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김애란의 소설집에 대한 무수한 상찬과 호의때문에 이 책을 산 것 같다. 요새 거의 우리나라 작가들의 소설은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왠지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읽고 나면 종내에는 누구의 작품인지 뚜렷하게 하나의 이미지가 형성되지 않는 것이다. 왜 그럴까? 특히 단편들을 읽을 때 그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 같은데, 늘 비슷한 하나의 이미지로 뭉뚱그려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을 골랐을 때는 나름대로의 기대가 있었다. 신예의 작품이기도 했고, 나와 같은 80년생이라는 것도 작용했다.

 김애란의 이 작품집은 내가 보기에  2가지의 주제로 대별된다. 첫째는 남루하고 초라한 아비의 초상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아비들은 가난하고, 남루하며, 가장으로서의 책임의식도 없다. 표제작인 <달려라, 아비>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자식을 팽개쳐 둔 채 홀연히 사라져 버리며, 미국에서 날아든 부고를 통해 자신의 생을 증명할 뿐이다. <스카이 콩콩>의 아버지는 전파사를 운영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초라하다. 왠지 개발독재 시절인 70년대의 전형적인 아버지이자 소시민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딸의 집에 어느날 느닷없이 들이닥쳐 얹혀 살기 시작한다. 자신의 몸을 누일 공간조차 없는 이 아버지는 딸의 방에 기거하며 오직 리모콘만을 꼭 쥐고 생활해 간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안그래도 불면증에 시달리는 딸의 잠을 더욱더 방해한다. 이에 견디다 못한 딸은 외출이라도 하시라고 용돈을 쥐어 드리지만, 아버지는 또 홀연히 사라져 버리신다. 

   여러 단편들에서 그려지는 아버지는 하나의 이미지로 귀결된다. 초라하고 남루하며,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위신은 추락해 버린 아비의 초상인 것이다. 어느 한 곳에 생의 뿌리를 내리지 못해 늘 방황하고, 괴로워 하며 결국에는 끊임없이 달릴 수 밖에 없는 존재들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이다. 이러한 아비의 초상은 마음 한편으로는 짠한 마음이 들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초라한 아비의 모습이 견딜 수 없어진다. 우리가 기대하는 아비의 초상은 늘 강하고, 가족들을 잘 부양하며,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체통을 지키는 존재이다. 그러나 이 소설 속의 아비는 우리의 기대를 냉정하게 배반해 버린다.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은 무얼까? 아비의 남루함, 초라함을 통해 아비 역시 우리와 같은 나약한 존재임을 잊지 말라고 상기시켜 주는 것일까? 또한 소설속의 자식들은 아비와 진실된 대화 한 자락 나눠보지 못한다. 부모와 자식간의 진정한 관계를 가꾸어 나가지 못한다. 이러한 모습들을 기형적인 가정의 모습들을 보여 주며, 가정에서의 아비와 자식들간의 소통 단절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마음이 찜찜하고 괜스레 불안해진다.

둘째로 이 소설 속에서는 혼자 사는 미혼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한다. 이들이 겪는 일상의 삶을 그리면서,  현대인들의 고독과 소외, 단절을 메마르고 스산하게 보여 준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 ,<노트하지 않는 집>과 같은 작품에서 주인공인 나는 현대 사회 속에서 홀로 내쳐진 존재인 것만 같다. 누구 하나 마음을 터놓고, 애정을 나누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혼자인데, 어느 누구도 선뜻 손을 내밀며 친구가 되자고 하지 않는다. 참 삭막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자신이 가는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은 자신을 그저 물건을 사가는 소비자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라기보다 소비를 하는 하나의 기호와 같이 인식될 뿐이다. 또한 공동생활을 하는 주택에서 만난 여러 젊은 여성들은 서로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또한 대화를 회피하며, 포스트잇을 통해서만 서로와 교신한다. 결코 자신을 내보이고 싶어하지 않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인정하고 껴안으려 하지 않는다. 이 또한 참담하다. 현대인들은 정녕 이렇게 메마른 것일까?아닐 것이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군가 먼저 손 내밀어 주고, 사랑을 주기를 가슴 졸이며 기대하고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런 속내를 감추고 전전긍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달려라 아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혼자이며 뼛속까지 고독하다. 대도시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 가지만 진정한 가족은 물론 이웃 역시 갖고 있지 않다. 누군가의 위로와 사랑을 기대하지만,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데는 머뭇거린다. 이러한 머뭇거림은 아예 그들 속에 체화되어 버린 듯하다. 육성이 아닌 포스트잇에 적힌 짤막한 문장을 통해서만 의사소통이 가능할 뿐이다. 현대 사회의 부조리한 상황은 우리를 조금은 암울하게 만들고, 세상 속에서 나만 덩그러니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이 전혀 나와 무관한 것은 아니고, 일정 부분 닮은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외롭고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이 때로는 고달프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메마르고 삭막하며 암울한 삶을 거부하련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방황하며 무작정 달리고 있는 아비를 불러 세워 대화를 나눌 것이며, 서로의 방에 절대 노크하려 들지 않는 이웃들에게 먼저 노크하는 인간이 되련다. 그러나 과연? 나는 고독하지만, 고독의 올가미에 사로잡히는 인간은 되고 싶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