자들에 의해 행해진 실험들은 세인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으며, 실험의 결과는 현실 생활에 적용되며 그 유용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이 실험들은 여전히 우리 생활에 유효하며, 미래에도 유효할 것이다.

나는 특히 기억력에 관한 실험이 기억에 남는다. 가짜 기억을 이식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놀랍기도 했거니와 암시에 의해 촉발된 가짜 기억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물의를 빚었는가를 읽었을 때는 공포감이 들기도 했다. 인간의 기억력이란 얼마나 예측하기 어렵고 제멋대로인가? 물론 그 실험에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가짜 기억을 이식했을 때. 그것이 진짜 기억으로 화해 버릴 수 있음을 증명했다. 과연 인간의 기억 구조는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이 실험에 대해서 읽을 때에 이미 내 머리속에는 하나의 디스토피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공상과학 영화 한편이 상영되고 있었다. 사악한 무리에 의해 이식되어지는 가짜 기억들, 그 기억을 이식받은 후 악의 무리에 편입되어 버린 인간들. 실험의 결과처럼 인간의 기억력이 허술하다면 내 상상 속의 일이 그저 허황된 소리만은 아니지 않은가? 

 또 하나의 기억력에 관한 실험이 나오는데, 그것은 인간 기억력의 메커니즘을 밝힌 실험이다. 기억력의 메커니즘을 밝힘은 물론, 인간의 노쇠하고 쇠퇴해가는 기억력을 되돌릴 수 있는 약도 개발한다. 치매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나, 심한 건망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될 수도 있지만, 이는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한다. 인간의 노쇠와 쇠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스러움을 포기하고 억지로 약을 통해 기억력을 되돌리는 것이 과연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가가 문제이다. 또한 잃어버리고 싶은 기억도 있는데, 마냥 기억을 재생시킨다면 그것도 또 곤혹스러운 노릇이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과학의 발전과 진보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특징을 거부하려 든다. 인위적인 방법을 통해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려 든다. 그런데 그러한 변화와 발전이 곧바로 행복을 가져다 주는가? 여기서 논란은 치열해지고 만다.

 이 책은 다양하고 흥미로운 심리 실험들을 통해 인간 심리의 다층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인간의 복종과 반항심리, 스킨쉽과 애정의 관계, 방관자 효과,  중독의 문제 등등을 통해 인간의 미묘하고 오묘한 심리 세계를 보여 준다.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실험과 그 결과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오묘하고 신비로운 존재인지를 실감했다. 실험결과들은 하나의 정설로 굳어진 것들도 있지만, 아직도 논란의 소지를 간직하고 있는 것들도 있다. 또한 실험결과에 반하는 결과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로써 인간 심리가 얼마나 광대한 우주와 같은지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창조가 참 오묘하다는 생각과 인간이라는 존재는 파고들면 들수록 재미있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탐구하고 연구해 볼 분야가 무궁무진한 존재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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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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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애란의 소설집에 대한 무수한 상찬과 호의때문에 이 책을 산 것 같다. 요새 거의 우리나라 작가들의 소설은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왠지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읽고 나면 종내에는 누구의 작품인지 뚜렷하게 하나의 이미지가 형성되지 않는 것이다. 왜 그럴까? 특히 단편들을 읽을 때 그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 같은데, 늘 비슷한 하나의 이미지로 뭉뚱그려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을 골랐을 때는 나름대로의 기대가 있었다. 신예의 작품이기도 했고, 나와 같은 80년생이라는 것도 작용했다.

 김애란의 이 작품집은 내가 보기에  2가지의 주제로 대별된다. 첫째는 남루하고 초라한 아비의 초상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아비들은 가난하고, 남루하며, 가장으로서의 책임의식도 없다. 표제작인 <달려라, 아비>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자식을 팽개쳐 둔 채 홀연히 사라져 버리며, 미국에서 날아든 부고를 통해 자신의 생을 증명할 뿐이다. <스카이 콩콩>의 아버지는 전파사를 운영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초라하다. 왠지 개발독재 시절인 70년대의 전형적인 아버지이자 소시민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딸의 집에 어느날 느닷없이 들이닥쳐 얹혀 살기 시작한다. 자신의 몸을 누일 공간조차 없는 이 아버지는 딸의 방에 기거하며 오직 리모콘만을 꼭 쥐고 생활해 간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안그래도 불면증에 시달리는 딸의 잠을 더욱더 방해한다. 이에 견디다 못한 딸은 외출이라도 하시라고 용돈을 쥐어 드리지만, 아버지는 또 홀연히 사라져 버리신다. 

   여러 단편들에서 그려지는 아버지는 하나의 이미지로 귀결된다. 초라하고 남루하며,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위신은 추락해 버린 아비의 초상인 것이다. 어느 한 곳에 생의 뿌리를 내리지 못해 늘 방황하고, 괴로워 하며 결국에는 끊임없이 달릴 수 밖에 없는 존재들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이다. 이러한 아비의 초상은 마음 한편으로는 짠한 마음이 들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초라한 아비의 모습이 견딜 수 없어진다. 우리가 기대하는 아비의 초상은 늘 강하고, 가족들을 잘 부양하며,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체통을 지키는 존재이다. 그러나 이 소설 속의 아비는 우리의 기대를 냉정하게 배반해 버린다.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은 무얼까? 아비의 남루함, 초라함을 통해 아비 역시 우리와 같은 나약한 존재임을 잊지 말라고 상기시켜 주는 것일까? 또한 소설속의 자식들은 아비와 진실된 대화 한 자락 나눠보지 못한다. 부모와 자식간의 진정한 관계를 가꾸어 나가지 못한다. 이러한 모습들을 기형적인 가정의 모습들을 보여 주며, 가정에서의 아비와 자식들간의 소통 단절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마음이 찜찜하고 괜스레 불안해진다.

둘째로 이 소설 속에서는 혼자 사는 미혼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한다. 이들이 겪는 일상의 삶을 그리면서,  현대인들의 고독과 소외, 단절을 메마르고 스산하게 보여 준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 ,<노트하지 않는 집>과 같은 작품에서 주인공인 나는 현대 사회 속에서 홀로 내쳐진 존재인 것만 같다. 누구 하나 마음을 터놓고, 애정을 나누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혼자인데, 어느 누구도 선뜻 손을 내밀며 친구가 되자고 하지 않는다. 참 삭막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자신이 가는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은 자신을 그저 물건을 사가는 소비자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라기보다 소비를 하는 하나의 기호와 같이 인식될 뿐이다. 또한 공동생활을 하는 주택에서 만난 여러 젊은 여성들은 서로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또한 대화를 회피하며, 포스트잇을 통해서만 서로와 교신한다. 결코 자신을 내보이고 싶어하지 않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인정하고 껴안으려 하지 않는다. 이 또한 참담하다. 현대인들은 정녕 이렇게 메마른 것일까?아닐 것이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군가 먼저 손 내밀어 주고, 사랑을 주기를 가슴 졸이며 기대하고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런 속내를 감추고 전전긍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달려라 아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혼자이며 뼛속까지 고독하다. 대도시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 가지만 진정한 가족은 물론 이웃 역시 갖고 있지 않다. 누군가의 위로와 사랑을 기대하지만,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데는 머뭇거린다. 이러한 머뭇거림은 아예 그들 속에 체화되어 버린 듯하다. 육성이 아닌 포스트잇에 적힌 짤막한 문장을 통해서만 의사소통이 가능할 뿐이다. 현대 사회의 부조리한 상황은 우리를 조금은 암울하게 만들고, 세상 속에서 나만 덩그러니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이 전혀 나와 무관한 것은 아니고, 일정 부분 닮은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외롭고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이 때로는 고달프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메마르고 삭막하며 암울한 삶을 거부하련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방황하며 무작정 달리고 있는 아비를 불러 세워 대화를 나눌 것이며, 서로의 방에 절대 노크하려 들지 않는 이웃들에게 먼저 노크하는 인간이 되련다. 그러나 과연? 나는 고독하지만, 고독의 올가미에 사로잡히는 인간은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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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두는 여자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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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쩌면 이렇게도 비극적인 운명을 좋아할까? <바둑 두는 여자>를 읽고 나니, 가슴이 아릿아릿하다. 샨사의 짧고도 유려한 문체가 만들어낸 슬픈 음악을 들은 느낌이다. 이 슬픈 사랑이야기가 빚어내는 긴장감을 견뎌내기가 힘들다.

야가는 이제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자유분방하면서도 야무진 중국 소녀다. 그녀는 바둑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사람을 읽는다. 바둑이라는 기묘하고도 철학적인 게임을 통해 인생을 풀어 나간다. 바둑애호가들이 모이는 첸휭 광장에서 그녀는 대국을 통해 운명적 사랑을 만난다.그 사랑은 너무도 슬픈 운명을 내장하고 있기에 처음엔 소리도 없이 온다.


그는 일본군 중위다. 중국의 불온 세력들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중국인으로 변장한 채 바둑을 둔다. 거기서 그 역시 아름다운 중국 소녀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고 만다. 그녀의 이름도 알지 못하지만 그녀의 야릇한 슬픔과 오묘한 표정에 깊이 공감한다.


서로에 대한 오롯한 감정만을 간직한 채 헤어지게 된 그들. 지옥의 한 귀퉁이같은 전장터에서 포로와 적군으로 만나게 된다. 그녀의 처참한 모습을 알아본 그. 그들은 쓰러져가는 폐가에서 사랑을 확인하다. 바둑을 통해 서로의 영혼을 읽고 서로의 영혼을 알았기에....그 찰나의 순간 속에서도 그들은 사랑을 완성할 수 있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페퍼민트티의 아릿아릿한 맛이 입안에서 퍼지듯이 그들의 슬픈 사랑이 내 가슴을 아릿하게 만든다. 비릿한 청춘의 내음이 느껴진다. 이제 막 사랑에 대해 눈뜬 한 소녀와 메마른 군인의 감성으로 무장한 한 남자가 죽음으로 그들의 사랑을 이룬다. 처연하고 처절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붙잡고 늘어져 보지만 쉬이 답이 나오지 않는다. 빛나는 사랑이란 영원처럼 길고 길텐데. 흔히 아름답게 묘사되는 사랑의 지속력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걸 보면 사람들은 슬픈 사랑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보상받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슬픔이 가져다주는 감정의 정화와 치유력을 믿는 건지도 모른다. 나도 그런 사람중의 한 명일까? 나는 진정한 사랑을 해 본적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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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자살 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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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자살 여행>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사회의 낙오자들이다. 사업에 실패하고, 명예는 개똥밭에 굴러 다니며,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손가락질 받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결국은 자살 충동에 시달리게 되고, 급기야는 '집단 자살 여행'을 감행하게 된다. 이들은 핀란드 전역을 여행한 후에, 집단 자살을 하기로 한 노르웨이의 북단인 '노카르프'로 향한다. 이 소설은 이들의 유쾌하고 재미난 여행기에 다름 아니다. 자살 그것도 '집단 자살'이라는 음울하고 다소 기괴한 주제를 유쾌하고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작가의 기발한 블랙유머와 재치있는 입담은 암울한 주제의 소설을 경쾌하고 따스하게 만들어 조금은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북유럽 국가들은 세계에서 자살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음울한 자연환경 탓에 사람들은 우울증에 잘 빠지며, 사회 보장 제도가 잘 구축된 탓에 일할 의욕도 낮다고 한다. 핀란드의 경우 자살에 의한 죽음은 한해에 무려 1500여명에 이르며, 이는 타살에 의한 죽음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를 자랑한다. 무엇이 이들을 자살로 내몬 것일까?



누구나 한번쯤 죽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을 직접 결행하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더이상 살아갈 의욕을 상실했다고 고백한다. 경제적 위기와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져 죽음을 결심한다. 이들은 함께 자살 여행을 떠난다. 여행의 목적은 정작 '집단 자살'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여행의 과정 중에 함께 한 동료들에게 진한 우정을 느끼고, 이성끼리는 사랑을 나누게 된다. 자신의 나약하고 초라한 전존재를 가감없이 드러냄으로써 진실한 교감이 싹트기도 한다. 또한 핀란드 전역을 여행함으로써 아름다운 대자연의 풍광에 빠져들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집단 자살 여행은 이들에게 심리 치료의 기적을 낳고야 만다.



집단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하직하려 했던 이들은 여행을 통해 자신의 존엄성을 회복하며, 우정과 사랑을 통해 깊은 안정감을 느낀다. 또한 세상은 아름답다는 긍정적 시각을 다시금 갖게 되기도 한다. 죽음이라는 모험을 통해 생의 의욕을 활활 불태운 것이다. 결국 이들은 목적지에 도착해서 자살의 때가 이르자 모두들 자살을 연기하기로 한다. 다시금 그들은 여행을 떠난다. 노르웨이를 벗어나 독일과 프랑스를 거쳐 스위스로 가기로 한다. 스위스의 알프스 계곡에서 자살하기로 계획을 수정한다. 그러나 정작스위스에 도착하고서는 강한 삶의 의욕 앞에 고개를 숙이고 만다.



나는 처음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들이 정말 자살을 하면 어쩌나하며 가슴을 졸였다. 왠지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예측불허이지 않은가? 등장인물들은 자살을 포기한 후에 새로운 삶을 기운차게 꾸려 나간다. 사람은 막상 죽음 앞에이르게 되면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 잡히게 되고, 생의 의욕을 더 강하게 느끼는 것 같다.



자살 여행자들은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들이 여행을 통해 서로 강한 유대감과 연대감을 느꼈으며, 우정과 헌신, 사랑을 통해 상처입은 마음을 치료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인간에게 있어 따스한 관심과 애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을 수 있는 대목이다. 처음 만난 핀란드 소설은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자살'이라는 심각하기 짝이 없는 주제를 이렇게 유쾌하게 형상화했을 줄이야.....냉소적인 듯 보이지만 인간에 대한 따스하고 애정어린 시각을 갖고 있는 작가도 맘에 들었다. 재치있는 입담꾼인 아르토 파실리나의 다른 작품들도 기대해 본다. 아무튼 이 소설은 새롭고, 기발하며, 유쾌했고, 사유케 했다. '죽음'이란 그만큼 심각한 문제가 아니던가? 그러나 '삶'은 더 심각지 않던가? 죽음과는 유희할 수 있지만, 삶과는 유희할 수 없다....라는 말 깊이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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